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문 중요성과 요건
발원문 중요성과 요건
  • 우봉 스님
  • 승인 2020.03.16 13:23
  • 호수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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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선방에서 화두 드는 게 녹록치 않았던 때가 있었다. 뭔가를 연구하면 매일 진척이 있겠지만 참선은 전혀 달랐다. 머리는 상기되고 나 자신의 한계에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당시 옆에서 공부 잘하시던 선배스님을 붙들고 하소연을 하자 이렇게 말씀했다. “부처님 전에 발원을 하세요. 깨달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간절한 발원입니다.” 그때 치료약을 받은 듯이 기쁘면서도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부처님 신도가 되고 스님까지 돼서 화두와 싸우려고만 했지 발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업장의 두터움과 중생의 한계를 느낄 때 겸허해지기 마련이다. 이 겸허함에서 불심이 깊어지고 발원이 더해진다. 신심 깊은 불자일수록 겸손하고 더 많이 발원한다. 수행이 자칫 상(相)으로 변질된다면 그 독을 빼는 것이 발원이다. 삶속에서 의욕과 방향을 잃고 헤맨다면 발원을 통해 길을 찾을 것이다. 삼세제불보살님과 역대조사님 중 발원 없이 성취하신 분은 없다. 부처님 가피 받는 것도 발원 없이는 어렵다.

근래 우리 불교계에 발원이 소홀해졌다. 불자들 스스로 발원하는 법을 교육받지 못했거니와 일상에서 행하지도 않고 남들에게 전수해주지도 못한다. 발원이 종교의 시작과 끝인데도 안하고 있는 것이다. 불자 중에 불교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분들이 많은 것은 발원의 결핍에 이유가 있다.

그러면 발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렵게 여기지 말고 부처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해보자. 먼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귀의할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에 대한 나의 진심을 전하려고 할 때 ‘찬탄’하게 된다. 이때 부처님에 대한 내 생각들이 표현되기 마련이다. 상대를 칭찬하려면 상대를 잘 알아야 하듯이 부처님을 찬탄하려면 부처님의 법문과 경지를 체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의할 점은 자기가 느끼는 부처님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갓 입문한 사람이 ‘시방삼세에 상주하시는 부처님’이라고 찬탄한다면 과연 그렇게 느껴서 말하는지 궁금해진다. 차라리 ‘저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신 부처님’이 정직하지 않을까 싶다. 남이 쓴 화려한 표현을 베끼는 건 공허할 뿐이다.

그 다음은 참회를 하자,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고 내 마음 속에 묻어둔 부끄러운 일들을 부처님께 드러내자. 옆 사람에게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된다. 참회는 구체적이어야 좋다. 개인의 발원에 포괄적 참회보다는 행위를 건건이 분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는 발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막연한 내용보다는 명확한 소원이 좋다. 예를 들어 막연한 ‘학업성취’보다는 ‘오늘은 영어단어 몇 개, 수학문제 몇 개를 꼭 풀게 되기를 기원’하는 수준으로 구체화할 수도 있다. 또 이기적이거나 기복적이면 안 된다. 그저 출세하려고 ‘대학합격’을 소원하는 것은 욕심이다. 대학합격 이유가 지식과 지혜를 갈고 닦아 불교와 우리 사회에 공덕을 짓기 위해서라면 자기의 소원이 원력으로 승화한다.

마지막은 회향이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찬탄하며 참회하고 원력을 세운 모든 행위는 다 공덕이 있다. 이 발원의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부처님의 가피로 천백 억배로 늘어나서 내 주위 사람들과 모든 중생에게 골고루 나눠지기를 바라자. 내게 좋은 일이 어찌 나만 좋겠는가. 나와 같은 소원을 바라는 모든 중생에게 회향되기를 부처님께 기원하자. 그리고 자신이 항상 염하는 부처님께 세 번 귀의하면서 발원문을 마치면 된다.

처음부터 잘 할 것은 바라지 말자. 그저 매일 수시로 하다보면 점차 잘하게 된다. 신심도 더 생기고 생각도 분석적·구체적으로 하게 되며, 자비심과 삶에서 자신감도 커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은 점은 ‘언행일치’이다. 자칫하면 말만 더 번지르르해지고 가식적이 될 수도 있다. 부처님 앞에서 정직하고, 소박하게, 담담하게 발원하는 것을 꼭 명심하자.

우봉 스님 서울 호압사 주지 wooborn@hanmail.net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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