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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로빈 월 키머러의 ‘향모를 땋으며’

기자명 박사

모두가 모두에게 선물인 우리 세계

거래하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선물 있는 그대로 보고
감사‧기쁨 가득한 세상을 인식
나와 남 행복 다르지 않음 알기

‘향모를 땋으며’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분류하고 떼어내고 하나씩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과학적’ 사고방식에 굳게 붙잡혀있는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은 난해한 조언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연기성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나와 남을 먼저 상정하고 그 둘의 관계를 살피는데, 그 방법으로는 나와 떨어진 남, 남과 떨어진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가야 할 길이 지난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뿌리박힌 익숙한 사고방식을 내려놓는 데서부터 제대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말은 과학적 사고를 전면 부정한다는 것과는 또 다르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딸기를 보자.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포타와토미족 출신의 식물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자신을 “딸기가 키웠다”고 말한다. “내게 세상에 대한 감각을, 세상 속에 나의 자리를 선사한 것은 여름내 아침마다 이슬 맺힌 잎 아래에 열린 야생딸기였다”는 그는, 딸기 이야기로 입을 떼어 어떻게 이 세상이 온통 선물로 이루어져있는지, “선물경제”는 어떻게 “시장경제”와 다른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딸기의 향과 색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쉬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를 포함한 자연이 하나의 기쁨의 공동체로 둥실 떠오른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게 이거였구나. 있는 그대로 보면 보이는 것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딸기뿐이랴. 인디언의 지혜를 받아 안은 한편 과학적 언어로 식물을 연구한 학자인 그는 전통의 지혜와 과학, 두 가지를 직조하여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어째서 자연이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것이 자연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인지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생명이 생명을 만드는 순환, 곧 호혜성의 사슬 속에서 우리가 선물을 받는 것은 자연에 유익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둥글게 이어진 관계 속에서 내가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물은 나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짜로 온다. 내가 손짓하지 않았는데도 내게로 온다. 선물은 보상이 아니다. 우리는 선물을 제 힘으로 얻을 수 없으며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선물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 그런데도 선물은 내게 찾아온다. 우리가 할 일은 눈을 뜨고 그 자리에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둥글게 흐르는 호혜성의 관계는 ‘거래’가 개입되면서 끊어진다. 땅을 ‘소유’하면서 착취하게 되고, 인간과 대지의 관계는 부서진다. 감사와 존중은 사라지고, 연기론은 그저 ‘좋은 게 좋은 말씀’이 되어버린다.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거래하는 것과 빼앗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환경’은 ‘문제’가 된다.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한다. 부서지고 불완전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자구책은 연약하다. 에코백과 텀블러, 마스크와 비누에 의지해 걷잡을 수 없는 자연의 흐름에 간신히 저항한다. 궤멸은 자명하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살던 대로 산다면.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상처 입은 세상조차도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상처 입은 세상조차도 우리를 떠받치고 우리에게 놀라움과 기쁨의 순간을 선사한다. 나는 절망이 아니라 기쁨을 선택한다. 그것은 내가 현실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기쁨이야말로 대지가 매일같이 내게 주는 것이며 나는 그 선물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쁨을 알아챈다면, 우리에게는 복원과 치유의 숙제가 남는다. 어떻게?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있는 그대로 보고, 이 세상이 얼마나 축복과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지 보면서. 내 행복과 다른 이의 행복이 어떻게 다르지 않은지 보면서. 그의 질문을 듣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온 세상이 상품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해지겠는가. 온 세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물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부유해지겠는가.”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33호 / 2020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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