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불교종합 잡지 ‘불교’ 문화재 가치 된다
일제강점기 불교종합 잡지 ‘불교’ 문화재 가치 된다
  • 임은호 기자
  • 승인 2020.03.09 18:08
  • 호수 15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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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3월9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예고
일제 종교 간섭 대응한 불교계 모습 파악 가능
만해 스님 편집장 활약…해외 불교소식도 전해
문화재청은 3월9일 “불교계 주요 인사들의 기고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불교계 현실 인식이 담겨있는 잡지 ‘불교’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예고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창간돼 대표적인 불교종합 잡지로 평가받았던 ‘불교’가 문화재로 지정된다. 1944년까지 총 175회 간행된 ‘불교’는 일제의 종교 간섭과 불교정책, 그에 대응하는 불교계 모습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왔다. 현재 동국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문화재청은 3월9일 “불교계 주요 인사들의 기고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불교계 현실 인식이 담겨있는 잡지 ‘불교’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예고한다”고 밝혔다.

1924년 창간된 ‘불교’는 1933년 108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가 이후 속간돼 1937~1944년까지 67회 더 발행됐다. ‘불교’는 주권 강탈 시기, 불교사상과 문화사 정립으로 근대불교 실현뿐 아니라 우리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한글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환기했는데 권상로 1920년대 ‘불교’ 편집자는 우리말 찬불가를 지어 권두언에 실었고 조학유 작사가의 찬불가를 악보와 함께 실어 근대불교 의식을 정립하는데 기여했다. 1931년부터 ‘불교’의 편집 겸 발행을 맡은 만해 한용운 스님(1879~1944)은 권두언에 우리말 산문시와 창작 시조를 게재하고 ‘불교시단’란을 마련해 젊은 시인들이 참여한 불교문학의 향연을 마련했다. 만해 스님은 1931년 안심사에서 조선 초의 언해불서 목판 658판목을 발굴해 잡지에 소개하고 회원을 모아 영인본으로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언해 경판으로는 “월인천강지곡 4권의 판목만 전해지던” 당시에 이뤄낸 만해 스님의 발굴 성과는 당시는 물론 현재 우리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만해 스님은 또 '불교'에 정(政)‧교(敎)를 분리하라’(제87호, 1931.9) ‘조선불교의 개혁안’(제88호, 1931.10) 등의 논설을 게재해 일제의 종교 간섭을 비판하기도 했다.

‘불교’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해외 불교계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1920년대 ‘불교’에는 일본과 중국의 불교계 소식이 다수 수록돼 있다. 항주 고려사 중건을 위한 국내와 중국 불교인들의 활동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있고 홍콩 대만을 포함한 범중국계 불교소식, 장종재 등 중국계 인맥과 한국, 일본 간의 상호 방문 교류 등도 소개돼 있다. 이와 함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불교관련 소식,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반종교운동 관련 소식 등도 실시간으로 알리기도 했다.

‘불교’는 불교청년들의 성장과 독립의 바람을 일으킨 잡지로도 평가받는다. 초창기 필진인 백성욱, 이영재, 김태흡 등의 글에서 불교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동경 유학생 기관지인 ‘금강저’에 수록된 국내 불교계에 대한 비판적 제언은 실시간으로 국내에 전해져 ‘불교’의 편집과 내용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휘보’란에 국내 고보와 전문학교, 일본 대학의 입학생, 졸업생 소식이 상세히 전하고 각 사찰에서 세운 강원의 입학생과 수료생 명단이 상세히 소개됐는데 이를 계기로 1929년 강원 학인들이 ‘회광’을 불교청년회가 1931년 조선불교청년총동맹 기관지로 ‘불청운동’을 발간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해당 유물은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전부 보존돼 있어 완결성이 있으며 일제의 불교정책과 그에 대응하는 불교계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어 근대불교연구를 위해서도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한편 같은날 광주 구 무등산 관광호텔 3개동이 국가등록문화재 제776호로 등록됐다. 조계종 원효사 소유인 이 호텔은 한국전쟁 이후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중앙정부에서 설악산, 서귀포, 무등산 등 국내 명승지에 건립한 관광호텔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로 관광사적 의미가 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임시 피난처로 사용됐던 측면에서 지역의 근대사적 가치가 있다는 게 문화재청 측의 설명이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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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 2020-03-10 23:33:44
동국대 도서관은 열일하네... 젊은직원들이 투입이 되니 역시.
개인적으로 승가대 기사였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