만당 스님 이주형 서울대 교수에 재반론-하
만당 스님 이주형 서울대 교수에 재반론-하
  • 만당 스님
  • 승인 2020.03.02 10:43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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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난타는 간다라에 터 잡고 살던 ‘구마라’ 가문 후예

‘고승전’ 등장하는 5세기 이전 외국인스님 중 73% 간다라 출신
피터 리 ‘축건은 인도 또는 간다라’ 해석이 이 교수보다 합리적
대만서 나온 불학대사전에도 ‘축건은 천축의 서쪽 간다라’ 명시
파키스탄의 옛 간다라 지역인 다르마라지카 불교유적지.
파키스탄의 옛 간다라 지역인 다르마라지카 불교유적지.

이왕 내친김에 양나라 혜교 스님의 ‘고승전’(519년)을 샘플로 삼아 5세기 이전에 외국에서 중국으로 온 역경승과 전법승에 대한 출신지 분포를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44명의 스님들 가운데, 월지국·계빈·안식국 등의 간다라 지역 승려 17명, 강거·고창·쿠차·도거륵 등 서역승 15명, 천축 6명, 중천축 6명이었다. 간다라와 서역승이 73%, 천축승 27%이다. 더군다나 출신지를 정확히 모를 때 천축이라고 한 경우와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출신지가 중천축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활동지역은 대월지국이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간다라와 서역승의 비중은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역경승들로 한정해서 보면, 안세고는 안식국(파르티아), 지루가참·지량·지겸(三支)은 월지국, 축법호(지법호)도 월지국, 불도징은 서역 쿠차국 출신이지만 간다라의 오장국과 계빈국에서 수학, 구마라집도 쿠차국 출신이지만 간다라 계빈국에서 수학하였다. 그렇다면 역사상 중국에 불교를 전한 주요 스님들은 대부분 간다라 출신이거나 간다라에서 수학하였던 스님들임을 알 수 있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무슨 가능성에 대한 추측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인도 출신’이라고 하는데 간다라 이외의 지역을 배제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공적인 역사적 사실 운운하지 말고, 상대를 논박하려거든 사료 파악이나 제대로 해서 글을 쓰고 공적인 공간에 발표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주형 교수는 피터 리가 ‘해동고승전’에 나오는 축건(竺乾)을 ‘India or Gandhara(인도 또는 간다라)’라 잘못 번역하였다고 하면서, 피터 리가 간다라가 고대 인도의 한 부분인 것을 잘 알지 못하여 선택적 병치를 한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 교수보다 피터 리의 번역이 더 합리적이다. 설마 피터 리가 초등학생도 알만한 간다라가 인도의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겠는가. 축건을 천축과 동의어로 보면 인도가 되는 것이고, 축건을 좁게 보면 간다라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인도 또는 간다라‘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 교수가 축건은 오직 천축이고 인도라고 해야 한다는 단견에 빠져서 억측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뿐이다. 참고로 대만에서 1922년에 출판한 불학대사전에서는 ‘축건(竺乾)’을 ‘爲天竺西乾之義(천축의 서쪽 간다라의 뜻이다)’라고 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전 기고 글에서 간략하게 거론했었으나, 이번에는 ‘마라난타(摩羅難陀)’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와 간다라와의 연관성에 대해서 자세히 밝혀보고자 한다. 자료를 조사해 본 결과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라난타(摩羅難陀)라는 이름에 대해 ‘삼국유사’는 ‘동학(童學)’이라 번역된다고 하였다. ‘마라(摩羅)’는 ‘동(童)’으로, ‘난타(難陀)’는 ‘학(學)’으로 번역하고 있다. ‘개원석교록’에 따르면 당시 서역에서는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아버지의 성을 앞에다 쓰고, 어머니 이름을 뒤에다 붙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라난타 스님의 성씨는 ‘마라(摩羅)’인 것이다. 마라라는 성의 연원을 검토한 결과, ‘마라’는 ‘구마라’라는 성을 줄여서 ‘마라’라고 표현한 것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양고승전’은 구마라집(鳩摩羅什) 스님을 ‘동수(童壽)’라고 번역하고 있고, ‘대당서역기’는 구마라라다(拘摩羅邏多) 스님을 ‘동수(童受,童首)’로 번역했다. 또 ‘개원석교록’과 ‘고금역경도기’는 구마라불제(鳩摩羅佛提) 스님을 ‘동각(童覺)’이라고 옮겼다.

구마라집 스님과 구마라불제 스님은 마라난타스님과 거의 동시대 인물이며, 구마라라다 스님은 1세기 정도 앞서서 간다라 탁실라 대탑원에서 수백 권의 논서를 저술했던 분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마라’와 ‘구마라’는 똑같이 동(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라(摩羅)’라는 성의 본래 갖추어진 음차표기는 ‘구마라(鳩摩羅)’이며, ‘삼국사기’ ‘해동고승전’ ‘삼국유사’ 등에서 ‘마라’라고 줄여서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한편, 마라난타의 ‘난타(難陀)’를 ‘삼국유사’에서는 ‘학(學)’이라고 번역된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희(喜)’의 오역인 듯하다. 담마난제(曇摩難提)는 법희(法喜)로, 실차난타(實叉難陀)는 학희(學喜)로 번역되고 있으며, 산스크리트의 뜻도 난타(難陀, nanda)는 희(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라난타 스님의 갖추어진 이름표기는 ‘구마라난타(鳩摩羅難陀)’이고, 그 뜻은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동학(童學)’이 아니라 ‘동희(童喜)’라고 보아야 한다.

