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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9칙 동산조의(洞山祖意)

정답(定答)없는 화두지만 정답(正答)은 있어

이치 통하지 않는 역설 제시로
도리어 일념 되돌리게 만들어
이성·상식 초월한 이치 드러나

한 승이 동산에게 물었다. “달마조사께서 서쪽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동산 계곡의 물이 거꾸로 흐르면 그때 말해주겠다.”

여기에서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는 조동종의 개조이다. 질문한 승은 통방납자(通方衲子)라 불리는 사람인데, 그는 달마조사가 아무것도 전한 바가 없다는 도리는 아직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에서 조사는 보리달마이다. 당나라 시대에 형성된 소위 조사선(祖師禪)이라는 말도 달마조사를 상징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조사서래의는 일종의 화두로 제시되는 말인데, 그 처음은 탄연(坦然)과 회양(懷讓)이 혜안(慧安)에게 질문한 것에서 유래한다. 화두는 정답(定答)이 없지만 정답(正答)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해답이 없는 답변이지만 굳이 답변이라면 동토에 대승의 불법을 전승하기 위해서랄까, 혹 정법안장을 부촉해줄 제자를 찾으러 왔다고나 할까.

그래서 달마조사서래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궁극적인 물음으로서 자기의 본래면목 내지는 본지풍광에 대한 추구였다. 어떤 경우에는 일원상(一圓相)이라고도 하였고, 바로 이것[此事]이라고도 하였으며, 거시기[渠]라고도 하였고, 마음이라고도 하였으며, 위음왕불 이전(威音王佛以前)이라고도 하였고, 공왕불(空王佛)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다. 통방납자가 굳이 언설로 답변을 듣고자 하였기 때문에 동산은 승의 분별심을 알아차리고 즉각적인 답변을 제시하였다. 어떠한 이치나 도리를 동원해도 통하지 않는 역설적인 도리를 제시함으로써 도리어 거기에서 일념을 되돌리게끔 하려는 행위였다. 곧 계곡의 물이 아래서 위로 흘러간다면 그때 답변해주겠다는 것이다. 달리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이라고도 말하는데, 동산의 물이 위로 흐른다든가 혹은 동산이 물위로 간다든가 어떻게 해석을 하든 상관은 없다. 단지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 이치를 드러낼 뿐이다. 동산의 이와 같은 말에 통방납자가 당황하였는데 그것이 곧 동산의 노림수였다.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승은 망연할 수밖에 없었다. 일체의 집착과 분별이 탈락하는 찰나였다. 이때 동산은 통방납자의 마음이 텅 비어 있음을 보았고, 승은 동산의 답변에서 자신의 본래면목을 보았다. 줄탁동시(啐啄同時)였는데 줄탁이시(啐啄異時)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그것은 스승과 제자가 따로 없는 사제전시(師弟全時)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방거사는 딸인 영조에게 말했다. ‘옛말에 온갖 낱낱의 잡풀에 조사의 모습이 또록하게 서려있다고 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 영조가 말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면 뭐라고 했으면 좋겠니.’ ‘온갖 낱낱의 잡풀에 조사의 모습이 또록하게 서려있습니다.’ 방거사가 껄껄 웃어버렸다. 만약 방거사와 영조의 대화를 듣고 깨우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파도일 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치솟는 해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흐르는 물속에 허우적거리다가 빠져죽고 말 것이다.

그만큼 선법의 도리는 역설과 비유로 가득 차 있다. 그 역설과 비유를 딛고 일어서는 곳에서 초월과 승화의 법열을 맛본다. 때문에 그와 같은 경지에서 벗어난 눈으로 보자면 때로는 엉뚱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걸 것이다. 동산은 이전 자신의 깨침의 경험을 통방납자에게 고스란히 드러내보였다. 그 때문이었는지 승은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동산도 다그치지 않았다. 방거사가 영조에게 보였던 웃음처럼 동산은 물끄러미 승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승은 단지 자신이 터득한 맛을 조용히 감상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정중하게 큰절을 드리고 그곳을 미련이 없이 떠났다. 훗날 통방납자는 동산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동산도 찾지 않았다. 그러면 승은 돌아올 필요가 없어서였던가, 아니면 노잣돈이 없어서였던가. 설령 어쩌다 돌아온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조사서래의의 도리는 누구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8호 / 2020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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