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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0칙 협산답불(夾山答佛)

스스로 만든 집착·분별의 모래성

상대방을 일깨우는 것 만큼
자신 깨어있음 점검한 협산
상대를 미련없이 떠나게 해

한 승이 협산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협산이 말했다. “그런 질문에는 손님도 없고 주인도 없는 법이다.” “그러면 평소에는 어떤 사람들과 대담을 합니까.” “문수하고는 더불어 물놀이를 하였는데 보현하고는 아직 꽃을 꺾어본 적도 없다네.”

여기에서 제시된 ‘부처란 무엇입니까.’ 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의미한 말이 궁색했을 때 상투적으로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녕 자신의 본래면목을 추구하는 말인가 그렇지 않는 말인가 하는 것은 직접 문답에서 살펴야 할 일이다. 협산선회(805~881)는 처음부터 참으로 기발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일찌감치 저울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산의 답변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곧 손님이 찾아왔는데 주인이 없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협산은 손님까지도 없다고 답변한다. 손님과 주인은 질문과 답변을 의미하기도 하고, 질문한 제자와 협산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미 말해버린 질문에 대하여 일찍이 질문도 없고 그에 상응한 답변도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착안해야 할 점은 질문을 한 승은 새내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산전수전 겪어서 장판 때가 묻은 구참납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안목이 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승은 자신의 깨우침과 협산의 깨우침을 비교하여 누구의 경지가 원만한가를 비교하려고 한다. 마치 자신이 한 소식을 터득했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이 말이다. 협산은 바로 그 점을 간파하고 교묘하게 돌려서 처리한다. 곧 그대의 질문은 이미 그대가 듣고자 하는 답변을 예상하고 제시한 것으로 내가 굳이 답변할 필요가 없고, 협산 또한 그와 같은 질문일랑은 듣고 싶지도 않다고 무시해버린다. 소위 손님과 주인이 모두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제법 문답상량에 많은 경험이 있어 약바른 승은 재빨리 자신의 질문이 먹혀들지 않은 줄을 알고 물었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과 대담을 나누는 겁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협산이 한편으로는 너무나 정직하게 답변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에둘러 답변을 한다. ‘평소에는 문수와 더불어 물놀이를 함께 한다네. 그러나 보현과는 함께 꽃을 꺾으면서 들판으로 놀러 다닌 적도 없다네.’ 여기에서 문수와 보현은 스승이 제자들과 더불어 문답상량(問答商量)한 것을 의미한다. 모든 옷을 벗어버리고 물속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어느 것 하나 감춤이 없이 속속들이 꼬집어주는 모습을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달리 어떤 제자와도 법담을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을 보현과 함께 어울린 적이 없다는 말로 대신하였다.

협산은 생불(生佛)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참으로 능수능란하였다. 자칫하면 서로 무의미한 문답으로 끝나버릴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승을 일깨우는 것만큼이나 협산 자신의 깨어있음에 대한 점검이기도 하였다. 이 순간 협산은 승을 향하여 할(喝)을 퍼부었다. 그 소리에 승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평소에 자신이 색을 보고 색을 추구하고 소리를 듣고 소리를 추구했던 것처럼 질문을 통해 반드시 그에 걸맞는 답변이 있을 것을 기대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와 같이 얄팍한 지혜로 깊디깊은 바닷물을 길어 올리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가를 파악하였다.

비로소 승은 기사회생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협산의 답변에 대하여 손님과 주인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분별에 속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무너뜨리는 집착과 분별의 모래성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승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크게 감사의 절을 드리고는 그냥 떠나버렸다. 마치 자신이 손님도 아니고 주인도 아닌 것처럼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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