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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박정식의 ‘밥 먹는 손’

기자명 신현득

나 밥 먹이던 할머니 지금은 병들어
내가 밥 먹여드리는 모습 시로 표현

늙어 병석에 몸져누운 할머니
다 자란 손자가 효심으로 수발
어릴때 나와 병석 할머니 대비
행과 연을 맞춰서 대구법 구성

우리 조상은 효도(孝道)를 모든 도덕 윤리의 근본으로 삼아왔다. 효도는 부모와 조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며, 은혜를 갚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몸은 털 하나까지 부모에게 받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효도이다. 행신을 바르게 하여 부모의 이름을 드러나게 하는 것도 효도이다. 부모님 뜻을 어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또한 효도인 것이다. 

효도는 행신의 근본이기 때문에 가문의 자랑이요, 출신 고장에서도 자랑으로 삼는다. 공적을 기리기 위해 효행을 새긴 비나 효행문을 세워서 사람들이 본받게 하였다. 효자·효녀가 난 마을에서는 마을 이름을 효행에 맞추어 부르기도 하였는데, 전국 여기저기에 있는 ‘효자리(孝子里)’라는 마을은 효자가 난 것을 기념하고 자랑삼기 위한 것이다.

이들 효자·효녀 이야기를 역사서에 실어서 후세 사람들이 읽고 본받게 하였는데, 여러 효자·효녀 가운데서 신라의 효녀 지은이 이야기만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똑같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 역사와 전통이 이러하므로 한국 어린이 모두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행동으로, 시작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밥 먹는  손 / 박정식

아ㅡ 해봐 한 입 먹자!
잘 하네 또 아ㅡ 해봐!

입맛에 딱 맞는 
반찬만 골라서

어릴 때
내가 밥 먹는 
손이었지 할머니 손. 

아ㅡ 해봐요 한 숟갈만!
그렇지 또 아ㅡ 해봐요.

몸놀림이 불편해
얼마나 답답하실까?

병석의 
할머니께서 
밥 먹는 손 내 손. 
박정식 동시집 ‘비디오 판독 중’(2020)

어릴 때, 갓난 아기였을 때는 할머니 손이 내 밥 먹는 손이었다. 할머니 손이 밥 한 숟갈을 뜨고, 아기 입맛에 맞는 반찬을 얹어서 먹여주신다.

“아, 해봐. 한 입 먹자!” 하신다. 아기가 밥을 받아서 꿀떡 먹었다. “잘하네. 또 아ㅡ 해봐!” 할머니는 아가 칭찬을 해 가며 밥을 먹이신다. 할머니 칭찬에 밥맛이 더 난다. “잘하네. 또 아- 해봐.” “또 아ㅡ 해봐.” 이렇게 할머니 손이 손자 나를 키우셨다.  

그런데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할머니가 병석에 몸져누워 계신다. 이제 할머니 밥 먹는 손은 내 손이다. 할머니는 밥맛이 없어 식사를 못하신다. 효성이 있는 손자가 먹여주는 음식이라야 조금씩 받아 잡수신다. 

경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먹여주던 할머니가, 손자 먹여주는 밥을 먹게 됐으니. 효성스런 ‘나’는 할머니가 드실 수 있게 정성으로 밥을 차려서 누워 계시는 할머니께 먹여 드린다. “아ㅡ 해봐요, 할머니. 한 숟갈만!” 병에 시달리는 할머니가 ‘아ㅡ’ 입을 벌리고 손자가 주는 밥을 받아 넘긴다. “잘 잡수시네. 그렇지 또 아ㅡ 해봐요” 그리고 또 한 숟갈, 또 한 숟갈…. 그래서 효도하는 손자 ‘나’는 기쁘고, 할머니는 손자 ‘내’가 먹여 드리니 음식 맛이 난다.  

이 작품은 내 어렸을 때와 병석의 할머니를 대위(對位)에 놓고 행과 연을 맞춘 대구법(對句法) 구성이다. 구성의 묘미가 뛰어나기도 하다.

박정식(朴定植) 시인은 1991년 ‘아동문예’지로 등단, ‘산을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 등 여러 권의 동시집을 내었으며, 한국아동문학상, 오늘의 동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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