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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천함’ 주제로 한 바라문 교화

귀함과 천함은 행위로만 결정된다

바라문, 붓다에게 천하다 욕설
붓다, 천한 것에 대해 묻자 침묵
그 사람 귀하다고 하는 까닭은  
행동 선하기 때문이라고 설해 

세상에는 자신을 고귀하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천하다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 배경, 재산, 교육의 정도, 권력 등을 갖고 귀천(貴賤)을 따진다. 

요즘도 그러한데 붓다께서 재세할 당시 인도 사회는 어떠했을까? 이른바 천한 출신의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는 꿈에도 꾸지 못했다. 즉 인간이 아닌 동물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한때 붓다가 사왓띠(사위성)에서 탁발을 하다가 불을 숭배하는 악기까 바라드와자(Aggikabhāradvāja)의 집으로 향했다. 바라드와자는 멀리 붓다가 오는 것을 보고는 “까까중아, 거기 섰거라. 가짜 수행자야, 거기 섰거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라고 소리쳤다. 이에 붓다는 욕설을 퍼부은 바라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씀했다.

“[붓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천한 사람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또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바라문은 붓다의 당황하는 기색은커녕 침착하고 당당한 대응에 기세가 눌려 버렸다.

“[악기까 바라드와자] 고따마여! 나는 사람을 천하게 하는 조건조차 알지 못합니다. 아무쪼록 저에게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을 알 수 있도록 그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렇게 보면 바라드와자는 그래도 충고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대로변에서 똥을 눈 사람에게는 훈계했지만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눈 사람은 피해갔다. 그 이유를 묻자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가르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경전에서 전하는 내용 중에는 이에 해당되는 경우들을 간혹 보게 된다. 여하튼 악기까 바라드와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해 인정하는 양식 있는 바라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붓다는 천한 사람의 조건을 상세히 가르친다.

① 소견이 그릇되어 남을 잘 속이는 자 ② 생명을 해치고 살아 있는 존재에 자비심이 없는 자 ③ 도시를 파괴하는 독재자 ④ 남의 것을 빼앗는 자 ⑤ 빚을 지고도 빚이 없다고 거짓을 일삼는 자 ⑥ 물건을 탐내어 사람을 죽이거나 약탈하는 자 ⑦ 이익 때문에 거짓 증언하는 자 ⑧ 자신은 편하게 살면서 노부모를 모시지 않는 자 ⑨ 부모나 형제를 폭행하는 자 ⑩ 남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분명치 않게 가르쳐주는 자 ⑪ 나쁜 일을 하고도 숨기고 남들이 모르기를 바라는 자 ⑫ 남에게는 대접을 받으면서 다른 이에게는 대접하지 않는 자 ⑬ 수행자를 속이는 자 ⑭ 식사 시간에 수행자에게 욕하며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자 ⑮ 인색하며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자 ⑯ 타인을 경멸하며 스스로 교만에 빠진 자 등등의 조건을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말씀을 이와 같이 설하게 된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인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 바라문[고귀한 자]도 아닙니다.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행위에 의해서 바라문도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귀천을 태생에서 찾는다. 하지만 붓다는 아무리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났더라도 그의 행동이 천하다면 그는 천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붓다의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세상을 관습적으로 살아온 삶을 근원에서부터 흔들어 버린 것이다. 

붓다 교화행의 진수는 바로 현장성에서 찾아야 한다. 붓다가 탁발을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수행자들에게 제시한 이유는 그 현장성을 떠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중생들의 삶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수행이며, 깨달음의 사회화임을 붓다는 보여주고 있다. 

붓다는 길에서 만나는 수 많은 인연들이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아주셨다. 그 손이 때로는 욕설이고 비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30호 / 2020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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