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제8칙 승문석상(僧問石霜)

진면목은 어디에나 있어

자물쇠 움직이지 않는 것이 법신
식별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아
움직이려는 행위는 분별의 소산

한 승이 석상에게 물었다. “화상의 진면목은 무엇입니까.” 석상이 말했다. “수염도 없는 자물쇠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석상경제(石霜慶諸, 807~888)는 도오원지(道吾圓智)에게 참문하고 그 법을 이었으며, 20년 동안 석상산에 주석하면서 오로지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일관하였다. 이런 까닭에 그 모습이 마치 고자배기와 같다고 해서 고목중(枯木衆)이라 불렸다.

위의 내용은 역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문답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뜻을 풀어내는 수단으로 언설이 필요하지만 언설은 단순한 언설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것이 교외별전이고 불립문자이기도 하다. 석상경제의 선풍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는 겨울나무처럼 참으로 당당하다. 오로지 좌선에만 매진하는 모습이 그렇고, 문답에 군더더기를 담아두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때문에 답변을 모르면 모른 대로 또 알면 아는 대로 그대로 여법한 문답이었다.

석상이 도오원지를 참문하자, 도오가 말했다. “내 마음속에 거시기[一物]가 들어 있는데 오래되어서 병이 되었다. 누가 그 병을 없애주겠는가.” 석상이 말했다. “마음도 없고 거시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없애려고 하면 병만 키울 뿐입니다.” 도오가 말했다. “참으로 기특하구나.”

석상의 답변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문답도 바로 그와 같다. 한 승이 물었다. “화상의 진면목은 무엇입니까.” 석상이 되물었다. “돌멩이에서도 땀이 나던가.” 그러자 승이 물었다. “법신도 세상에 나와서 교화를 합니까.” 석상이 말했다. “세상에 교화하러 나서는 법이 없다.” 승이 물었다. “그 진신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출세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석상이 말했다. “유리병의 주둥이가 바로 진신이다.”

이와 같은 뉘앙스가 곧 수염도 없는 자물쇠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눈과 뒷머리가 서로 마주보는 것과 같다는 식이다. 무쇠로 만들어진 자물쇠는 무겁고 견고하여 웬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얼굴에 있는 눈과 뒷머리는 마주 볼 수가 없다. 꿈쩍도 하지 않고 마주 볼 수도 없는 그것이 곧 법신이다. 법신은 식별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마주 보려는 행위 및 자물쇠를 움직이려는 행위는 분별의 소산이다. 유리병의 주둥이처럼 일상의 모든 것이 법신의 출세로서 진리의 모습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이리 재고 저리 재는 분별사식으로는 자물쇠를 풀고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보려는 것처럼 난감할 뿐이다. 때문에 투자의청(投子義靑)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삼경에 달이 지니 서산이 밝아오고/ 옛 길이 멀고멀어 이끼가 가득하네/ 자물쇠 흔들릴 때 손 쓸 수가 없고/ 푸른 파도 마음에 산토끼가 노니네

달이 지고나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옛 길은 진리의 길을 상징하는데 아무도 길을 가지 않아 개척되어 있지 않기에 이끼만 끼어 있을 뿐이다. 그런 경우에는 도저히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 것인지도 모르고 누구에게서 배워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오솔길에는 진리의 작용을 상징하는 토끼가 노닐고 진리의 도리를 의미하는 들꽃이 가득 피어 있다.

석상은 자신의 본래면목을 묻는 승에 대하여 수염도 없는 자물쇠가 이리저리 흔들린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본래부터 누구나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자성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이리 기웃거리고 저리 기웃거리면서 괜시리 몸뚱아리는 피곤하고 마음은 부산하게 서대는 모습을 표출한 것이다. 승의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진면목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을 특별한 선지식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찾으려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본래성품인 자물쇠가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평지풍파일 뿐이다. 그 자물쇠에 들어맞는 열쇠는 무엇인가. 요지부동의 좌선수행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