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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2020

  • 법보시론
  • 입력 2020.04.06 13:06
  • 수정 2020.05.26 14:35
  • 호수 1532
  • 댓글 0

봄이 왔다. 당연히 꽃도 피었다. 꽃은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반가운 편지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무작정 야외로 나가고 싶어진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봄은 무조건 설렘이고 바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꽃피는 달 3월이 다가도록 대학교정이 적막하기만 하다. 여기저기 저 홀로 핀 꽃들뿐이다. 가만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순간 바람이 불어온다. 산수유, 매화, 살구꽃, 개나리, 앵두꽃, 진달래, 벚꽃, 목련 등이 알아들은 척 손짓한다. 하지만 정작 꽃보다 아름다운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던 각종 개강모임 팸플릿도 보이지 않는다. 캠퍼스 풍경이 왠지 낯설다. 

 두 달 전 정부는 바이러스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약속취소가 잇따랐다. 초·중·고 학생들의 개학은 다시 미루어졌다. 정신적 공황상태의 무기한 연장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코로나19의 여파는 대학에도 전통적인 수업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집단감염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나도 지난주부터 사이버강의를 시작했다. 첫 2주 동안은 과제물로 수업을 대체할 작정이었으나 대면강의가 또 순연되는 바람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기계치나 다름없었던 나는 내심 불안했지만 조교선생의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예행연습을 했다. 얼마나 신경이 쓰였던지 꿈속에서도 원격강의시스템을 조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사이버강의 첫날은 실수의 연속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목소리가 안 들린다’ ‘영상이 보이지 않는다’ ‘수업자료가 올라오지 않았다’ 등등.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단체메일로 사과와 함께 이해를 구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겨우 적응하게 됐지만 아직도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혼자 중얼거리는 내 모습은 마치 연극배우가 대본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스꽝스럽다. 

그동안 사이버강의는 수업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몸으로 직접 부딪혀야 하는 이공계와 예체능계의 실습·실기수업을 감당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이미 포털사이트에는 온갖 해프닝들이 넘쳐난다. 볼일을 마친 학생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학생커플의 애정행위가 생중계되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교수가 강의 중에 어디선가 전송받은 야동파일을 여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이처럼 원격수업은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서인 교육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겉으로는 대학의 판단과 결정에 맡기겠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불과 보름 남짓 남은 총선을 앞두고 성급하게 전면개방을 결정했다가 바이러스가 확산되기라도 한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막판에 여론을 악화시켜 집권여당에 불리한 총선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부장관은 내심 총선 이후로 개학을 미루고 싶은 것이 아닐까. 조만간 총학생회가 수업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등록금반환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크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대학들의 한숨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매년 봄 이맘때쯤 연례행사의 하나였던 남산야외수업도 물 건너가고 말았다. 꽃도 지고 학생도 안 오니 휴강할 수밖에. 1주일 뒤에는 동악 주변의 벚꽃도 완전 엔딩이다. 개나리는 이미 노란 홈드레스를 벗고 초록빛 아웃룩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캠퍼스 2020의 봄날은 어느새 다 지나가 버렸다. 새삼 다반사(茶飯事)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나 전염병의 발생과 유행은 우리들이 짓는 공업(共業)의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계속 경적을 울려댔지만 무명(無明)한 우리들만 알아듣지 못했다. 몸과 입과 마음의 옷깃을 좀 더 단단히 여며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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