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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불교의 믿음

기자명 현진 스님

해탈할 수 있다는 확신, 스스로 갖게 하는 것

불교 믿음은 무조건 믿으라는 것도
맹목적인 믿음만도 강요하지 않아
진리의 길을 일러주고 믿게 하면서
스스로의 편안함과 명료함 갖게 해

제6 정신희유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수보리가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고 ‘참되구나!’라는 믿음을 낼 중생이 조금이라도 있겠습니까?”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부처님께선 “그렇게 말하지 말라! 말세중생이라도 그전에 이미 수많은 부처님께 선근을 심은 중생이라면 이 가르침을 듣고 ‘참되구나!’라는 깨끗한 믿음을 낼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가르침이란 ‘금강경’에서 설한 가르침이니, ‘금강경’을 읽으면 그 가르침이 참되다는 믿음이 샘솟는다는 말씀이다. 비록 ‘많은 생에 많은 부처님 처소에서 선근을 심은 중생’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그렇다면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킨 중생이 말세에 ‘금강경’이 설해졌을 때 응당 내게 될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특히,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것인지, 몇 해 전 실상사 화림원에서 각묵 스님께서 발표하신 ‘금강경’ 발제문 가운데 ‘초기불교에서 믿음[信]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참조하여 내용을 정리해본다.

초기불교에서 ‘믿음’이란 뜻으로 쓰이는 단어는 세 가지가 있으니, 싀랏다(S.śraddhā, P.saddhā)와 쁘라사다(S.prasāda, P.pasāda) 및 아디목샤(S.adhimokṣa, P.adhimokkha)가 그것이다.

첫 번째인 ‘싀랏다’는 가장 근접한 번역어를 찾자면 ‘신뢰(信賴, 믿어 의지함)’에 해당한다. ‘śraddhā’는 동사전치사 ‘śrat­’이 동사어근 ‘√dhā(놓다, 놓아두다)’에 첨부된 형태이다. ‘śrat’은 범어에서 의미가 뚜렷이 정의되어 있진 않은데, 서양의 범어학자들에 의하면 희랍이나 로마의 ‘heart(심장, 가슴)'를 가리키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므로, 전체 의미는 ‘자신의 심장 혹은 마음을 어디나 무엇에 놓다’가 되기에 그 무엇에 대해 믿어 의지한다[信賴]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큰 범주의 의미에서 믿음[信]을 가리키는 ‘싀랏다'는 고대인도 브라흐마나 문헌에서 공물의 신으로 인격화되어 공물을 바치는 만큼 축복을 준다는 개념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빠알리어  ‘삿다'는 초기불교에서 ‘세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법을 설하면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여래에 믿음[信, saddhā]을 가진다’는 문구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는 범어인 ‘싀랏다'가 고대문헌에서 신이나 신의 축복에 대한 믿음이라는 다소 일방적이고 광범위한 의미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빠알리어 ‘삿다'는 불교문헌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가르침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믿음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인 ‘신뢰'는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며 많은 것을 서로 약속하고 그것에 대해 신뢰함으로써 이 세상이 온전히 돌아가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인 ‘쁘라사다'는 제6 정신희유분에서 구마라집 스님과 현장 스님이 ‘정신(淨信)'으로 옮긴 것에 해당하는 범어로서 ‘참되구나!라는 믿음을 낼…’ 때의 그 믿음이다. ‘prasāda'는 전치사 ‘pra­(잘)'와 동사어근 ‘√sad(내려앉다)'에 조사 ‘­a(~것)'가 첨부된 것이니, 잘 내려앉힌 것 혹은 잘 가라앉은 것이란 의미이다. 이것이 믿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싀랏다가 부처님의 법에 대해 신뢰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신뢰로 인해 얻어지는 마음의 편안・명료함을 의미하니, 그것이 ‘참되구나 하는 믿음'이라는 안도감으로 표현된 것이다.

세 번째인 ‘아디목샤'는 제14 이상적멸분과 제15 지경공덕분에 ‘신해(信解)'로 옮겨진 것의 범어이다. ‘~에 대한' 혹은 ‘~을 향한'이란 뜻의 전치사 ‘adhi­'가 동사 ‘√muc(풀다)'의 명사인 ‘mokṣa(해탈)'에 첨부된  ‘adhimokṣa'는 무엇에 대한 신뢰와 그로 인한 편안・명료함을 바탕으로 한 확신(確信)을 의미하는데, 초기불교에서는 경보다는 논서에 많이 나타난다.

불교의 믿음은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단순히 신앙적이거나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주먹에 무엇을 움켜쥐고 주먹 안에 엄청난 보석이 있다고 역설하며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펼쳐 보이듯 법을 일러주어 믿고 의지하게[信賴] 하는 것이며 그래서 마음으로 하여금 편안함과 명료함을 가질 수 있게 하여 해탈로 나아갈 수 있는 확신(確信)을 스스로 지닐 수 있게 하는 것이 불교의 믿음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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