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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화쟁은 이견 절충하는 회통 이론 아니다”

  • 교학
  • 입력 2020.03.24 17:22
  • 수정 2020.03.26 15:01
  • 호수 1531
  • 댓글 5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주장
원효 문제의식을 잘못 읽은 결과
‘복수 옳음’ 수용하는 철학이 화쟁
서로 인식 지평 넓혀가는 대화철학

조성택 고려대 교수
조성택 고려대 교수

신라 원효의 화쟁은 배타적 이견을 절충·종합하거나 제3의 견해를 통해 쟁점을 무화·용해시키는 회통 이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복수의 옳음’을 수용하는 실천철학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불교학 93집’(한국불교학회 간)에 게재된 ‘화쟁의 해석학적 함의와 현대적 의미’에서 “한국학계에서 원효의 화쟁이 주로 회통의 관점에서 이해돼 온 것은 원효의 문제의식과 해석학적 지향을 잘못 읽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열반경종요’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들어 원효를 눈뜬 자로서 장님들이 벌이는 쟁론상황의 해결사로 이해해왔지만 원효 또한 쟁론 상황에 직접 참여하는 장님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에 따르면 원효가 활동하던 동아시아는 화엄, 정토, 유식, 반야 등 대승경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교 종파가 공존했다. 이런 시대에 천태지의가 교판론(5시8교)을 통해 ‘법화경’의 수승함을 드러내려했던 것처럼 경전 주석가들은 자기 종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경전을 해석하고 우열을 나눴다. 그러나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원효는 특정 경전을 우위에 두지 않는 대신 화쟁이라는 독창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원효의 화쟁은 개별 경전의 부분성을 통섭해 불설의 일미(一味)로 돌이키는 동시에 불법의 의미를 다양하게 전개함으로써 여러 학파의 이견을 그대로 살려 화회(和會)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를 위한 화쟁의 해석학적 전략으로 각 개별 경전의 ‘진리성’을 인정해주는 것과 그 진리성과 불법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두 가지를 꼽았다. 원효는 특정 종파나 교판의 입장에서 각 언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한 게 아니라 모든 언설을 긍정하는 입장에서 어떤 조건과 맥락에서 그것이 옳은지를 판별했다. 화쟁은 원효가 타인을 가르치거나 설득하려는 이론이 아니라 원효의 참여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원효가 화쟁을 통해 추구했던 것은 ‘통합’이 아니라 ‘일치’ 문제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원효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보지만 그 통일성이 특정한 하나의 관점과 입장만으로는 통합될 수 없음을 잘 알았기에 각 언설들의 통합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화쟁을 깨달음 혹은 일심으로 표현되던 도착지점이나 완성 상태에서 모든 것을 수렴하고자 하는 이론이 아니라 언설을 통해 그것이 가리키는 불가언(不可言)의 (진리)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화쟁적으로 보면 ‘나의 코끼리’도 코끼리이지만 ‘저 코끼리’도 코끼리라는 딜레마를 용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옳음을 용인하는 게 아니라 복수의 옳음이라는 딜레마를 용인할 때 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차이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큰 옳음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화쟁은 일정한 가치관이나 역사관을 전제한 사상체계가 아니라 차이와 다양성을 긍정하고 대화와 질문을 통해 서로의 인식 지평을 넓혀가고자 하는 소통적 실천이며 대화 철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다른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모두 옳다,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조 교수는 화쟁의 실천이란 내 의견이 다른 사람의 질문과 비판에 개방돼 있는 것처럼 나와 다른 의견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질문과 대화를 통해 차이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갈등학 권위자인 존 폴 레더락의 ‘명백한 모순과 역설을 (해결이 아닌) 공존시키는 능력이 갈등전환의 핵심’이라는 말을 인용한 뒤 “화쟁은 7세기 원효의 불교관에 바탕한 것이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현대적 의미는 대화와 소통, 타인에 대한 개방성, 참여적 실천 등 오늘날 다원사회가 요청하는 민주주의 생활양식”이라며 “화쟁은 오래된 지혜지만 지금에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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