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독교 종말론과 미래불사상 동일시 말아야”
“언론, 기독교 종말론과 미래불사상 동일시 말아야”
  • 법보
  • 승인 2020.03.09 14:02
  • 호수 152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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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 기고

기독교 최후 심판은 특별한 사람만 구원
미륵불은 설법 등 방법으로 중생 구제
불교에선 애초 ‘종말론’이 성립하지 않아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이 3월9일 ‘종말론과 미래불사상’ 제하의 글을 보내왔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신천지예수교의 종말론과 불교의 미래불사상을 동일시하는 것과 관련해 마성 스님은 이에 대한 역사적·사상적 차이를 지적했다. 편집자

코로나19 사태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신천지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지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이 신천지의 자의적 성경해석을 이단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개 사이비종교가 그렇듯, 신천지도 기독교의 종말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중앙일보에서는 신천지가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종말론이지만, 그 뿌리는 불교의 미래불사상이고, 그것이 도교에 침투해 천지개벽 사상을 배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마치 불교에서도 종말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종말론과 불교의 미래불사상은 그 역사와 사상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

기독교 종말론은 인류의 역사에서 일어날 사건이나 우주의 마지막에 대한 신학적 이론이다. 성서에 따르면 부활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다시 재림하는 것이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이다. 그때 신에 대한 믿음 유무에 따라 천국에 가든지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구약의 내세사상은 불우한 처지에 놓이게 된 유태교도의 현실에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 이는 현세에 대한 신의 최후의 심판이 내리고 유태의 구세주 메시아가 나타나 하느님이 지배하는 세계가 오리라는 사상이다.(위키백과)

그러나 불교의 미래불사상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수많은 과거불도 팔정도를 통해 세계의 끝(괴로움의 완전한 종식)까지 이르게 되었고, 장래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하더라도 팔정도로 세계의 끝까지 갈 것이다. 팔정도 대신 오계나 팔재계(八齋戒) 혹은 십선업도(十善業道)를 닦으면 장래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할 때, 미륵불을 만나 곧바로 제도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미륵불은 인간을 심판해 천당과 지옥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설법이라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특별한 사람만 구원한다는 기독교의 종말론과는 그 발상 자체가 다르다.

연합뉴스에서는 기독교의 종말론과 유사한 사상이 동아시아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이른바 천지개벽 사상이다. 즉 불교의 미륵사상을 발전시킨 것이 후천개벽 사상이다. 이 미륵사상이 강렬한 종말론을 형성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륵사상을 불교의 종말론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연기법에 따르면 현상계는 생성, 지속, 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 또 불교에서는 윤회의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윤회의 종식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윤회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면 더 이상 윤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세상의 끝이 있다는 종말론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붓다는 “세상의 끝이 있는가, 없는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것을 ‘무기(無記, avyākata)’라고 부른다.

동아시아에서 태동한 천지개벽 사상이나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해 용화세계를 구현한다는 사상은 역사적으로 폭정에 시달리거나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민중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이것은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희망마저 없으면 현실의 고통을 참고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후천개벽을 내세운 신흥종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 일부 신흥종교 교주들이 자신을 미륵의 화신이라고 자처하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는 불교교리에 전혀 근거하지 않고 있다.

마성스님
마성스님

미륵신앙의 토대가 되고 있는 ‘미륵상생경’이나 ‘미륵하생성불경’에 나타난 사상을 검토해 보면 말세론이나 종말론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열심히 정진하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종말론과 불교의 미래불사상은 전혀 다르다. 제발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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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2020-03-10 06:05:38
언론들은 종교가 논란에 오르면은 한통속으로 몰고가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는 내가 부처고 나가 깨우쳐야할 당사자인데 무슨 종말론이랍니까.

Beopbo 2020-03-09 14:42:03
내용중, "미륵사상을 불교의 종말론으로 보면 곤란하다.
현상계는 생성 지속 소멸의 반복
그러나 윤회의 종식은 알 수 있다. 수행을 통하여 윤회를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
따라서 불교에서는 세상의 끝이 있다는 종말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즉 '현상계는 계속 변하나 윤회는 끝낼 수 있는 것. 하지만 윤회는 끊어져도 외부의 현상계는 계속 변하기에 종말론이 아니다.' 인 것인지 아니면,
'현상계는 계속 변한다, 윤회는 종식시킬 수 있으나 아라한과에 이르지 않음으로써 현상계에 머물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인지 애매하네요.

아미타불 2020-03-09 14:33:00
마지막날은 모든 증오와 원한 이기심 등의 번뇌가 조복된 때이며, 그때 비로소 청정한 마음이 밝혀지니 그자체가 극락이고 미륵불의 출현이자 예수의 재림이렜지요.
정해진 해석이 있지 않고 미륵불이 실제로 강림한다고 사고하면 예수가 구원을 하러 내려온다는 발상과 같은 것이 되며 기독교적 발상이 되는 것이겠지요.
고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미타불을 외나 예수를 외며 기도를 수행삼으나 매한가지 입니다.
다만 무엇을 외던 기복이된다면 그것이 기독교적 발상이 되는 것이겠구요.
그것에 대한 표현방식은 서로 상이할 수 있으나 근기에따라 하나로 합쳐질 수도 둘로 상반되게 갈라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