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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장 조사의 ‘공안’과 ‘격외선’

기자명 선응 스님

뜰 앞의 잣나무가 곧 격외선 뜻 

뜰 앞의 잣나무는 선종의 공안
활줄을 튕겨야 화살 날게 되듯
공안으로 참선자를 깨닫게 해
격외선으로 분별 떠난 조사선

선가귀감은 마음의 근원, ‘○’을 밝히고 불조 교설의 방편과 은덕을 찬탄하며, 교와 선이 같은 점은 ‘이심전심’ ‘견성성불’이고 다른 점인 ‘불립문자’ ‘직지인심’인 것을 설하고 있다. 

10장 본문에서 “제불은 활등을 설하고 조사는 활줄을 설한다. 부처님은 장애가 없는 법을 설하셔서 ‘한 맛’으로 돌아간다. 이 ‘한 맛’의 자취를 떨쳐야 비로소 조사가 보이신 ‘일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뜰 앞의 잣나무’ 화두는 용장에는 있지 않다”고 한 내용을 진정국사(1206∼1293)의 ‘선문보장록’에서는 “‘활시위처럼 설하였다’는 말은 선문에서 바로 현묘한 길을 전하는데, 언설을 빌리지 않고 즉시에 선종의 근본, ‘마음의 본체’를 보이신 것이 마치 활줄과 같다는 것이다. 만일 교문이라면 ‘일승’은 직로이고 ‘삼승’은 굽은 길이다. 바로 근본 ‘마음의 체’를 들어 마음의 생각으로 보인 것과 같지 않다. 왜 그런가? ‘일승’에서 설한 것은 일마다 걸림 없이 원융한 ‘한 맛’의 법계에 돌아간다. 이 ‘한 맛’인 법계의 자취를 떨쳐야 비로소 조사들이 보이신 ‘일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모든 교설은 직로가 아니다”고 해석했다. 즉 ‘한 맛’이란 ‘법화경’에서 설한 ‘일불승’과 ‘화엄경’의 ‘사사무애법계’를 깨달은 마음이다. 

‘법화경’에서는 “시방 불 국토에는 오직 ‘일승법’만 있으며 둘도 없고 셋도 없다. 방편으로 양 수레, 사슴 수레, 소 수레를 비유해 경의 뜻을 보게 하니 이 삼승법은 방편법문이다. 오직 일승법만이 진실한 가르침이다”라고 한다. ‘3승’이란 고통의 원인을 끊고 해탈하는 길을 듣고 수행하는 ‘성문’과 12연기 관을 수행하는 ‘연각, 대승의 공을 깨달아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6바라밀 수행하는 ‘보살’이다. 이 ‘3승’은 ‘일불승’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이다. 

‘화엄경’에서 ‘법계’는 ‘마음’이다. ‘체상용’과 ‘원융무애’로 분류했는데 연기법에서 본체는 ‘이법계’, 현상을 ‘사법계’, 각각 존재하며 작용하는 것을 ‘이사무애법계’, 서로 방해 않고 자재한 마음을 원융무애의 ‘사사무애법계’라고 한다. 불교에서 정견은 ‘자성이 공한 연기’의 참된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소승은 아공을, 대승은 법공을 증명하지만 가장 수승한 뜻은 ‘공조차 공함’이다. 선법은 일체 분별을 떠난 ‘본래면목’을 깨닫게 한다. 

서산대사의 해석은 “활등을 설한 것은 굽은 것이고, 활줄을 설한 것은 곧은 것이다. 용장은 용궁의 장경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가 답하기를 ‘뜰 앞의 잣나무이다’고 한 이것은 ‘격외선(格外禪)’의 뜻이다”이다. 

‘조주어록’의 ‘뜰 앞의 잣나무’는 선종의 ‘공안’이다. 마치 활줄을 튕겨야 화살이 날게 되는 것처럼 조사는 활줄인 ‘공안’으로 ‘참선자’를 즉시에 깨닫게 한다. 즉 ‘격외선’으로 교설과 분별을 떠난 ‘달마조사선’이다. ‘오등회원(1252)’에서 양산연관(梁山緣觀, 10세기)선사가 상당해서 “전 세상에 낚시 바늘을 내려서 바늘로 용만 잡는다. 특별하고 깊은 기틀은 자신을 찾아 알기 위해서다”하시고, 청량문익(法眼文益, 885∼958)선사가 “선사는 신묘한 기틀을 한번 발해서 잡된 일들을 모두 버린다”고 하신 것은, 마치 ‘새가 날지만 창공에 자취가 없는 것’과 같이 ‘참선’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게송은 “물고기가 헤엄치니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나니 깃털 떨어지네”이다. ‘벽암록’에서 향림(香林澄遠, 908∼987)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묻자 선사가 ‘오래 앉아 있으니 피곤하다’는 말에 원오선사가 평하기를, “입을 다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작가의 안목은 ‘톱으로 저울추를 자른다’”고 하고, ‘고존숙어록’에서 대우지(大愚芝, ?~1056)화상도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물으니 화상이 ‘톱으로 저울추를 자른다’라고 한 ‘공안’이다. 대혜선사도 이 공안으로 “말 밖에서 미혹한 이들을 제도한다”고 하신 것은 분별과 생각을 떠나 ‘화두일념’으로 정진해야 ‘조사공안’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29호 / 2020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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