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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장 ‘조사선’의 ‘불립문자’

기자명 선응 스님

마음으로 ‘마음의 근원’ 깨달아야

부처님은 경·율·론 삼장 설하고
조사는 마음 깨닫게 하여 성불
경 중심 논을 쓰고 해석하지만
한마음 회광반조 함이 더 중요

8장에서는 ‘관행’으로 ‘견성성불’할 것을 설했다. ‘금강삼매경론’에서 “관행에서 관은 공간적으로 경계와 지혜가 통하는 것을 말하고, 행은 시간적으로 항상 그 인과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한다. ‘관행’은 지관삼매에서 ‘마음과 몸이 일치’되어 공을 체득하고 고통에서 해탈하는 4선정으로부터 몸은 청정하지 않고, 감수는 고통이고, 마음은 무상하며, 제법은 무아를 관하는 초기불교 4념처와 부파불교의 12연기의 관법, 대승불교의 염불관법과 ‘간화선’ 수행 등이다.

9장은 “그렇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모든 법을 분별해 보이시고 마지막에 ‘필경공’을 설하셨고, 조사들은 말 구절을 보이시니 그 자취가 의지에서 끊어지고, 이치는 마음의 근원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종밀이 ‘절요’에서 “종사는 법에 근거하고 말을 떠나니, 자취가 없는 말로 집착을 논파하고 종지를 드러나게 한다. 이것이 ‘자취에서 생각 끊었다’는 것으로 이치는 ‘마음의 근원’에서 나타난 것이다”고 한 내용이다. 경이란 초기불교의 ‘아함경’이고, 분별한다는 것은 부파불교의 ‘논장’이다. 대승보살인 ‘용수’가 ‘중관론’을 저술하여 대승을 완성하고 ‘구마라집’이 한역한 후에 ‘길장(吉藏, 549∼623)’이 ‘필경공’을 해석해서 도교의 ‘무’를 ‘공’으로 해석하는 과실을 논파했다. 

그 후 중국에서 종파불교가 성립되었다. ‘필경공’이란 ‘능엄경’에서 “본성이 없으나 필경에 공한 것에 미혹한다. 본래 옛적부터 미혹이 없다. 미혹과 깨달음이 있는 것 같지만 미혹함을 깨달으면 미혹은 멸하며 깨달으면 미혹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며, ‘대지도론’에서 “필경공이란 유위도 공하고, 무위도 공하여 모든 존재를 논파하여 털끝도 없는 것이 필경공이다”라고 한 것이다. 자취는 ‘이심전심’으로 계승한 선사들의 자취이며, ‘의지(意地)’는 ‘심지(心地)’이다. ‘이(理)’는 인과적 천리이고 법률이며 사람의 도리이다. 

선법에서는 ‘마음’이다. ‘심원(心源)’은 ‘심성’으로 만법의 근원이다. ‘정주자(淨住子)’에서 “원래 중생은 모두 의지를 연하여 탐욕·성냄·어리석음을 일으켜 스스로를 해치고 타인도 해치게 하였다”고 하고, ‘보리심론’에서 “망심이 만일 생기하면 알고 따르지 말라. 망념이 만일 쉬는 때에 ‘마음의 근원’이 공적해서 만덕이 갖추어지고 묘용이 무궁하다”고 하였으며, ‘천태지관’에서도 “결가부좌하고 손을 결인하고 입술을 닫고 혀를 천장에 대어 사상과 실상의 ‘심원’을 한 번 그치면 법계가 같이 공적하다.(중략) 만일 비추어 알려고 하면 ‘심원’을 알아야 한다. ‘심원’에는 둘이 없다. 곧 일체 법이 다 허공과 같다”고 하니 중생과 부처가 모두 ‘마음’에서 생기한다. 

그래서 ‘마음’으로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야 한다. 서산대사 해석은 “제불은 만대에 의지할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치를 자세히 보이셨다. 조사는 있는 즉시에 해탈하게 하시기 때문에 뜻을 기억하여 현묘를 통하게 한다. 자취는 조사의 자취를 말하고 뜻을 기억하는 것은 배우는 자의 의지를 말한다”이다. 부처님께서는 ‘경·율·론’ 삼장을 설하셨지만, 조사는 문자로 설하지 않고 바로 ‘마음’을 깨닫게 하여 성불하게 한다. 

‘마음’은 ‘심의식(心意識)’이다. ‘문수문경’에서 “심(心)은 뜻이 모인 것이고, 의(意)는 뜻을 기억하는 것이며, 식(識)은 뜻을 나타내어 아는 것이다. 의식의 자성을 ‘심의식’이라고 한다”고 하고, 영가현각은 “법의 재물을 손괴하고 공덕을 멸하니 자신의 ‘심의식’을 연유하지 말라. ‘심원’을 가리켜서 일념도 생하지 않으면 전체를 밝히게 되는데 왜 어지럽게 분별하고 논쟁하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게송은 “임의대로 해설을 달지만, 팔은 밖으로 굽지 않는 법이라네.” 경을 중심으로 부파들이 논을 쓰고 종파별로 해석을 하지만 모든 시비는 자신들의 주장을 벗어나지 못하니 분별을 떠나 ‘한 마음’을 ‘회광반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28호 / 2020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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