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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탁발 비판하는 바라문을 교화하다

“나에겐 믿음이 씨앗이고 고행이 비”

바라문인 ‘까시 바라드와자’
탁발에 대해 좋지않게 여겨 
붓다에 땀흘려 일하라 비판
붓다 “중생 보듬어야 수행자”

기원 전 6세기 무렵 인도의 사상계는 사문전통과 바라문전통이 대립하고 발전하던 시기였다. 사문(沙門, samaṇa)은 바라문교를 비판하며 등장했던 자유사상가들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래서 경전을 보면 붓다를 ‘사문 고따마’라고 표현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교도들이나 아직 붓다의 제자가 되지 않은 이들이 보통 ‘사문 고따마’라고 호칭한다.
 
사문들은 기본적으로 ‘탁발’이란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붓다 역시 승가 내에 철저하게 ‘탁발’ 문화를 정착시켰고 수행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생산에 종사하지 않도록 하였다. 출가 수행자들이 자체적으로 음식을 조달하고 저장하게 되면 재가자와의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붓다는 출가 수행자와 재가자는 서로 의지하며, 같은 지향점을 향해 가는 수행공동체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이러한 붓다의 의도와는 달리, 당시 많은 이들은 ‘탁발’하는 수행자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것도 현실이다. 붓다 역시 마찬가지로, 몸소 ‘탁발’을 하면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던 이들과 만나게 된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라문 까시 바라드와자(Kasi Bhāradvāja)’였다.

마가다국의 다끼나기리(Dakkhiṇā giri)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는 파종할 무렵이었다. 붓다는 탁발을 하기 위해 까시 바라드와자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마침 식사 시간이었기에, 까시 바라드와자는 일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탁발을 나온 붓다를 본 까시 바라드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그런 뒤에 음식을 먹습니다. 사문이여, 그대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드십시오.”

조선시대 정도전도 ‘불씨잡변’이란 책에서 불교를 비판하는데 그 중 하나가 ‘탁발’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것으로 보고 출가 수행자들을 ‘간사한 백성’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정작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고혈을 빨아먹은 것은 유생들이 아니었던가. 여하튼 ‘탁발’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왕조와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있어 왔던 것 같다. 까시 바라드와자 역시 붓다에게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사십시오”라고 대놓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붓다는 “나 역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바라문은 “나는 그대의 멍에도, 쟁기도, 쟁기날도, 황소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 말씀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붓다는 다음과 같은 시로 대답한다.

“믿음이 씨앗이고 고행이 비이며 지혜가 나의 멍에에 묶인 쟁기라네.
부끄러움이 수레의 채이고 사유가 끈이며, 알아차림(sati)이 나의 쟁깃날이네.
몸과 말을 수호하고 배에 맞는 음식의 양을 아네.
나는 진실을 수확하며 온화함은 나의 휴식이라네.
내적인 평온으로 이끄는 정진이 나의 짐을 싣는 황소라네.
슬픔이 없는 곳으로 도달해서, 그곳에 가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네.
이와 같이 이 씨앗들이 뿌려지면 불사의 열매를 거둔다네.
이러한 씨앗을 뿌리고 나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한다네.(SN.I, pp.172~ 173)”

출가 수행자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들이 있기에 길을 잃고 방황하며 고통 받는 존재들이 안심(安心)의 길을 찾게 된다. 그래서 붓다는 믿음, 진실, 부끄러움, 몸과 말의 절제, 진실, 온화함, 평온, 정진 등을 농사짓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농사가 사람의 육체를 살찌운다면 출가 수행자의 삶의 모습은 중생의 마음을 살찌우게 하는 것임을 가르친 것이다.

이를 보면 출가 수행자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그 실천의 행이 중생들에게는 감로가 되는 것이다. 그 감로를 마시고 중생은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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