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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전 지구적 인류애, 보살의 이타행

기자명 마성 스님

세계적인 위기 극복할 유일한 철학적인 대안

보살, 보시할 땐 부처님과 범부 구분하지 않고 평등하게 베풀어
자리이타는 타인의 생명 지키고 남 도와 자신 행복으로 이어져
그 어떤 종이든 자신의 존속 앞서 다른 개체들 이익 위해 행동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 타마무시노 즈시(玉虫厨子)의 수미좌 그림 중 오른쪽 면, 7세기 전반, 나무에 칠, 아스카(飛鳥)시대, 일본 나라(奈良) 법륭사.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 타마무시노 즈시(玉虫厨子)의 수미좌 그림 중 오른쪽 면, 7세기 전반, 나무에 칠, 아스카(飛鳥)시대, 일본 나라(奈良) 법륭사.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인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 세계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 대안은 없는가? 나는 보살의 이타행(利他行)이야말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 근거를 ‘증일아함경’ 제19권 제5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때 미륵보살이 붓다께 “보살이 몇 가지 법으로 보시해야 육바라밀을 원만하게 갖추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속히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이 물음에 대해 붓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살이 보시할 때에는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한다. 첫째는 보시의 대상인 부처님과 벽지불(辟支佛) 그리고 범부를 구분하여 차별하지 말고 평등하게 베풀어야 한다. 둘째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 즉 신체의 일부이든 권력이든 아내와 자식이든 애착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셋째는 보시의 공덕이 일체에 미치게 하고, 자신만의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는 보살이 보시할 때에는 마땅히 큰 서원(誓願)을 세워 모든 행을 원만하게 갖추도록 해야 한다. 만일 보살이 이 네 가지 법을 행하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속히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 경에서 말하는 보시행, 즉 보살의 이타행은 흔히 말하는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리이타행은 남의 생명을 지키고 남을 돕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안녕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즉 이타행이 곧 자리행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와 매우 유사하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남을 위하는 행동이 결국 나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실제로 “이타적 행동을 하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이 경에서 말하는 보살의 이타행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경쟁적 이타주의(competitive altruism)’와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경쟁적 이타주의는 사회적 명성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공개적인 기부행위에 동참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이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은 명예라는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살의 이타행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자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른바 조건 없는 이타행이다. 경쟁적 이타주의는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출발한 것이지만, 보살의 이타행은 의도를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이 서로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적 이타주의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에게 선행을 베풀되 베풀었다는 상(相)이나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없는 무조건적 행위여야 한다는 뜻이다.

위에서 인용한 경의 내용을 지금의 상황에 적용해 보자. 첫째는 보시의 대상을 구분하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부처님에게만 특별히 보시하고 다른 범부에게는 보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시해야 한다. 이 가르침을 오늘날의 복지정책에 대입해 보면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별적 복지는 오히려 불만의 원인만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계는 물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도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모든 사람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나중에 세금으로 다시 환수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한다.

둘째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이 내용 때문에 보살의 이타행은 경쟁적 이타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사실 보살의 이타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인의 경지가 아니면 행하기 어렵다. 중생이 원하는 것이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서라도 보시하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아내와 자식의 생명까지도 포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차원 높은 이타행을 국가경영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일 붓다라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경까지 폐쇄하는 극단적인 정책에는 분명히 반대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오직 일체중생을 사랑하는 자비심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ego-centric) 본성을 갖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특히 인간은 위기상황에 직면하면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가 발동한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생필품 사재기와 같은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이러한 위기상황에도 이타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 의해 사회가 발전하게 된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보살의 이타행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생명과학에 의하면 모든 생명현상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떤 종(種)이든 자신의 존속과 번식에 앞서 다른 개체들의 이익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이처럼 생명체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난다. 이러한 이타적 행동은 긴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결국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집단 전체와 더 나아가 다른 집단의 번식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이타적 행동이 집단이나 종의 존속과 번식을 위해 지극히 당연한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이기적 행동이 오히려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모든 생명체는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연기의 원리에 따라 이 세계는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있다. 이미 지구는 하나의 생명 공동체다. 자기 나라만 살겠다고 국경 폐쇄하고 방역을 잘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각국이 서로 협조하여 빨리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것이 최선이다. 남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는 대승의 보살사상이 아니면 이 지구를 구제할 수가 없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 지구적 인류애가 바로 보살의 이타행이다. 종교를 떠나 이타행이야말로 세계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적 대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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