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1장 ‘간화선’과 ‘둘이 아닌(不二)법문’
12. 11장 ‘간화선’과 ‘둘이 아닌(不二)법문’
  • 선응 스님
  • 승인 2020.03.24 09:27
  • 호수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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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법은 일념 중에 ‘성·상’이 일시이다

종사는 법 근거해 말을 버리고
일념을 가리켜 견성성불 케 해
이것이 ‘교의 놓아 버린다’는 것
일념 삼매 해야 불조 광명 계합

11장에서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여실하게 말로 가르치신 ‘진여’와 ‘생멸’의 두 뜻은, 마음에는 ‘본성’과 ‘형상’이 있고, ‘돈오’와 ‘점수’ 두 문이 자기 수행의 처음과 끝인 것을 확실히 판단한 후에, ‘교설’의 뜻을 놓아버리고 다만 자기 마음에 현전하는 ‘일념’으로 자세히 ‘선지’를 참구하면 반드시 증득하게 된다. 이것을 몸을 벗어나는 ‘활로’라고 한다”고 한 본문은 고봉화상(1238∼1295)의 ‘선요’ 내용으로, 마명(馬鳴, 100∼160)의 ‘기신론’에서 ‘마음’에 불변의 ‘진여’와 인연을 따르는 ‘생멸’의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 것이다.

‘대반야경’에서 “‘진여’는 다름이 없고, 변화가 없으며, 생이 없고 다툼이 없는 ‘자성진실’이다. ‘여실지견’이란 제법은 비록 생하지만 ‘진여’는 ‘움직이지 않고’, ‘생이 아닌 것’이 ‘법신’이라고 안다”고 하며, ‘능가경’에서는 “‘바른 지혜’란 제법의 ‘자성’은 주관과 객관이 ‘둘이 아니고’, ‘여여’한 본체에 계합하는 것이다”고 한다. 

‘성(性)’은 제법의 본성이고, 상(相)은 제법의 형상이다.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선사가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리면 스스로 곤경에 빠진다. 연꽃과 같이 잎을 떠나서 줄기를 찾을 수 없다. 자성은 같지만 형상은 다르니 자성은 근본이고 형상은 끝이다. 그러므로 근본만을 증득하고 끝을 없앨 수 없다. 치우쳐서 본성을 말하거나 치우쳐서 상을 말할 수 없다. 마치 잎과 줄기를 뽑으면 뿌리의 근원을 잃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둘이 아닌’ 법을 설한 것이다. 

‘돈오’는 ‘혜능선’이고 ‘점수’는 ‘신수선’인데, ‘돈오’는 한 생각 찰나에 ‘진여본성’을 깨닫고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 것을 알아서 일체 개념상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활로’란 법현(法显, 334~420)의 ‘불국기’에서 “극한 고난에서 살 수 있는 길”이다. ‘선종’에서는 ‘화두’참선으로 해탈하게 한다. 

서산대사가 “상근기의 대 지혜인은 이러한 제한이 없지만, ‘중·하 근기’는 따라 잡을 수 없다. ‘교의’는 ‘불변’과 ‘수연’, ‘돈오’와 ‘점수’ 등 ‘선·후’가 있다. ‘선법’은 ‘일념’ 중에 ‘불변’과 ‘수연’, ‘성’과 ‘상’, ‘체’와 ‘용’의 근원이 ‘일시’이다. ‘즉’함을 떠나고 ‘즉’하지 않은 것을 떠나니 ‘옳은 것’에 ‘즉’하고 ‘옳지 않은 것’에 ‘즉’한다. 그러므로 ‘종사’는 법에 근거해서 말을 버리고, 바로 ‘일념’을 가리켜 ‘견성성불’하게 하는 것이 ‘교의를 놓아 버린다’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화엄경’에서 “‘여래장신’은 ‘불생불멸’이다. 중생의 타고난 성품과 능력에 따라 그들을 잘 교화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 널리 세간에 보이시니 ‘법성’을 증명해서 일체 법을 초월한다. 불퇴전으로 장애 없는 힘을 증득해서 여래의 광대 무애한 위덕을 생하게 하신다”고 한다. ‘점수’란 ‘교종’의 수행 점차로서 ‘중하근기’가 배워야 하며, ‘돈오’란 ‘상근기’가 ‘조사공안’으로 즉시에 깨닫는 것이다. ‘불조’의 뜻과 부합하는 것이 ‘즉(即)’이다. 마음에 즉해서 깨닫고, 몸에 즉해서 성불하며, 번뇌에 즉해서 경계가 없는 경지이다. ‘불조’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비(非)’다. ‘비즉(非卽)’은 ‘상념도 아니고 상념 아닌 것도 아닌 경지’다. 

‘능엄경’에서 “세간과 출세간이 함께하니 ‘여래장’에 즉해서 ‘마음’의 근원을 밝히면 ‘다른 것이 아닌 것’을 떠나고, ‘하나가 아닌 것’을 떠나니, 이것은 ‘하나가 아닌 것’과 ‘다른 것이 아닌 것’에 나아간다. 탐욕으로 어리석은 중생과 ‘성문, 연각, 보살’ 등 출세간 ‘3승’이 ‘부처님 지혜’를 알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길장(吉藏, 549∼623)은 “하나의 청정한 길이므로 ‘둘이 아니다’”고 하며,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이 ‘간화선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한 것은 화두로 ‘견성성불’하는 것이다. 

게송은, “밝고 밝은 때에 구름은 깊은 계곡에 잠겨 있고, 깊고 그윽한 곳에 해는 비 그친 맑은 하늘을 비추네”하니 ‘여래장’에는 차별이 없으나 ‘일념’ 삼매의 ‘지혜’인이어야 ‘불조’의 광명과 계합한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30호 / 2020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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