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가야 국제수행학교 교장 붓다빨라 스님
부다가야 국제수행학교 교장 붓다빨라 스님
  •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20.03.23 13:12
  • 호수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0년 걸릴 인도불교 복원, 불은에 보답하는 대작불사”

큰형님 시봉하다 출가
5형제 중 4형제가 스님

벽암록 ‘확연무성’에
내가 가는 길이 ‘길’

부다가야서 위빠사나 
보리수 아래서 서원

미얀마 마하시·참매선원
3년 가행정진 ‘사띠 통찰’

인도에 ‘물라 상가’ 법인
국제수행학교·아라마 창건

“스님 1만·마스터 100만
육성 인도불교 중흥할 터”

부다가야 인근 7천평 확보
분황사 부지 2천평 보시

​​​​​​​“최소 5만평 부지 확보해
부다가야 수행마을 조성”
“몸과 마음이 청정해야 심리 구속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붓다빨라 스님은 “그 자유와 청정의 크기만큼 행복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새벽녘, 별 하나가 반짝였다. 그때 인도 부다가야(Buddhagayā) 보리수 아래서 정진하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았다. 이 땅에 붓다(Buddha)가 출현한 성스러운 순간이다. 부처님의 전도는 쿠시나가라 사라쌍수숲에서 열반에 들기까지 45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인도불교는 8세기에서 13세기 초 쇠퇴해가다 절멸했다.

1891년, 스리랑카에서 부다가야로 성지순례를 온 재가불자 다르마빨라(Dharma pāla, 1864∼1933)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성보들은 도난·파괴되었고 일부 사원은 돼지사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조석예불을 드리고,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다니던 유년시절에도 불교의 오계를 철저히 지킬 정도로 신심 깊었던 그는 1891년 1월 보리수 앞에서 서원했다. 

“부다가야를 구하는 데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세계 도처에 퍼져있는 불교국가의 불교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황폐한 부다가야를 좌시할 것입니까?”

스리랑카 ‘마하보디협회’를 설립(1891년)한 다르마빨라는 ‘마하보디저널’을 창간(1892년)하며 복원과 전법불사를 동시에 추진했다. 원력을 세운지 3년만인 1895년 부다가야 사원에 불상이 봉안됐다. 초전 법륜성지 사르나트(Sarnāth·녹야원)도 피폐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스리랑카에서 사르나트로 거처를 옮겼다.(1931년) 사르나트 도량 초입에 물라간다쿠티 사원을 지은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불교성지를 지켰다.

한국의 통도사에서 부다가야로 건너 와(1996년 12월25일) 위빠사나 수행에 매진했던 붓다빨라(Buddhapāla) 스님은 회향 직후 보리수 앞에서 서원했다.(1997년 1월)

“인도불교를 복원하겠습니다!”

1891년 1월 다르마빨라의 ‘성지복원’ 서원이 부다가야 창공을 가른지 106년 후인 1997년 1월 붓다빨라 스님의 ‘인도불교 복원’ 원력이 부다가야 하늘에 새겨졌음이다.

“네가 가서 스님 방 청소라도 해라!”

부다가야 국제수행학교는 인도불교를 복원할 스님들을 육성하고 있다.

가출한 큰형님을 부모님이 4년여만에 찾았는데 부산의 기장 장안사에 머물고 있었다. 가출이 아니라 출가를 단행했던 형님이었다. 김포 약사사로 떠난다고 했다. 어머니는 지금 경남 사천에서 자라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셋째 아들에게 큰형님의 시봉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왜 내가?”

억울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별 불평 않고 서울로 떠났다.(1975년)

약사사에서 한 2년 반 쯤 살았는데 어느날 부아가 났다. 다른 스님들은 그렇다 치고, 큰형님도 자기 공부에만 몰두할 뿐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말이다. 정말 평생 옆에서 청소만하라는 것인지 싶었다. 

“스님, 저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출가하면 공부할 수 있다.”
“그럼, 저도 출가하겠습니다!”
“통도사로 가라. 약사사에서 행자생활을 2년 넘게 했으니 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납 17세에 통도사에서 사미계를 받으며 ‘본원(本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1977년) ‘출가하면 공부할 수 있다’는 묘수를 배운 스님은 두 동생에게도 적용시켜 모두 출가시켰다. 5형제 중 4형제가 출가한 집안이다.

부다가야 사띠아라마에서 재가불자들이 행념하고 있다.

