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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장신염의 소림사’(1979) 

불도의 자비로 악 징벌해 극락세계로 안내

살생 금지 계율은 부친 복수를 꿈꾸는 각원의 처지와 상충돼
수련 모습은 무협영화의 전형적 장면, 사계절 몽타주로 압축 
‘소림사 지키고 정의 이루라’는 사부 유언은 복수 명분  제시

‘소림사’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살생을 금하는 계율 위반을 악의 징벌과 극락세계 인도라는 명분으로 풀어내는 영화다. 사진은 영화 ‘소림사’ 캡처.

감염의 공포가 세상을 뒤덮는 시대에도 꽃은 핀다. 강은교 시인은 “지상의 모든 피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지는 꽃들”에게 “아직 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달라고 애원했다. ‘꽃’이라는 시이다. 사람이 별에서 꽃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꽃들이 한 잎 한 잎 피어나서 지상의 사람들을 시골 정류장 부근 나무 위로 마중나와 기다리는 봄이다. 감염의 시대와 꽃은 서로 안어울리지만 계절은 부조화 속에서도 흘러간다. 풍경과 시간이 이질적으로 결합하는 시기는 역사적 격변기와 전염의 시간일 듯하다. 수나라 말기 극심한 혼란기에 영웅호걸이 등장하고 천하의 패권을 다투면서 힘을 겨루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사찰은 위기에 봉착한다. 영화 ‘소림사’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으로 무협영화와 불교영화가 융합되었다. 무협영화는 협객이 주인공이며 그들은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남의 고난에 뛰어’들며 ‘피는 피로 되갚아주고 복수는 반드시 갚는다’는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늘 대나무 꼭대기에 놓는다. 불교영화는 복수보다는 자비를 지향한다. 두 장르는 태생적으로 대립된다.  

‘소림사’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살생을 금하는 계율 위반을 어떤 명분으로 실행할까에 대한 영화적 개연성을 화두로 제시한다. 

주인공 각원(이연걸 분)은 부친의 죽음을 목도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소림사 산문에 몸울 의탁한다. 그는 부친의 복수라는 협객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소림사에서 수행을 위해서는 계율을 준수해야한다. 첫 장면에서 각원은 수계를 받기 위해 서원을 해야 한다. 첫 번째인 ‘살생을 하지 않겠는가’는 질문에 그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가 망설인 이유는 회상화면을 통해 과거의 사건으로 해명된다. 각원에게 살생 금지 계율은 부친의 원수를 갚아야하는 자신의 처지와 상충된다. 각원은 장군 왕인즉에 의해 자행된 부친 살해의 현장을 목격하고 대항하다 실패하여 소림사에 찾아든다. 그는 왕인즉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무예를 연마한다. 수나라 말기에 도탄에 빠진 중생들은 소림사 일주문 앞에 모여 구호의 손길을 내민다. 소림사 방장스님은  부처님의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고 왕인즉의 군사로부터 소림사를 지켜야하는 이중의 과제를 풀어간다. 각원은 무예를 빨리 수련하여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 하지만 사부는 무예 전수보다 자기 수련을 강조한다. 각원의 사형들은 바닥의 홈이 파이도록 동일한 동작을 3년째 반복하고 있다. 필자가 소림사를 방문했을 때 입구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줄기에 여러개의 홈이 파여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홈은 스님들이 무예를 연마하면서 손가락으로 나무 줄기를 때려서 여기 저기 총탄의 흔적처럼 파인 것이다. 수련장의 바닥이 움푹 파인 것도 그들의 수련 시간을 가늠하게 한다. 각원은 혹독한 수련을 수행한다. 수련장면은 무협영화의 전형적 장면이며 네 계절을 몽타주로 압축해서 제시한다. 소림무술의 진면목은 이연걸을 통해 부각된다. 각원은 도피중인 당태종 이세민을 탑림의 부도탑 사이로 피신시킨다. 이세민은 소림사 스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하지만 이로 인해 소림사는 위기에 처한다. 이세민은 각원과 사부의 딸 백무하와 함께 혼례객으로 위장하여 황하로 탈출한다. 왕인즉의 군사는 이들을 추적하여 결국 황하 도강 직전에 제지한다. 위기에 처한 각원은 이세민을 탈출시키고 단신으로 대항하지만 중과부적이다. 이때 소림사 스님들이 각원을 구하기 위해 도착한다. 스님들은 불살생 계율로 인해 전투를 망설이자 무예의 사부는 “불도의 자비로 악을 징벌한다”고 천명하면서 전투를 명한다. 악의 징벌과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명분은 스님들의 살생과 전투의 개입에 대한 영화적 개연성이다.   

사진은 영화 ‘소림사’ 캡처.
사진은 영화 ‘소림사’ 캡처.

왕인즉 군사는 소림사를 불태우려고 한다. 방장스님은 소림사를 보존하고 스님을 해치지 않는 조건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다비식을 준비한다. 군사에 의해 소림사가 법란을 당하자 스님들이 대항하려고 나선다. 소림사 전투장면에서 사부는 군사들의 활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사부는 제자들에게 ‘소림사를 지키고 정의를 이루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때 이세민이 황하를 건너 동도에 도착했다는 전령이 당도한다. 스님들은 왕인즉의 군사를 추격하여 이세민의 승리에서 큰 공을 세운다. 각원은 왕인즉과 결투에 승리하여 부친의 복수에 성공한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현재 수계식 장면으로 되돌아오면 각원은 ‘살생은 안되지만 정의를 위해서는 가능하다’고 사부의 유언을 환기시키면서 복수에 대한 명분을 부여한다. 마지막 계율인 “술을 마시지 않겠는가”라는 부분에서 법당에 당태종 이세민이 등장하며 소림사 스님에게 술과 고기를 허락한다는 황제의 특명을 하사한다. 스님들은 모두 벚꽃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다. 황제의 특명으로 허용된 소림사의 육식과 음주는 ‘소림사’에서 취권과 개고기 바비큐 파티를 했던 스님들 일탈에 대한 영화적 명분을 제공한다.  

소림사라는 제목의 영화는 중국 불교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소림사’는 피는 피로 되갚는 무협영화의 서사를 준수하였지만 ‘불도의 자비로 악을 징벌하여 저들을 극락세계로 안내한다’는 자비 실천이라는 불교영화의 주제도 충족시켰다. 대중성은 한편의 장르에 대한 지지보다는 두 장르의 균형점에 자리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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