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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신상(身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기자명 현진 스님

‘금강경’에 등장하는 ‘즉비논리’의 첫 번째 문장

‘금강경 여래실견분’ 첫구절에 등장
‘A는 A가 아니므로 A라 한다’ 논리
“모든 상을 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볼 수 있다” 의미로 해석

제5 여래실견분의 전반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몸의 모습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보시자 수보리는 ‘몸의 모습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의 답변에 동조하시며 후반의 가르침으로 이어지는데, 우선 ‘몸의 모습[身相]으로써 여래를 보다’라는 문장을 어떻게 풀이할지 살펴본다.

해당 부분의 범어원문을 직역하면 ‘모습[lakṣaṇa]의 갖추어짐에 의해 여래께서 보여져야 한다’라는, 우리 말로는 다소 어눌한 수동문으로 되어 있다. ‘모습’이란 인도 전래에 성인이 되면 몸에 드러나는 32가지 현상인 ‘32상(相)’을 말하며 ‘여래가 보인다’는 말은 깨달음이 얻어진다거나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해당 범어원문을 우리말에도 어울리는 수동문으로 순화시킨 ‘32상이 갖추어지면 견성성불이 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적용하여 두 분의 문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수보리여! 32상이 갖추어졌다고 하여 견성성불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32상이 갖추어졌다고 견성성불이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수보리는 부처님께 단지 32상이 갖추어졌다고 하여 견성성불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상(身相)은 身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이 부분은 ‘금강경’에 총 40회에 걸쳐 ‘A는 A가 아니므로 A라 한다’라는 내용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즉비논리(卽非論理)’ 형식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문구이다. 현장 스님은 같은 부분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모습이 갖추어졌다[諸相具足]’는 것은 곧 모든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옮기고 있으며, 범어로는 “여래에 의해 ‘모습의 갖춰짐’이라 일컬어진 그것은 곧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수보리의 답변을 다시 정리해보면 “32상이 몸에 갖춰졌다고 하여 견성성불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습이 갖춰졌다'는 것은 모습이 갖춰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가 된다. 여기서 ‘모습이 갖춰짐'으로 동일하게 반복된 말에 생략되었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조금 보충해보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여래의 모습이 갖춰졌다'라는 것은 단지 겉모습인 32상이 갖춰진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도로 윤문이 되는데, 이 경우는 해당 문장이 즉비논리가 아닌 일반 문장이 된다. 물론 즉비논리로 풀면 조금 더 깊은 철학적인 사고를 담을 수 있는 경구(經句)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경(經)이란 날줄로 된 천의 밑판을 가리키므로 그것이 어떤 천으로 완성되는가는 씨줄과 더불어 베틀에 앉은 사람의 솜씨에 많이 좌우된다. 그렇더라도 날줄에 씨줄을 교차해야 한다는 원칙은 어길 수 없는데 그처럼 글에도 어길 수 없는 문법원칙이 있다.

‘약견제상비상칙견여래(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는 통상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닌 줄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제상비상(諸相非相)' 부분이 범어에 ‘lakṣaṇālakṣaṇataḥ(.abl.sg.)'로 분명히 복합어 가운데 특수한 군집쌍방복합어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그 번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론은 ‘모든 상(相)과 비상(非相)을 통해…'로 혹은 그와 유사하게 번역은 될수 있을지언정 ‘모든 相이 非相인 줄로 보면…'으로는 번역될 수 없다. 즉 한문의 ‘제상비상(諸相非相)'을 ‘제상여비상(諸相與非相)'으로 봐야지 ‘제상시비상(諸相是非相)'으로 봐서는 안됨이 범어원문에 근거하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해당부분을 윤문하였을 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인 32상과 아울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심의 모습이 모두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견성성불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라는 내용 정도가 바른 풀이로 여겨진다.

물론 범어 원문을 통해 밝혀진 문법내용을 완전히 무시하고 단지 한문의 다의성(多義性)에 의지해 ‘제상비상(諸相非相)'을 ‘제상여비상(諸相與非相)'이 아닌 ‘제상시비상(諸相是非相)'으로 봄으로써 ‘모든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볼 수 있다’로 풀이하면 더 깊은 철학적인 사고를 담을 수 있는 경구(經句)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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