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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독립운동과 미완의 과제

기자명 심원 스님

시절이 하 수상(殊常)하다. 삼월이면 남녘에서 전해지던 매화 향기 봄소식이 코로나 포비아에 밀려 아득하기만 하고, 대한민국은 지금 멈추어 선 듯하다. 공식적인 국가 행사조차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불가피한 경우 최소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101주년을 맞이한 3·1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다수 지자체는 3·1절 기념식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내걸었고, 대통령이 참석한 중앙정부 기념식도 50명 정도의 관계자만 모여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지난해 1만명 넘게 참석하여 화려하게 거행된 광화문 행사에 비하면 조촐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기념식이었다.

3·1절은 광복절만큼이나 우리 민족에겐 매우 뜻깊은 날이다. 일제 식민통치에 저항한 민족독립운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당시 불교계도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한 만해 스님과 용성 스님을 필두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리고 3·1만세운동 이후에도 불교계는 상해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거나, 국경을 넘나들며 무장투쟁에 앞장서거나, 군자금을 모연하여 조달하는 등 꾸준히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불교의 항일운동은 일반의 항일 운동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일제하 불교계는 나라의 독립 못지않게 불교의 자주권 회복이 절실하였다. 3·1운동으로 고양된 항일 의식은 자주화운동을 촉발시켰고 이후 사찰령폐지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운동을 주도한 조선불교청년회와 불교유신회 승려들은 1910년 이회광의 굴욕적인 ‘원종-조동종’ 연합맹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임제종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불교 수호와 정교분리를 주창하였다. 핵심은 사찰령 철폐였다. 

사찰령(寺刹令)은 한일병합 조약 체결 이듬해인 1911년 6월3일 반포되었다. 전문 7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사찰령에 의하면, 사찰을 병합‧이전하거나 폐지하고자 할 때는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주지 취임의 경우 본산 주지는 총독에게, 말사 주지는 도장관에게 허가를 얻어야 했다. 이는 총독부가 조선 사찰의 인사행정을 완전 장악하고 재정권을 통제할 수 있게 한 조치로, 이 법령을 통해 총독부는 조선의 사찰을 직할 관리하였다. 

또한 전국에 30개의 본산을 정하고 모든 사찰을 본산 아래의 말사로 편입시킨 30본산체제는 한국불교의 전통을 파괴하였다. 산중공의제는 무력화되고 막강하게 주어진 주지의 권한은 불교계를 타락시키는 요인이 됐다. 더욱이 분할통치 목적으로 30개로 나눈 본산체제는 조선불교의 통합교단 구성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찰령과 본산제는 불교계가 자주권을 상실하고 관권에 예속되게 했으며, 주지 권한의 비대화는 주지전횡 시대로 이끌었다. 설상가상으로 1926년에 대처식육을 허용하는 사법이 개정됨으로써, 한국불교의 청정승풍은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총독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불교계의 자주권을 회복하려 한 사찰령철폐운동은 가장 불교적인 항일투쟁으로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불교계의 강력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사찰령을 끝까지 고수했다. 

사찰령은 해방 후에도 효력을 지속하다가 1962년 폐지되었지만 곧바로 불교재산관리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기존의 사찰령과 일본의 종교법인법 중 규제에 관한 부분만 발췌하여 제정되었기에 사찰령과 큰 차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모든 사찰과 주지에 대해 관할 관청에 등록할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사찰령보다 규제 요소가 더 많은 악법이 되었다. 이 같은 이유로 불교계에서는 이 법의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1987년 전통사찰보존법으로 대체되었고, 현재는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으로 법명이 변경되었으나 국가의 규제는 여전히 법령 속에 존속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제강점 하에서는 모든 종교단체가 법의 규제 대상이 되었으나 해방 이후 현재까지 규제대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사찰이 유일하다. 나라는 주권을 찾았으나 불교의 자주권 회복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110년 전에 시행된 일제 사찰령의 상흔이 참으로 깊다고 아니할 수 없다. 상흔을 지우고 자주권을 회복해야 할 종단의 책임이 묵직하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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