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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보석같이 빛나는 음악-쇼팽의 마주르카

기자명 김준희

연주자 재량 연주서 엿보이는 부처님 대기설법

평생 폴란드 춤곡 마주르카 50여곡 작곡하며 애착 보여
전통 리듬에 리듬·선율·화선 변화 시도해 색다르게 재탄생
청년 쇼팽의 휴머니즘과 개인적인 아름다움까지 엿보여

폴란드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

마주르카(Mazurka)는 3박자 계통의 폴란드 민속 춤곡이다. 느리고 감상적인 쿠자비악(Kujaviak), 활기찬 보통빠르기의 마주르(Mazur), 약간은 거친 성격의 빠른 템포 오브렉(Obrek)의 세 가지 형태의 민속 춤곡이 융합되어 마주르카라고 불리며, 정해진 안무 없이 춤을 추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색다르게 변하는 자유로운 장르이다. 폴란드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프레데릭 쇼팽은 언제나 폴란드 정서를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평생에 걸쳐 마주르카 50여곡을 작곡했으며, 또 다른 폴란드 대표적인 춤곡인 폴로네이즈(Polonaise)보다 마주르카에 더 애착을 가졌다.

폴로네이즈는 폴란드 귀족들의 세련된 전통 춤곡을 양식화 시킨 규모가 큰 장르이지만, 그에 반해 마주르카는 친근하고 때로는 투박한 폴란드의 농민, 즉 보통사람들을 위한 짧은 춤곡이었다. 쇼팽은 그 안에서도 다양한 리듬을 바탕으로 변화로운 색채를 가진 선율, 미묘한 화성, 불규칙적인 패턴 등을 선보이며 기존에 없었던 색다른 느낌의 작품들을 남겼다. 

마주르카 Op.7-1 Bb장조는 작품 번호 순으로는 다섯 번째이지만 마치 이 마주르카 작품집의 서문을 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모든 마주르카 중 가장 대중에게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보통 빠르기의 밝은 느낌인 이 곡은 쇼팽의 다른 작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유머스러운 면도 담고 있다. 가볍고 경쾌한 붓점이 중심이 되는 이 곡은 군더더기 없는 깨끗함과 맑으면서도 올곧음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쇼팽의 작품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루바토(Ruba to)’이다. 루바토는 연주자가 재량에 따라서 연주하는 부분의 템포를 의도적으로 조금 빠르게 혹은 조금 느리게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선율을 자유롭게 ‘밀당(밀고 당기는 것)’하는 것이다. 낭만시대에 잘 쓰인 루바토는 특히 피아노 작품을 연주할 때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데, 주로 느린 템포의 곡을 연주할 때 매우 중요하다. 

보물 제1153호 묘법연화경.

루바토가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할 장르가 녹턴(Nocturne)과 마주르카이다. 특히 마주르카는 느린 곡 뿐 아니라 빠른 곡에서도 리듬과 선율에 적절하게 루바토를 사용해야 하는 장르다. 특히 마주르카 Op.7-1는 루바토를 통해 쇼팽이 추구했던 폴란드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쇼팽의 마주르카와 작품 속에 표현된 루바토는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근기에 따라 법을 설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법화경'의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가 떠오른다. 

부유한 장자의 집에 불이 났을 때 아이들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놀고 있었다. 집이 불타고 있어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에도 아이들은 떠들고 뛰어놀며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다. “얘들아, 대문 밖에 너희가 좋아하는 양거(羊車)·녹거(鹿車)·우거(牛車)가 있으니 나가면 그것들을 줄게” 라고 하며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장자는 아이들에게 백우거(大車)를 주었다. 

각각 성문, 연각, 보살로 비유되는 삼거와 일불승(一佛乘)으로 비유되는 백우거를 조심스럽게 쿠자비악, 마주르, 오브렉과 쇼팽의 마주르카에 환치시켜 보고 싶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내가 만일 무인도에 딱 한 권의 피아노 책을 가져가야 한다면, 쇼팽 마주르카 작품집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속 춤곡으로만 흩어져있던 세 장르를 하나의 마주르카로 새롭게 완성한 쇼팽의 독보적인 예술성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바르샤바 인근(Zelazowa Wola)의 쇼팽 생가.

쇼팽은 스무 살이 되던 해, 비엔나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연주여행 중 모국 폴란드 혁명의 실패로 프랑스로 망명하여 죽을 때까지 고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고집스럽게 폴란드어를 사용했고 편지는 물론이고 그의 일기나 메모, 편지도 모두 폴란드어로 남아있다. 프랑스식 이름과 여권을 제외하고 쇼팽은 ‘폴란드인보다 더 폴란드인’ 다운 사람이었다. 쇼팽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마주르카를 작곡했고 죽기 전까지도 마주르카를 썼다. 돌아갈 수 없는 조국 폴란드, 불에 타는 집을 나와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써내려간 마주르카에는 쇼팽이 그리는 아름답고도 소중한, 그리고 이상적인 폴란드의 모습이 담겨있는 듯하다. 

마주르카 Op.33-3 D장조는 드물게 씩씩하고 역동적인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왈츠와 같은 3박자 계통이지만 다소 거칠고 원초적인 모습과 냉소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쇼팽이 조국 폴란드의 당당한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던 바람을 담고 있는 듯 하다. 음악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폴란드의 영광과 완성되지 않은 조국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 같다.

마주르카 Op.17-4는 내면적이고 차분한 곡이면서도 폴란드 특유의 정서가 잘 스며들어있다. 폴란드 민속악기인 Duda(백 파이프와 비슷한 악기)의 소리도 묘사되어 있으며, 선법적인 느낌과 모호한 조성감, 증·감 음정 등을 통한 이국적인 느낌도 담고 있다. 쇼팽의 대곡에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정서를 섬세하고 때로는 은밀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쇼팽의 마주르카의 선율들은 목표지점 없이 계속 반복되는 짧은 프레이즈(phrase)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약박에 엑센트를 두어 의외의 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규모가 큰 작품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음악적 아이디어의 발전이나 변형보다는 아이디어들의 반복적 나열이 대부분이다. 마주르카는 청년 쇼팽의 고국에 대한 휴머니즘과 함께 개인적인 은밀한 아름다움을 모두 가지고 있는 숨은 보석 같은 곡들이다. 어쩌면 쇼팽에게는 마주르카가 음악적 방편과 동시에 예술의 완성과도 같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음악 영감과 독창성의 원천이 된 쓰러져간 조국을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보통사람들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쇼팽의 마주르카에서 ‘법화경'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이상적인 조국의 모습을 그리려했던 쇼팽의 마주르카와 ‘법화경'의 말씀이 오버랩된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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