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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출가자의 품격-중

기자명 정원 스님

스님이라도 율장 안 배우면 갈피 못 잡을 수 있어

율장의 출가자 자격 요건은
제악막작과 중선봉행 2가지
자자·포살 등 참회절차 부재
갖가지 경계 부딪히며 혼란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마음 ‘心(심)’자로 귀결된다고 하지만 갓 출가하여 겨우 불법에 물들어 가는 초학자에게 마음의 잣대로서 승격을 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우선은 자신의 몸으로 나타내는 행위와 입으로 드러내는 언어를 부처님께서 요구하신 수행자의 기준에 맞게 교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일 겁니다. 그래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비구는 5년, 비구니는 6년 동안 오롯하게 율장을 공부하라고 부처님께서는 당부하셨지요.

율장에서 요구하는 출가자의 자격요건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악막작의 성격을 가지는 바라제목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선봉행(衆善奉行)의 성격을 가지는 갈마법(羯磨法)입니다. 전자를 지지법(止持法)이라 하고 후자를 작지법(作持法)이라고도 합니다. 비구·비구니가 해서는 안 될 행위규범을 다루는 바라제목차가 개인의 행위에 무게중심이 있다면 갈마법은 승단이라는 공동체에 방점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건도부의 순서를 보면 부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승단의 공동규범에 대한 우선순위를 추론할 수 있어요. 사분율, 십송율, 오분율 등의 율장에서 똑같이 수계법, 포살법, 안거법, 자자법을 차례로 말씀하시거든요. 즉, 수계·포살·안거·자자의 네 가지 행위는 불교승단을 여타 다른 종교와 구분시키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필수과목입니다.

이쯤에서 나는 스님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느낌으로 불안한 이유를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스님의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출가자라면 누구라도 한번은 겪었으며 혹은 지금도 겪고 있을 공통적 불안감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수계 후 교육을 돌아보면 율장 속에 나오는 출가자 대상의 자격요건과 공통규범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죠. 율장을 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공부를 하거나 특별한 인연으로 율원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면, 바라제목차란 수계를 받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써 수계산림 때 한 번 들으면 끝나고, 율장에서 정한 포살은 해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안거란 오로지 선방에 방부 들여 참선수행 하는 것으로만 이해되고, 자자란 개념도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나마 전통강원교육을 통해 출가자의 언행과 몸가짐을 익히고 대중생활의 준칙을 지키더라도 졸업 후 대면하는 환경은 강원과는 다른 경우가 많지요.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신 목적과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없었고 바라제목차와 갈마에 대한 기본교육이 부족했으니 특정 상황에 닥쳐서 출가자가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의 공능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찰이 포살을 하지 않고 참회절차를 통한 청정성을 회복할 기회도 없고, 출가자 본연의 외형과 내면을 승단 구성원과 함께 되돌아보고 교정할 기회도 없습니다. 구족계를 받자마자 학교로, 선방으로, 포교현장으로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가도 갖가지 경계에 부딪히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때론 불안해지기도 하는 것 아닐까요?

율장의 정신을 이해하고 지범개차(止犯開遮)를 제대로 알게 되면 바깥을 향해 치닫는 마음을 안으로 되돌려 내면을 관찰하는 회광반조의 힘이 생깁니다. 계율에 근거한 객관적 자기검열과 내적변혁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수행은 언제인가는 경계에 부딪히고, 지치고, 후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수행 도중에 삿된 경계에 빠져버리는 이가 적지 않았으며, 포교하러 세상 속으로 나갔다가 오히려 세속에 역포섭된다는 이야기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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