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11칙 만호구개(萬戶俱開)
12. 제11칙 만호구개(萬戶俱開)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0.03.24 09:25
  • 호수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승은 제자의 깨침 점검해줄 뿐

수행은 스승이 대신하는 게 아냐
근본적 해결은 자신에게 달려
그럼에도 스승에 매달린다면 
끝내 스승의 노예 벗어나지 못해

운개화상이 석상에게 물었다. “모든 집들이 문을 닫고 있을 때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집들이 문을 열어두고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석상이 말했다. “집안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운개가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반년이 지난 어느 날 바야흐로 한마디 말했다. “아무도 그를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석상이 말했다. “말은 그럴듯하다만 아직은 한참 모자란다.” 운개가 물었다. “스님이라면 뭐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석상이 말했다. “아무도 그를 알 수가 없다.”

운개지원(雲盖志元)은 석상경제를 사법하였다. 운개가 제방을 만행하다가 운거도응에게 물었다. ‘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경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운거가 말했다. ‘단지 그대의 능력이 아직은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운개가 석상을 찾아가서 똑같은 질문을 하자, 석상이 말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그대만이 아니라 나도 어쩔 수가 없다네.’ ‘화상께서는 어째서 어쩔 수 없다고 하시는 겁니까.’ ‘만약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다면 그대의 문제를 벌써 해결해주었을 것이다.’ 운개가 감사의 예를 드렸다.

위의 내용은 바로 이 문답으로부터 몇 년 이후에 등장한 문답이다. 운개는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석상으로부터 ‘집안에서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되받고는 ‘어떤 수행이나 깨침의 단계에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석상은 ‘그러면 무엇에 의거하여 살아간단 말인가’ 하고 물었다. 운개는 말문이 막혀 반년이 지나서야 말했다. ‘집안의 그와 같은 사람을 교화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에 석상이 말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대의 답변은 제법 그럴듯하다만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러면 스님이라면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도대체 뭐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가 어떤 단계에 올라있는지 그리고 무슨 수행을 했는지 도통 알 수조차도 없다.’ 운개가 법문을 청했지만 말해주지 않으니, 다시 물었다. ‘만약 끝내 법문을 해주지 않으시면 스님을 때려주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도 그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했는데도 자꾸만 성가시게 굴고 있네.’ 그 말에 운개는 문득 깨침을 터득하였다.

위의 문답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운개의 질문이 아니다. 모든 집들이 문을 닫아두건 열어두건 이것도 전혀 상관이 없다. 단지 운개의 태도가 중요하다. 운개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경우 어찌하면 좋은가를 물었지만 석상에게 보기좋게 딱지만 맞았을 뿐이다. 거기에서 운개는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해결은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느꼈다. 수행은 스승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깨침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스승은 제자의 수행과 깨침의 정도를 점검해줄 뿐이다. 그런데도 스승에 매달린다면 끝내 스승의 노예를 벗어나지 못한다.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는 제자는 기껏해야 스승의 그림자일 뿐이고, 자기를 초월한 제자를 길러내지 못한 스승은 따로 본전도 건지지 못한다.

이때부터 운개에게는 진정으로 치열한 수행이 시작되었다. 그것을 해결하게 된 인연의 대목이 위의 문답이다. ‘아무도 그를 가르칠 수가 없다’는 운개의 말이나 ‘아무도 그를 알 수가 없다’는 석상의 말은 피장파장이다. 그것은 이미 완전한 깨침을 구비하고 있는 도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굳이 스승과 제자라든가 질문과 답변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질문자와 답변자도 없다. 질문과 답변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은 그 합일된 경지의 질문과 답변을 맛보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그 집안에 있는 사람은 수행과 깨침의 어떤 단계에도 머무르지 않고 있다. 설령 수행한다 해도 깨친 후의 수행이고 깨침이라 해도 수행 이전의 깨침이다. 수행과 깨침이 따로 없는 자신의 본래면목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0호 / 2020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