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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전한 해인총림 일화‧수행‧구전 이야기

  • 불서
  • 입력 2020.04.13 13:36
  • 수정 2020.04.22 10:51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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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 종현 스님 지음 / 조계종출판사

“스님!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2001년 범어사 선원 동안거 시절, 포행에 나서 대성암 계곡 쪽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던 30대 중반 여인이 길을 막고 물어온 그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하네’ 하며 지나쳤지만, 뒤통수가 뜨겁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랜 시간 곱씹으면서 그 물음은 어느새 화두가 됐다.

지난 2004년 4월부터 2015년 9월까지 11년간 월간 ‘해인’ 편집장을 지낸 도림사 주지 종현 스님이 20년 전 포행길에서 만났던 여인의 물음을 제목 삼아 그동안의 수행 여정을 담아낸 산문집을 펴냈다. 스님은 여기서 사찰이나 스님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생활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해인총림을 둘러싼 일화와 수행담, 비밀스러운 구전까지 담아낸 글은 간결하고 위트 있으면서도 독자들의 깊이 있는 성찰을 일깨우는 이야기보따리다.

스님이 직접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엮어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책은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뜻의 ‘무작타관(無作他觀)’에서 행자실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손해 보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이라는 ‘끽휴시복(喫虧是福)’에서 강원 이야기를 다루고, 작은 말 한마디에 큰 뜻이 숨어 있다는 ‘미언대의(微言大義)’에서 선원 이야기를 펼친다. 또 글자 하나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의미를 담은 ‘일자포폄(一字褒貶)’에서 해인사 이야기를 전하고, 바보처럼 살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난득호도(難得糊塗)’에서 생활 이야기를 다루며 스님들의 산속 생활을 전한다.

월간 ‘해인’지 편집장을 역임한 도림사 주지 종현 스님이 해인총림을 둘러싼 일화와 수행담 등을 엮어 산문집으로 펴냈다.
월간 ‘해인’지 편집장을 역임한 도림사 주지 종현 스님이 해인총림을 둘러싼 일화와 수행담 등을 엮어 산문집으로 펴냈다.

스님 이야기엔 만나기 어려운 옛 이야기들도 있다. 해인사에서 일주일간 삭발하지 않고 행자복도 입히지 않은 채 출가한 복장 그대로 대기 생활을 하는 ‘속복 생활’이 대표적이다. “삼천배를 마치면 어려운 것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6일간을 계속 벽만 보고 세워 놓고 있는 것이다. 이 속복시간에 많은 행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하산을 한다. 출가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책 읽고 학문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스님은 여기서 행자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삭발한 행자가 행자실에 입실하는 입방식에서는 선행자들 앞에서 행자수칙을 말하는 시험을 치른다. ‘예불 철저, 대적광전 앞을 지날 땐 반배, 스님들께 인사 철저, 선배 행자에게 절대복종, 소임‧차수 철저, 스님이 물어보면 반배로써 대답, 삼경 전 취침 금지.’”

물론 옛 기록이기에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수행 정진뿐 아니라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고 있는 해인총림의 설 풍경, 누룽지로 업장을 녹인 승혜선사 이야기, 홍류동 계곡 길을 복원할 때 새롭게 길 이름을 공모한 일화, 두 스님의 이름이 똑같아서 오해로 일어난 해프닝 등의 이야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산속 생활이 딱딱하지만은 않으며 재미있고 놀라운 일들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연화장 세계임을 간접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도반인 청주 마야사 주지 현진 스님이 “해인사의 수행가풍을 몸으로 체험하며 그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종현 스님이 수행일화를 씨줄과 날줄로 엮었다”고 소개한 책에서 촌철살인의 대화를 만나고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문답을 보면서 통쾌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1만4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33호 / 2020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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