구마라 성을 가진 스님들은 그 출신 연원이 주로 어디인지 파악해 보았다. ‘고승전’에 의하면 ‘구마라집 스님은 쿠차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 아버지 구마염은 대대로 이어오던 재상 자리를 사양하고 출가해 고향을 떠나 동쪽으로 총령을 넘어 쿠차국에 도착하였고 쿠차국왕이 그를 국사로 삼았다’고 하고 있는데, 동쪽으로 총령을 넘었다는 사실에서 구마염은 대월지국 출신임을 알 수 있다. 구마라라다 스님은 ‘대당서역기’에 의해 쿠샨왕조(대월지) 시절의 간다라 출신임을 알 수 있고, 구마라불제 스님은 서역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타림분지의 서역남북로에 위치한 소월지국 가운데 어느 한 곳일 것이다. 동일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다른 기록에는 구마라발제 스님이 고창국의 국사였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과 ‘경덕전등록’에 의하면 선종의 제18대 부법조사인 가야사다(伽耶舍多) 존자가 다음 부법제자인 구마라다(鳩摩羅多) 존자를 만난 나라가 대월지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가야사다 존자가 대월지국에 이르러 한 바라문의 집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구마라다에게 말하기를 “옛날 부처님 기록에 이르기를, ‘내가 입멸한지 일천년 후에 월지국에 대사가 출현하여 교화를 드높이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네가 이 좋은 운에 상응하는 것 같구나”라고 하였다. 이에 구마라다가 숙명통을 발하여 가야사다 존자에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가야사다 존자는 구마라다에게 법을 부촉하는 게송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구마라다 존자가 당시의 대월지국 즉 간다라 출신이라는 것은 물론이고, 사성계급이라는 신분제도가 철저했으며 이동성이 적은 그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위 기록은 구마라 성을 가진 사람들은 간다라에 터전을 잡고 사는 바라문들이었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구마라라다, 구마라집, 구마라불제 스님도 그 출신의 연원은 대월지국 즉 간다라인 것이며, (구)마라난타 존자도 간다라의 바라문 집안 출신이라고 봐야 한다.

다음은 구마라(鳩摩羅) 성씨의 연원과 그 주된 거주 지역은 어디인지 현재 시점에서도 파악해 보았다. 구마라(鳩摩羅)는 산스크리트로 ‘Kumar/Kumhar’라고 하는데, ‘Kumar’는 불교적 의미로 ‘아들, 왕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북천축 특히 간다라 지역에 많이 거주하였던 성씨라고 한다. 다음은 파키스탄 대사관에 문의하여 파악한 내용이다.

“쿠마르(Kumar)라는 이름은 항아리나 주전자를 만들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쿠마르 부족은 전통적으로 파키스탄에서 점토를 빚어 구운 도자기(테라코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헨조다로 시대와 메하르가르 시대에는 점토를 빚어 구운 도자기들이 인더스 계곡 주변에서 널리 사용됐는데 파키스탄의 쿠마르 사람들이 만든 도자기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쿠마르’를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파키스탄과 펀자브 지역 그리고 인도의 비즈노르(Bijnor) 지역에서 많이 살고 있습니다. 쿠마르 공동체는 문명의 시작과 함께 하는데, 세계 최초로 산업(도자기)을 시작한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에 사는 ‘쿠마르’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힌두교를 믿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할 때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파키스탄에 남고, 힌두교도들은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인도로 이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쿠마르 사람들 가운데 힌두교인들은 파키스탄과 가까운 인도 북부의 펀자브와 비즈노르로 이주한 것으로 파악되며,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우르드어가 공용어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에 따르면 구마라(鳩摩羅:Kumar)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인더스강 계곡 주변에서 도자기를 만들던 부족들이었으며, 현재의 파키스탄 즉 옛 간다라 지역에 연원을 두고 거주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마라난타 존자도 간다라 출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의 모든 지표가 마라난타 존자의 고향은 간다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기 때문에, (구)마라난타 존자도 간다라의 바라문 집안 출신으로서 출가해 수행하고 난 후 험난한 여정을 이겨내고 멀리 중국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티베트의 감뽀빠 스님이 저술한 ‘해탈장엄론’에는 ‘사견(邪見) 중에서도 문자로 쓰여 있고 합리적이며 관찰 가능한 진리만을 믿는 것은 매우 무거운 악업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문자로 기록된 것만 믿는다면 잘못된 기록도 그대로 믿어서 올바른 진실을 가려낼 수 없을 것이고, 반면에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여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문자로 표현되지 않은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당 스님

만당 스님 영광 불갑사 주지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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