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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정성의 결정체 ‘사경’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4.03 20:35
  • 수정 2020.04.06 13:01
  • 호수 1532
  • 댓글 0

사경은 전 과정이 정성
피로 쓴 혈사경도 다수
‘사경장’ 지정 큰 의미

불교는 정성이다.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 기도가 이뤄지고, 화두를 깨치며, 극락왕생 길도 열린다. 부처님 말씀을 옮겨 쓰는 사경(寫經)은 지극한 정성과 신심의 결정체다. 오랜 세월 사경은 전법 수단이었으며, 구도 과정이었고, 법신사리를 모시는 불사로 여겨졌다.

‘부처님께서는 살갗을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쪼개 붓으로 삼고, 피를 뽑아 먹물로 삼아 경전 쓰기를 수미산만큼 했다’(화엄경 보현행원품) ‘만약 이 경을 수지·독송해 바르게 기억하며 익히고 베껴 쓰는 중생이 있다면 이 사람은 나를 만나 직접 내 입에서 이 경전을 들은 것과 같으며, 나를 공양함이며, 내가 옷으로 그 몸을 덮어줌과 같으니라.’(법화경)

이 같은 경전 내용은 사경이 대단히 중시됐음을 보여준다. 구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스님이 775년 이두로 기록한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775년)에는 사경이 얼마나 정성껏 이뤄졌는지 잘 나타난다.

‘사경을 하는 법은, 닥나무 뿌리에 향수를 뿌려 생장(生長)시키며 다 자란 후에는 닥 껍질을 벗기는 자, 연마하는 자, 종이를 만드는 자, 사경하는 자, 표지와 변상도를 그리는 자, 표구하는 자, 심부름하는 자 모두 보살계를 받아야 하며, 음식은 청결히 가려 먹어야 한다. 위의 사람들이 대소변을 보거나 누워 자거나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향수로 목욕한 뒤에야 사경하는 곳에 나아간다.’

강원도 건봉사 스님이 피로 쓴 '혈사경'
강원도 건봉사 스님이 피로 쓴 '혈사경'

사경은 불경을 쓰는 일만 아니라 사경에 사용할 나무를 키우고 종이를 만들고 책으로 엮는 전체 과정이 지극정성으로 이뤄졌다. 사경의 종류도 재료와 형태에 따라 다양하다. 먹으로 쓰면 묵서경(墨書經), 금으로 쓰면 금자경(金字經), 은으로 쓰면 은자경(銀字經)이다. 놀라운 건 자신의 피로 쓴 혈사경(血寫經)도 있었다. ‘피를 뽑아 먹물로 삼아 경전 쓰기를…’이라는 경전 구절이 은유가 아니라 실재였다.

중국의 많은 사찰들에는 혈사경이 전해진다. 복건성의 고찰인 용천사(湧泉寺)에는 고승들 혈사경을 보관하는 ‘역대고승 혈서장경’이 따로 있다. 여기에는 명나라 때 법림 스님이 1634년 완성한 혈사경 81권을 비롯해 20여명의 고승이 쓴 혈사경 700여권이 보관돼 있다. 스님들은 자신의 혀와 팔에서 피를 뽑아 한 글자씩 써나갔으며, 사경이 완성되기까지는 몇 개월에서 수십 년이 걸렸다. 그 기간에는 말 한마디부터 몸과 마음 씀씀이까지 청정하려 애썼으며, 피가 잘 응고하지 않도록 소금을 멀리했다고 한다.

순천 송광사에도 중국 스님이 피로 쓴 ‘화엄경’(권69)이 전한다. 사경 전통이 강한 한국에도 혈사경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 초 금강산 마하연의 석하 스님이 10여년간 피를 뽑아 ‘화엄경’ 81권을 사경해 주변에 보시했다는 기록만 있었다. 그러다 2001년 12월 동국대 명예교수 보광 스님이 혈사경 1권을 공개해 큰 관심을 모았다. 1835년 건봉사 스님이 ‘아미타경’과 ‘보현행원품’을 옮겨 쓴 것으로 드문드문 핏방울도 선명하게 배어있어 숙연함과 경외감을 준다. 이 모두 지극한 신심과 정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화재청이 4월1일 사경장(寫經匠)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하고, 첫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을 인정 예고했다. 김 원장은 40여년간 사경의 길을 걸어온 장인으로 한국 사경문화의 전통을 보존·계승할 적임자다. 사경장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예고를 계기로 사경 문화가 확산되고 국내 최고(最古)의 사경을 남긴 화엄사 연기 조사의 서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내 이제 서원하노니 미래가 다하도록 이 경전이 썩어 파괴되지 말지어다. 비록 삼재가 대천세계를 파괴하더라도 이 경은 하늘과 더불어 흩어지거나 파괴되지 말지어다. 만약 중생들이 이 경을 대하면 부처님을 뵙고 경을 듣고 사리를 공경하며, 보리심을 발하여 퇴전하지 않고 보현보살의 인연을 닦아 속히 성불할지어다.’

mitra@beopbo.com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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