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참선’ 요지와 ‘간화선법’
15.  ‘참선’ 요지와 ‘간화선법’
  • 선응 스님
  • 승인 2020.04.13 16:57
  • 호수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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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분심‧의심 없으면 ‘그릇’ 못돼

부처가 되는 것은 믿음이 근본
수행자는 먼저 뜻 세워야 하고
크게 의심해야 큰 깨달음 가능

14장 본문은 “‘참선’은 세 가지 요지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대 신심이고, 둘째는 대 분심이며, 셋째는 대 의심이다. 만약 하나라도 없으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마침내 그릇이 될 수 없다”이다.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가 ‘선요’에서 ‘참선’의 요지를 밝혔다. ‘믿음’은 ‘불조’의 가르침이 자신의 인식과 감정적 행동을 ‘향상일로’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분심’은 내가 왜 미혹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가? 반드시 ‘불조’같이 깨닫겠다는 의지다. ‘논어’에서 ‘간절한 마음’과 ‘영리한 사람’만이 지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해석하기를 “경전에서 ‘부처가 되는 것은 믿음이 근본이 된다’고 하고, 영가(永嘉玄覺, 665~713)는 ‘수행자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고 하며, 몽산(夢山德異, 1231~1308)은 ‘참선자는 ‘언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되니 크게 의심해야 큰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고 했다. 

‘화엄경’에서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다. 모든 선한 법을 증장한다”고 한 내용이며, ‘분심’은 ‘영가집’에서 “크고 간절한 뜻을 세워서 진실하게 ‘화두’를 들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옹정제(1678~1735)의 ‘선어록모음’에서 “의심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을 연유한다. 믿지 않는데 어찌 직입할 수 있는가? 믿어야 의심하고 의심해야 진실로 의심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고 했고, 또한 ‘대혜어록’에서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아야 스스로 수긍하고 알아차릴 것이다. 모든 생각이 끊어진 다음에 다시 소생하면 누구도 더 이상 그대를 속일 수 없으리라”고 하며, 부휴대사(浮休, 1543~1614)도 “대 의심과 대 분심을 발해서 몸을 잊고, 절실한 마음으로 의문을 내어 현풍(무위자연의 도교와 윤리도덕의 유교)을 내려놓아 앞으로 한발 내딛어서 ‘법신불’의 정수리에 도달해야, 곧 불 속에 피는 연꽃과 같이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선요’에서 “‘화두’의 언구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라고 하며, ‘몽산법어’에 “근본 참구하는 ‘공안’에서 의심이 클수록 크게 깨달으니 천번 만번 의심을 하나의 의심으로 만들어야 판단하게 된다”고 한 내용이다. 

15장은 “일상생활 중에 무슨 일을 하면서든지 오직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는가?’ ‘화두’를 끊임없이 들어,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사라져 아무 맛도 없어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이다.

대혜 ‘서장’에서 “화두를 들 때는 기량을 만들어 쓰지 말고 오직 ‘행주좌와’에서 끊어지지 않게 ‘희로애락’을 분별하지 않고 화두를 들어 깨어있되 이치의 길이 없고 맛이 없어 가슴이 뜨거울 때가 되어야 신명을 놓는 곳이다”라고 한 내용이다. ‘자미(滋味)’란 입으로 맛보는 것과 오경(논어, 맹자, 대학, 중용, 예기)에 박식함을 의미한다. ‘몰자미’란 몸의 감각과 의식적 분별을 떠나서 백길 높은 벼랑 끝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향상일로’ 경지다. 

평하기를 “어떤 스님이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하니, 조주가 ‘무’라고 한 화두는 ‘선종’의 한 ‘관문(關門)’이고 이것은 많은 악한 지식과 악한 깨달음을 꺾어 버린 도구며 제불의 ‘면목’이고 조사의 ‘골수’다. 이 ‘관문’을 뚫고 나간 후에야 ‘불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고인’의 게송은 “조주의 칼날이 드러나니 찬 서리 빛이 쨍쨍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하면, 몸을 나누어 두 조각을 낸다”이다. ‘관문’이란 국경에서 문을 닫고 조사하는 문으로 ‘조사’의 점검이 필요한 ‘공안’을 말한다. ‘임제록’에서 “계율로 바르게 하고 기름을 들 때 흘리지 않아도 도안(허망한 것을 간파하는 눈)이 밝지 않으면 다 빚을 진 것이다”고 하여 ‘활구’의 ‘견성성불’을 강조한 것이다. 게송은 설암(雪巖祖欽, 1215~1287)의 ‘법어록’에서 오조(五祖法演, 1024~1104)의 설이다. ‘간화선’은 일체 분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33호 / 2020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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