동국대에서 강의를 하던 중 대학시절인 1988년 통도사 보광선원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수행 기억이 명료하게 떠올랐다. 한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그동안 문자만 분석하고 문자만 가르쳤다. 경전 이해만으로는 안된다. 수행을 더해야 ‘불교의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갑작스런 결론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일었던 고뇌이자, 화두였을 것이다.

1996년 12월20일 인도로 떠났고, 그 달 25일 부다가야에 닿았다. 국제명상센터에서 인도 승려 라스트라빨라(Rastrapāla)의 지도로 생애 처음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배웠다. 3일째 되는 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직감했다.

“이 길로 가면 끝을 보겠다!”

수행 과정을 모두 마친 후 라스트라빨라 스님으로부터 ‘붓다빨라’라는 법호를 받았다. 부다가야 보리수 앞에 섰다.(1997년 1월)  

“인도불교를 복원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마하시·참매선원에서 위빠사나 수행에 매진했다. 한국과 인도를 오고가면서도 3년(1997∼1999년)동안 수행일로를 걸었다. 그곳에서 알아차림, 마음챙김 등으로 알려진 ‘사띠’를 통찰했다. 

“이 법을 전해야 한다!”

‘수행마을을 조성해 보자’ 작심하고 김해 다보산(多寶山) 자락에 자리한 마을에 눈길을 돌렸다. 우선 6611m²(2000평)를 사서 사띠 아라마(SATI Ārāma)를 창건했다.(1999년 6월) 그린벨트 지역인 관계로 더 이상 땅을 확보하기 어려워 이사가는 집을 한 채, 두 채 샀다. 그렇게 10년 동안 15채를 매입해 도량을 넓혔고 부지 확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김해 다보산 ‘싸띠 아라마’에서 마스터 300여명이 배출됐다.

2002년 1월21일, 부다가야 보리수 앞에 다시 섰다. 창립선언과 다름없는 ‘부다가야 선언’을 발표했다. 대승불교와 밀교 모두가 중요하고 존중하지만 우선 이 땅에 불법을 전해주신 부처님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불교와 관련된 모든 텍스트는 수행에 기초해 해석하고 실천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세계인류에 기여하는 불교여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선언에 공감한 불자들이 운집하기 시작했고, 이내 부다가야 선언을 토대로 한 중장기 대작불사의 청사진을 그려냈다. 인도불교 복원, 수행지도자 양성, 인도 스님 양성, 무료의과대학 설립, 마음운동 SATI LIFE 등 5개 사업이 핵심이다. 선언과 계획에 머물러만 있는 불사가 아니다.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6년 인도에 ‘물라상가(Mūla Sańgha)’ 법인을 세워 허가를 받은 후 부다가야 대탑 인근의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물라상가의 대표는 붓다빨라 스님이다. 현재 2만3140m²(7000평)를 확보했는데 그중 6611m²(2000평·30억)를 ‘부다가야 분황사’ 건립을 추진 중인 조계종에 보시했다. 국제수행도량인 사띠 아라마(SATI Ārāma) 개원(2008년)에 이어 불호계단(佛護戒壇)을 개설했다.(2015년) 그리고 인도 스님 양성교육 전문 기관인 부다가야 국제수행학교(Buddhagaya Interna tional Sati School)를 개원했다.(2016년 개원·2018년 신축) 2018년 4월 첫 사미들이 입학했다. 부지 문제로 무료의과대학 설립에는 아직 손을 대지 못하는 점이 다소 아쉽다.

1997년 부다가야 보리수 앞에서 원력을 세운 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20여년 동안 인도불교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붓다빨라 스님이다.

인도 인구는 13억5000만명으로 세계 2위다. 힌두교(80.5%)와 이슬람교(13.4%)가 대부분이고 불교는 1%도 되지 않는다. 고엔카의 명상수행, 암베드까르의 개종운동, 사캬족의 불교부흥 운동이 인도인들로부터 주목 받았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인도불교 복원’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몰락한 인도불교를 복원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는 가벼운 그러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에게 큰 빚을 지었습니다. 2000년 전에 인도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받아 우리 삶의 자양분으로 삼았습니다. 인도불교가 새롭게 깨어나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 불은(佛恩)에 보답하는 것이라는 마음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다가야에는 세계 각국에서 지은 150여개의 사찰이 들어서 있는데 물라상가 소속의 도량이 가장 크다고 한다. 
“사찰은 많지만 대부분 순례객을 위한 ‘숙소’ ‘쉼터’ 역할에 그치는 사원이 대부분입니다. 부다가야는 깨달음의 성지입니다. 이곳 만큼은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는 부다가야의 가치를 실현시켜가려 합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수행공간 확보에 진력했는데 올해 2020년부터는 인재양성에 무게를 더 두려한다.

