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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불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결정하고 운명 개척하는 도덕 행위자

자유로운 사유와 이성으로 자신의 몫을 더할 수 있는 종교
믿는 자에게 복을 주는 종교 아닌 합리적·이성적 종교 체계
불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라도 기꺼이 따랐을 가르침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붓다와 그의 가르침조차 상(相)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는 엄격한 비판정신을 견지해 온 불가의 전통에서 ‘불자다움’을 논하고 말로 정의해 보려는 시도는 조심스럽다. 그래도 아직 불법을 못 만난 분들을 위해 우리 불자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나는 불자답게 사는 삶이 가장 사람답게 사는 삶이라고 믿고, 불자다움이 가장 사람다움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불자다움을 논하기에 앞서 두 철학자의 견해를 빌어 ‘사람다움’이 무엇인가를 논의해 보겠다.

고대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논리학과 생물학을 이용해 인간을 ‘이성적(理性的)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의 최근류(最近類)는 동물인데, 동물인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별해 주는 종차(種差)는 이성이다. 이 이성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다. (1)‘이성’이란 수리 능력을 포함해 언어를 사용하며 사고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직 인간만이 이런 능력을 가졌다. 한편, (2)우리가 ‘이성을 찾아라’라는 표현을 쓸 때 드러나듯이, 이성은 스스로 감정을 제어하며 행위를 합리적이고 또 나아가 도덕적으로 이끌어주는 의지의 능력도 포함한다. 인간에게만 가능한 능력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전통이 살아있는 서양에서 ‘인간다움’ 또는 ‘사람다움’이란 원래 ‘이성적’이라는 의미다.

18세기 후반 독일의 칸트는 인격체(person)를 합리적(이성적)이고, 스스로 의사결정하며, 자율적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도덕적 행위자로 이해했다. 그는 우리 인간이 이와 같은 덕목과 능력을 지닌 존엄한 인격체이고 따라서 존중되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가 인격체의 구성 요소로 든 예를 하나씩 검토하며 왜 우리가 인격체로서 ‘사람답게’ 대우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칸트에 의하면 인격체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데, 이 점은 위에서 논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다르지 않다. 오직 인간만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 또한 고귀한 능력이다. 노예는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 제도 때문에 그것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했고 심지어는 매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도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는 오직 최고 통치자 한 명만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있다. 나머지 국민은 모두 노예나 마찬가지다. 독재체제에 복종하며 사는 사람들이 동정은 받아도 존경받지는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인격체는 자율적이다.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제어하기 때문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수동적으로 법과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이끈다. 칸트는 자유는 자율이라고 설파했다. 공자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며 ‘마음먹은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성인(聖人)의 경지를 언급했는데, 이 말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마음먹지도 않게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도 되는 자유를 얻었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율로 행위하는 인격체는 자유롭다. 그리고 인격체는 자유의지를 가진 도덕적 행위자다. 그는 그의 의지를 신이나 권력자와 같은 타력에 의해 조종되도록 놓아두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위한다.

위에서 살펴본 네 덕목은 모두 인간에게만 가능한 경이로운 능력이며, 이런 능력을 발휘하며 ‘사람답게’ 사는 우리가 인격체로서 존중되고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는 칸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런 ‘사람다움’과 관련해 ‘불자다움’에 대해 살펴보자. 불자들을 특성지울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불자들의 관심사인 깨달음, 열반, 연기와 같은 교리를 열거할 수 있고, 자비실천을 강조하는 윤리, 그리고 참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방대한 지역 다양한 문화에서 진화해 온 수많은 종파의 공통점을 찾아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한편 그런 공통점을 찾아내더라도 상(相)을 피하라는 공(空)의 가르침을 아는 불자들이 그것을 내세우며 자랑하기도 겸연쩍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불교가 다른 종교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차별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불자다움이 무엇인가를 소개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서양종교와 달리 불교에서는 붓다가 구원의 절대신이 아니다. 정토신앙 등의 예가 없지는 않으나, 서구적 관점에서 볼 때 불교가 기본적으로 자력구원의 종교라는 점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불자는 스스로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고 행위하면서-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불자는 타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행위를 제어하는 인격체로서의 삶을 산다. 인간답게 산다.

한 자도 더하거나 뺄 수 없는 닫힌 체계의 성전(聖典)을 의지해야 하는 서양종교와는 달리 불교의 성전은 열린 체계를 가지고 있다. 각 개인이나 종파마다 소의경전(所依經典)이 다르기도 하다. 한편 미래에 편찬될 대장경에는 앞으로 완성될 새로운 문헌도 포함될 것이다. 불교는 자유롭게 사유하는 사람이 그 이성 능력으로 자신의 몫을 더할 수 있는 종교다. 불자는 이렇게 인간답게 사는 사람이다.

불교는 보지 않고서 믿는 자에게 복을 주는 종교가 아니라, 와서 보고 듣고 대화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한 다음에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게 되면 그 가르침을 받아들여 실천 수행하라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의 체계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가 기꺼이 따랐을 가르침이다. 플라톤과 함께 서양의 3대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 두 철학자가 분명 사람답게 따를 수 있는 종교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불교는 우리를 인격체로 대우한다. 까마득히 먼 조상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내가 그 원죄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길 잃은 양도 아니고, 이생에 잘못하면 다시 일어날 가능성 없이 영원토록 지옥 불에 고통 받는 비극적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불자는 누구나 깨달아 스스로 부처가 될 가능성을 지닌 위대한 존재이다. 스스로 자유로이 결정하고 스스로 행위를 제어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짊어지는 도덕 행위자이다. 이와 같이 불자는 존엄한 인격체로서 사람답게 산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나는 불자답게 사는 삶이 가장 사람다운 삶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 이유에 대한 내 짧은 이야기를 마친다. 불자라면 누구나 아직 불법을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 ‘불자다움’이 무엇인가를 소개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홍창성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 철학과 교수 cshongmnstate@hotmail.com

 

[1530호 / 2020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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