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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화된 일상을 타격하는 선사들의 ‘할’

  • 불서
  • 입력 2020.03.02 11:09
  • 호수 1527
  • 댓글 0

‘통찰의 언어 선문답 111편’ / 정의행 지음 / 어의운하

‘통찰의 언어 선문답 111편’

‘할(喝)!’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생전 처음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소리를 들을 만큼 명석함을 자랑하던 사람도 이 소리 끝에 처참하게 깨졌고, 일자무식의 나무꾼도 이 소리 끝에 환하게 깨쳤다. ‘갈파하다’라는 말의 뿌리이기도 한 이 소리는 곧 후학의 공부를 경책하고 이끄는 깨달은 선사의 외침 소리다. 선문답을 나눌 때 상대방의 잘못된 생각과 막힌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버럭 내지르는 소리가 바로 ‘할’인 것이다.

선문답에는 바로 이러한 선사들의 번뜩이는 기지와 명쾌한 직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래서 복잡하고 피곤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무더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시원함을 준다. 때문에 선문답은 무엇엔가 떠밀려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지혜를 안겨줄 수 있다.

선문답은 이처럼 본래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대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극히 신비화해서 깨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소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사람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법령 같은 것이라 하여 ‘공안(公案)’이라고도 일컬었다. 때문에 선문답을 함부로 해석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옛 선지식들의 말대로 선사들의 온갖 말과 행동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생각에 빠진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 특정한 사람이나 뛰어난 상근기의 사람들만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간화선으로 깨우치는 것 자체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공안’이나 선사들의 선문답을 오늘날의 언어로 풀이하려 애쓰고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옛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도록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책 ‘통찰의 언어 선문답 111편’은 한때 수행자로 살다가 환속해 불교를 기반으로 노동, 통일, 평화운동을 하던 중 2016년 2월 급성혈액암으로 타계한 정의행이 1992년 출간했던 것을 다시 선보인 것이다. 책 속에 담긴 전체 111편으로 이루어진 선사들의 언어는 평범한 대화체이지만, 한 편 한 편이 우리의 습관화된 일상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선사의 벼락같은 언어 뒤에 툭툭 깨진 채 남겨진 일상의 파편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생전에 선을 일상에서 구현하는 일에 매진했고, 그 결과물의 하나인 ‘할’을 ‘생활선 모임’의 이름으로 펴냈었다. 스스로 ‘군소리’라며 선의 언어에 덧붙인 말들이 선의 참뜻을 전달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하다. 그래서 선사들의 선문답과 그것에 말을 보탠 ‘군소리’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생전 모습을 잘 알던 이들이 “평생을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온몸으로 살아낸 ‘광주의 붓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며 반기는 이유를 알 수 있다. 1만3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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