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 질문으로 교화하는 법

붓다 질문은 무지 깨는 암탉의 부리

무비판적으로 신념에 집착할 때
붓다는 일부러 질문던져 일깨워
붓다의 질문은 중요한 교화수단 
질문은 가장 알고 싶어 한 내용

오랜 전통이 있는 각 나라나 지역에는 사람들이 따르는 관습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좋게 표현하면 ‘전통’이라고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지켜져야 할 전통과는 무관하게, 일종의 믿음체계처럼 받아들여져 행해지는 행위들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말을 한다. 그것을 왜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묻지 않고 맹목적으로 행위 한다. 

‘디가니까야’에는 ‘싱갈라를 가르치는 경(Siṅgālovādasutta)’이 있다. 한역으로는 ‘육방예경’ 등으로 전한다. 이 경전은 한 장자의 아들인 싱갈라가 매일 육방으로 예경하는 모습을 보고 붓다가 싱갈라에게 그 연유를 묻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경전을 보면 질문을 받고 그에 답하는 내용도 있지만, 붓다 스스로 상대에게 다가가 질문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스승이 일부러 ‘질문해 주는 것’이다. 당사자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도 못하고 그래서 궁금해 하지 않지만 스승은 자비심으로 그에게 다가가 질문하는 것이다. 

“[붓다] 장자의 아들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라자가하 성에서 나와, 젖은 옷과 젖은 머리 차림으로 동방, 남방, 서방, 북방, 하방, 상방에 각각 합장 예배하는가?

[싱갈라] 세존이시여!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저에게 ‘아들아! 여러 방향에 예배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라자가하 성에서 나와, 젖은 옷과 젖은 머리 차림으로 동방, 남방, 서방, 북방, 하방, 상방에 각각 합장 예배합니다.”

싱갈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육방으로 예배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신념화하는 경향이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언제나 이러한 신념을 깨뜨린다. 그리고 사유의 지평을 확장시켜, 신념에 가려진 세상을 열게 한다.

“[붓다] 장자의 아들이여! 그렇다면 잘 듣고 깊이 생각해 보시오. 내가 이야기 하겠습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음을 말한다. 내 생각을 갖고 듣게 되면 붓다의 가르침이 들어오지 않고 설령 듣는다고 해도 왜곡해서 듣게 된다. 붓다의 가르침은 ‘들으면 알 수 있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붓다의 가르침이 조작된 것이거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천권청 에피소드에서 붓다는 세상을 향해 “낡은 믿음을 버리고 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라고 선언한 것이다. 낡은 믿음이란 맹목적 믿음이며 왜곡된 견해에 기반한 믿음, 권위에 짓눌린 믿음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믿음과 자기 생각을 버릴 때 우리는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 경은 인간관계에 대한 종합적 통찰을 준다. 붓다는 육방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동쪽-부모, 남쪽-스승, 서쪽-처자식, 북쪽-친구와 동료, 아랫방향-하인과 고용인, 윗방향-수행자와 성직자. 이는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각각의 방향에는 우열이 없다. 우열이 있다면 그것은 곧 생각이며 낡은 믿음이 된다. 이는 당시 인도인들의 방위관념에 인간관계를 배재한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이다. 

붓다는 상대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질문’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그 질문은 상대가 실제 알고 싶어 한 그 ‘질문’이다. 알고 싶지만 무지로 인해 ‘멍청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음을 질문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의 질문은 무지의 알을 깨어 주는 ‘암탉의 부리’와도 같은 것이다. 붓다가 묻고 진심으로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할 때(啐啄同時), 무지의 알은 깨진다. 붓다가 교화할 때 사용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자비로운 ‘질문’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33호 / 2020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