“스님 1만명, 사띠 마스터 100만명 배출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승려 양성을 전담하는 ‘부다가야 국제수행학교’ 개교 2년만에 수백여 명의 사미가 입학했습니다. 물론 정기적인 시험을 치러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하지만 인도승려 양성의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저희에게 제안한 것이 있습니다. 델리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을 지도해 사띠 마스터로 양성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향후 상호 조건이 맞으면 대학 안에 수행센터를 개설해보자는 업무협약도 체결했습니다. 2018년 8월 델리대학 노스캠퍼스 인문사회계 석·박사 2만 6천여명 중 600여명을 지도했습니다.”

물론 도량부지 확대 불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명실상부한 숲속 수행마을을 조성하고 무료의과대학까지 설립하려면 적어도 5만평은 있어야 합니다. 장기적 목표는 10만평입니다.”

무료의과대학 설립이야말로 재정적 측면에서만 보아도 결코 녹록치 않은 불사다.

“사띠 수행은 인간의 마음을 맑게 하는 기술이고, 의과대학은 몸을 맑게 하는 기술입니다. 마음과 몸이 건강한 상태에서 균형을 잡고 조화를 이룰 때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행마을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하며 수행에도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들이 의료 사각지대를 살피면 ‘생명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라’는 법음을 전파하는 것의 다름 아닙니다.”

델리대학과 무료의과대학에 거는 기대에서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전도원력을 읽을 수 있겠다. 인도불교 복원의 첫 걸음이자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인도불교가 복원되는데 몇 년이 필요할까?  

“한두 세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30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량 확보에 힘을 쏟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간이 있는 한 누군가는 이 불사를 이어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붓다빨라 스님의 저서 ‘마음에 관한 모든 것-BUDDHA 수행법’은 사띠 수행법을 명확하게 전해주는 책이다.
붓다빨라 스님의 저서 ‘마음에 관한 모든 것-BUDDHA 수행법’은 사띠 수행법을 명확하게 전해주는 책이다.

붓다빨라 스님의 저서 ‘마음에 관한 모든 것-BUDDHA 수행법’은 사띠 수행법을 명확하게 전해주는 책이다. ‘수행은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좋은 친구’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행복한 삶은 지혜롭게 살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은 올바르게 행동할 때 성취됩니다. 올바른 삶은 청정함으로 충만합니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야 심리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 자유와 청정의 크기만큼 행복도 커집니다. 수행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가 궁금했다. 인도와 미얀마로 훌쩍 떠나는 용기, 300년을 내다보고 대작불사를 시작한 담대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말이다. 붓다빨라 스님은 미소를 보이더니 ‘벽암록’ 1칙을 전했다.

“동국대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허한 마음을 가눌 수 없을 때 ‘벽암록’을 펼쳤습니다. 무제와 달마의 법거량에 나오는 확연무성(廓然無聲)이 제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저는 ‘성스러울 게 없다’고 보았습니다. 성스러울 게 없다는 건 모든 게 성스럽다는 역설도 가능합니다. 길이 없다면 모든 게 길일 것이라 생각하니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버리고 떠날 수 있었던 연유를 알법하다. 선기(禪機)와 무관하지 않다.  

김해 사띠 아라마의 문을 두드려 보시라! 기회가 된다면 부다가야 사띠 아라마에서 실행하는 단기 출가도 경험해 보시라.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한 세상을 살고 싶은 대중이라면 꼭 한 번 찾아볼만한 도량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붓다빨라 스님은

1960년 삼천포 출생.
1975년 서울 약사사 출가.
1977년 통도사서 사미계.
1986년 범어사서 비구계.
1992년 통도사승가대학 졸업.
1992년 통도사 포교국장. 
1996년 동국대 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6년 불이상 수상.
현재 ‘뮬라상가’ 법인 대표. 국제수행학교 교장.
‘BUDDHA 가르침’ ‘BUDDHA 수행법’ 등의 저서가 있다.

 

[1530호 / 2020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