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칠순을 맞이하여 선방에서 더 정진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문경 봉암사를 시작으로 해남 대흥사, 백담사 무문관, 내연산 보경사, 오대산 상원사에서 정진하다 보니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선방에서 40·50대 스님들과 나란히 앉아 한 치의 틈도 없이 짜여 있는 일과 속에서 지내니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규칙적인 생활은 수행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안거 때 제가 간략하게나마 쓴 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얀 눈을 밟아본다. 눈은 소리도 없이 나를 맞이한다. 눈이 내리면 무작정 좋아서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모든 사람이 흰 눈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본래 마음이 하얀 눈처럼 맑고 깨끗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은 자신의 마음을 본래 고요하고 순수한 마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루에 30분 정도만 자신을 바라보고 이탈된 마음에서 본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정진을 하면 삶이 더 순수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여러분, 부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부처님은 모든 어리석음을 벗어버린 분입니다. 그 마음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리고 괴로움이 없고 치우침이 없는 분이십니다. 갖가지 욕망에서 벗어나신 분입니다. 온갖 시비 속에서도 연꽃처럼 때 묻지 않는 분이십니다. 안온하고 편안함을 주시는 분,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신 분, 바른 길을 가시고 선정에 머무신 분, 그 어떤 속박에서도 벗어나 해탈하신 분, 탐욕이 없고 무한히 자애로우신 분,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고 우리들의 스승이십니다.
불교를 처음 공부할 때 “성불하세요” 이렇게 인사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입니다. “성불하세요.” 이 말은 “부처님 되세요”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목표는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붙는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이 되십시오” 입니다. 이 말을 한문으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가야 할 길이고 목표입니다. 견성은 자기 성품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성품을 마음이라고도 합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보고 있어야 합니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품을 ‘이것이구나’하고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볼 수 있을까요?
‘반야심경’에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스님이 보이고, 스님의 말씀도 들리는 데 어떻게 꿈이라고 하십니까?”하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의 세계에서 보면 살아가는 것이 곧 꿈입니다. 왜 꿈과 같은 세계에 사는가 하면 ‘전도’ 즉, 뒤집어졌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마음이 뒤집어진 것입니다. 소박하고, 욕심도 없고, 때 묻지 않고, 착하고, 주는 것만 좋아하고, 이렇게 순수하게 살았는데 욕심쟁이가 되었습니다. 시기심도 많고, 욕심이 더 심해져서 심술쟁이로 바뀌었습니다. 욕망과 욕심에 매달립니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좋은 옷, 좋은 가구, 좋은 차, 좋은 아파트 등 좋은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심술이 납니다. 그것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이 옵니다.
욕심 없는 사람에게 무슨 괴로움이 있습니까? 욕심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이 생깁니다. 욕심과 욕망은 본래부터 있던 게 아닙니다. 순수하고 소박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있을 때는 그 자리 그대로 행복이었는데 언제부터 욕심이 생기고 욕망을 쫓기만 합니다.
‘법구경’에 “욕망, 욕심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라 채우려고 해도 채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더 갖고 싶은 것입니다. 그 마음을 이제 바꾸어야 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전도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것은 본래 마음의 고향, 때 묻지 않은 연꽃 같은 마음의 세계, 소박한 근본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욕심을 부리고, 자기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의 흉을 거침없이 보고, 터무니없는 욕망의 덫에 걸려서 그것만이 제일이라 하는 고통 받는 세계를 바꾸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사랑이 부족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착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감싸주는 마음으로, 포용하는 마음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마음공부 하는 것,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연꽃 같은 마음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한다거나 시비를 걸어와도 전혀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온갖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때 묻지 않은 마음입니다. 누군가에게 욕을 들으면 집에 오는 동안 계속 그 생각이 나 너무 속이 상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그렇게 잘해줬는데 왜 나에게 이러는가’ 하면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보지 못해서 입니다. 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견성’해야 합니다. 본래 나의 마음은 파란 하늘과 같습니다. 하늘에 때가 묻습니까? 묻지 않습니다. 천둥번개가 치고, 소낙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지나가고 나면 하늘은 원래 맑고 깨끗한 모습 그대로 일뿐 그 자체에는 전혀 상처가 나지 않습니다.
육조혜능 대사께서도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때가 묻거나 물이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욕한 것이 마음에 남아서 괴롭다고 합니다. 욕은 나쁜 것이고, 욕을 들어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는 틀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떤 욕을 듣던지 근본 마음에서는 흘러가는 바람과 같습니다. 누군가 술을 먹고 지나가다가 욕을 했다면, ‘저분이 오늘 언짢은 일이 있었나보다’ 이렇게 흘려버릴 줄 알아야 공부가 시작됩니다. 놓아두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아직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옛 스님들이 불가에 입문하면 먼저 자신의 성품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또 화를 내었구나, 성을 내었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화가 이틀 사흘 계속되면 본인만 손해입니다. 성품을 보는 공부를 이제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절에 오래 다녔더라도 성품을 보는 공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늘 깨어서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기분이 좋은 줄 알고, 화가 날 때는 화가 나는 줄 알고, 짜증이 날 때는 짜증이 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짜증은 습관이고 습관은 업이 됩니다.
화를 내지 않아야 할 일에도 화를 내기도 합니다. ‘나의 업장이 보통 두터운 것이 아니구나, 화를 내지 말고 조금 더 양보하자.’ 본인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본인이 화가 나는 순간 빨리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빨리 거울을 봐야 합니다. 거울에 비친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내가 모습이지만 내가 봐도 무섭습니다.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다보면 인상이 무섭게 변합니다. 그래서 나를 봐야 합니다.
집안에 문제가 있을 때도 ‘내가 전생의 빚이 있나 보다’하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있다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부득이 져야할 때도 있습니다. 가족끼리 싸우고 이겨서 상금이 오고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상처만 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허물을 보고 고쳐나가는 것이 마음공부입니다.
또 조금 게으른 사람은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상원사에서 항상 새벽 2시30분에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손을 비비고 얼굴을 안마해 풀고 세수를 간단히 한 뒤 정진방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30분 정도 풀고 들어가야지 정진이 원만합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 점심공양을 한 후 낮 12시10분부터 2시까지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는 산에 올라갑니다. 상원사에는 보궁이 있습니다. 보궁까지는 1080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이틀에 한 번은 꼭 보궁을 참배했습니다. 눈이 60cm 쌓인 날도 참배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 9~10시간 공부하는 동안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게으름을 부리겠다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그 자체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스님이 안경을 들어 올리는 게 보이십니까? 스님이 안경을 내리는 게 보이십니까? 자기의 성품을 보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는 놈이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양으로만 보려고 하고 찾으려고 하면 미륵부처님이 오시더라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고 아는 그 자체입니다. 그냥 보고 알 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늘 깨어서 자기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욕심이 일어나면 ‘욕심 좀 줄여라’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진 않았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욕심이 많으면 고통도 많습니다. 더 내려놓고 베풀며 살길 바랍니다. 내가 나를 보면서 악한 마음이 사라지고 따뜻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연꽃처럼 때 묻지 않은 부처님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돌아오도록 정진하여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2월13일 부산 여여선원 큰법당에서 봉행된 ‘경자년 동안거 회향 특별대법회’에서 정여 스님이 ‘늘 깨어서 자신을 보라’는 주제로 법문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