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수행  남쌍옥(아미심, 70)-상
주력 수행  남쌍옥(아미심, 70)-상
  • 법보
  • 승인 2020.04.07 10:08
  • 호수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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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간 통도사 화엄산림
부처님과 맺은 인연의 출발점
불서 받고 300번 읽겠다 발원
아미심, 70

“인연 없는 중생은 부처님도 구제하기 어렵다.”

나이 들어갈수록, 지난 세월 되돌아볼수록, 저절로 다가온 좋은 인연들이 정말 고맙다. 그중에서도 늦게라도 부처님 만난 복, 때마다 훌륭하신 스님 만난 복이 최고로 고맙다.

교사 출신인 나는 나이 50이 되도록 특별한 종교를 가진 적 없이 흔히들 그러하듯 바쁘게, 열심히, 한눈을 팔지 않고 착하게 사는 게 최선인 줄로만 알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짝 친구가 통도사 화엄산림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여행 삼아 나선 길이 부처님을 향한 인연의 첫걸음이었다.

오래되어 언제 적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그 날, 통도사로 가는 택시에서 합승한 어떤 보살님께서 “오늘 대웅전에 가면 1000일 기도 하시는 황산 스님께서 책 한 권씩 주신답니다”라는 말에 단지 책을 얻고 싶은 마음에 예정에도 없던 1000일 기도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때 정말 묵직하고 두툼한 책 한 권을 받았다. 이후 알고 보니 그날은 1000일 기도의 500일째 되는 날이었고 그 책은 법공양으로 보시한 ‘예념미타도량참법’이라는, 제목도 생소한 책이었다.

스님을 가까이에서 뵌 것도 처음, 1000일 기도 자체를 안 것도 처음인 날이었다. 공짜로 책을 얻은 게 미안해서 그날부터 나머지 500일 기도에 동참하여 1000일 기도 회향까지 함께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이 바로 저절로 찾아온 불연이었고 복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공짜 빚 갚는 셈으로 겁도 없이 스님께서 주신 그 책을 300번 읽겠다는 서약서에 멋모르고 덜렁 서약했다. 그러고서도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간절함도 없이 그 후 딱 한 번 겨우 책을 읽었다. 사실상 첫 인연은 시작부터 약속을 어긴, 참으로 무지하고 무치한 배은망덕이었다. 올봄에서야 비로소 ‘한번을 300번 같이 지성심으로 그 책을 읽으리라’ 다짐하며 읽고 보니, 지금 내 나이에 딱 맞는 내용에 뒤늦은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신심은커녕 불교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도 없는 불교 왕초보로 아는 것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다 보니, 나그네 불자로 도중하차 하는 상황은 언제라도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래도 스님과의 인연 복으로 20년이 흐른 지금, 여기에서 날마다 기도하고, 법문 듣고, 봉사하며 더불어 잘살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불교의 첫 인연이 여행 삼아 친구를 따라간 길이어서인지, 아니면 인연 복이 그때부터 트여서인지 알 수 없지만, 불자로 가는 길마다 이끌어주는 귀한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놀랍고 감사하기만 하다.

불교 인연을 맺게 해주신 황산 스님은 기도의 처음과 끝을, 코로나19로 힘든 지금도, 늘 기도하고 수행정진 하는 길을 이끌어주시는 고마운 스님이시다. 당시 기도를 모르니 무조건 스님을 따라 했다. 답답하고 힘들거나 간절히 원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스님께 물어 기도하면서 이기적인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를 배웠다. 나는 마산에 살고 있기에 황산 스님께서 주지를 맡고 계시는 울산 황룡사까지 오갈 수 없는 지금도 스님께서 보내주시는 문자법문, 생활 명상 법문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리고 틈틈이 밴드에서 수많은 가르침을 베풀어주시니 스님을 통해 일과는 온통 수행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스님께서 이끌어주신 덕분에 오래전 한번, 그리고 최근 또 한 번, 스님과 함께한 강력하고 감동적인 두 번의 기도로 나는 감히 “기도의 전부를 맛보았다”라고 가감 없이 표현한다. ‘이것이 자비기도구나.’ 하고 느낀 덕분이다. 오래전의 한번은 통도사 1000일 기도를 막 회향하신 황산 스님께서 나의 부탁을 들어주신 기도였다. 고3 수험생인 우리 반 학생을 위해 수능 시험 날 입시기도를 하고 싶다는 기도 무식자인 나의 부탁을 들어주신 스님께서는 지리산 산청에 있는 은사 스님의 절에서 하루 종일 함께 기도해주셨다. 그 기도 덕분으로 시골 학교 개교 역사상 57년 만에 우리나라 최고 명문 대학에 진학한 아이가 생겨나 지역 사회의 화젯 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리산에서 기도한 선생님’으로 본의 아니게 좋은 평판을 받았다. 조건 없이 베푸는 기도를 그때 스님께 배웠다. 크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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