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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2012)

인물·대사·행동 반복성을 윤회 시각으로 해석

안느, 원주 시나리오 통해 같은 이름 다른 배역으로 반복 등장
등대는 윤회 입증의 표지…남편의 배신은 인과응보 진리 귀결
개암사 대웅전 불상으로 영화와 영화 사이 장면·인물 이어져

‘다른 나라에서’는 미혹되어 업을 짓고 고통을 받으며 이를 되풀이하는 윤회를 주제로 불교적색채가 짙은 영화다. 사진은 영화 ‘다른 나라에서’ 스틸컷.

홍상수가 등장했을 때 한 평론가는 ‘뒤늦게 도착한 모더니스트’라고 했고 다른 연구자는 ‘일상의 발견자’로 이름 붙였고 보다 진지한 이들은 ‘욕망을 찾아 배회하는 주이상스의 대변인’으로 평가했다. 허문영은 홍상수 영화의 서사를 ‘남자(들)은 여인과 만나 동침하기 위해 노력하며, 여인은 그의 요구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그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로 간명하게 요약했다. 김시무는 홍상수의 텍스트는 발자크의 ‘인간희극’으로 보았다. 발자크는 인간희극이라는 이름으로 97편의 소설을 집필하였으며 등장인물이 2000명이 넘고 그중 460명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파리 발자크 생가의 전시실에는 도표로 인물의 연관성을 그려놓았다. 홍상수의 영화에서도 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심지어 대사와 행동 그리고 이야기까지 반복된다. 홍상수는 발자크와 작품 사이의 인물과 서사를 반복하면서 독자성의 성을 구축하여 결국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홍상수는 이미 국내외 연구자들이 상찬하였지만 제 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도망친 여자’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그 위상이 확인되었다. 

홍상수와 불교영화는 카페 여급과 스님만큼 거리가 멀다. 하지만 홍상수의 작품은 불교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2012)는 예불장면과 선문답이 등장한다. 홍상수 감독의 작가적 특징인 반복성을 윤회의 눈으로 해석할 때 더욱 불교적 색채가 진해진다.    

불교에서 윤회는 미혹되어 업을 짓고 고통을 받으며 이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윤회는 삼계 육도를 되풀이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에피소드와 영화를 대사와 인물로 되풀이한다.  

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는 원주(정유미 분)의 시나리오를 통해서 인물들이 미혹되어 에피소드를 통해 반복해서 등장한다. 안느(이사벨 위뻬르 분)는 같은 이름, 다른 배역으로 등장하여 이를 에피소드의 윤회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이사벨 위뻬르는 안느라는 동일한 이름의 다른 배역으로 에피소드에서 거듭 등장한다. 그녀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외국의 영화감독이며 감독 종수(권해효 분)와 그의 부인 금희(문소리 분)와 펜션에 머문다. 안느와 종수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적 있으며 종수는 안느에게 애정표현을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는 남편이 출장가는 사이에 모항으로 여행가는 여인이다. 그녀는 연인 문수(문성근 분)를 기다린다. 안느는 남편 몰래 연인을 만나는 것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는 민속학자 박숙(윤여정 분)과 펜션에 머문다. 안느의 남편은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던 젊은 한국 여자와 연애하게 되고 이로 인해 그녀는 이혼을 한다. 안느는 영화 감독에서 사업가의 부인 그리고 이혼한 여자로 다른 배역을 맡는다. 에피소드는 안느의 윤회이다. 세 번의 에피소드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안전요원 (유준상 분)과 원조는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누빔점이다.  안느는 첫 에피소드에서 안전요원에서 등대를 묻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등대를 바라보고 바닷가에 앉으며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안전요원에게 등대가 어디에 있는지 질문한다. 등대는 ‘삶에 관한 성찰적이고 독창적인 질문’이라는 기존의 해석이 부여된다. 윤회의 에피소드에서 등대는 바다에서 빛으로 길을 안내하는 등대라기 보다는 안느의 윤회를 입증하는 표지이다. 안느는 서로 다른 배역을 맡아서 하지만 등대를 찾는 동일한 행위를 통해 안느의 정체성이 유지된다. 등대는 인생의 항로를 알려주는 나침판이며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연인이 삶의 등대이기도 하다. 등대와 안느 그리고 안전요원은 에피소드의 서사를 이끄는 등대다. 

두 번째 에피소드와 세 번째 에피소드는 남편 몰래 다른 연인을 만나는 안느와 남편이 다른 여자와 외도하여 이혼하는 안느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인과론으로 귀결된다. 먼저 안느는 남편을 속이고 다음에는 남편의 배신으로 안느 스스로 고통받는다. 인과는 ‘백겁이나 천겁이 지난다 하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으며 인연이 닿으면 그 과보를 다시 받는다’는 인과응보경의 진리를 두 에피소드가 보여준다. 

불교영화의 면모는 예불장면과 선문답에 있다. 박숙은 안느와 개암사에 간다. 그들은 예불을 드리지만 대웅전의 불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박숙(윤여정)은 홍상수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도 딸을 책망하고 나서 범종 소리가 울리자 합장하면서 예를 표한다. 그 때 불상이 등장한다. ‘다른 나라’에서 생략된 불상은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2015)에 등장한다. 영화와 영화 사이에 장면과 인물이 윤회한다. 다음 장면에서 안느는 기와불사에 동참한다. 안느의 기원은 ‘나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하여’이다. 기와 불사의 내용이 합격기원과 가족 건강과 행복이 주된 내용임을 환기해 가족중심의 기복신앙을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안느는 스님(김용옥 분)을 친견한다. 이 장면은 희화화된 선문답 장면이다. 안느는 스님에게 ‘누구를 죽인 적 있느냐와 거짓말 한적 있느냐’라고 묻는다. 스님은 살인은 하지 않았고 거짓말도 당신에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안느는 “왜 이렇게 무섭냐”고 질문하고 스님은 “무서워 하기 때문에 무섭다”고 답한다. 모든 문제는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변죽울린다. 안느는 “스님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고 스님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이라고 답한다. 안느는 사랑으로 인해 번뇌의 파도가 일어난 상황이다. 박숙의 표현대로 “머릿속에 천 마리 원숭이가 쉬지않고 떠든” 것처럼 심란하다. 안느는 이혼의 상처로 인해 소주를 마시고 바다로 향하는 순간에도 바다에서 나온 안전요원이라는 욕망의 대상에게 끌려 텐트로 향한다. 안느는 죽음을 결단하는 순간까지도 사랑으로 인해 흔들리고 안전요원과 텐트에서 동침으로 다시 삶에의 의지를 회복한다. 텐트는 안느를 다시 부화시키는 알과 같다.

홍상수는 불교영화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예불장면의 이면에 인물을 통한 인과적 윤회관이 스며있다. 영화와 삶은 불교의 이치로 바라볼 때 선명한 실체를 드러낸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30호 / 2020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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