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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얻지 못한 교훈

이보다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인 전쟁은 없다. 그렇다고 총과 대포로 섬멸하는 적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류는 지구의 탄생 이래 최초로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적이 가진 무기는 취약한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것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인류가 쌓아올린 지식은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구나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몰락으로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쾌재를 부른 사람들은 이 비참한 현실에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는가. 자본의 탐욕이 개척한 신자유주의의 루트는 그야말로 대유행의 통로가 되지 않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희생자가 된 것에는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면 이 현상은 자연의 정화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중지되고 나서 하늘은 맑아졌으며, 대기는 청정해지고, 탄소배출은 급감했다. 결국 지구의 바이러스는 인간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담 스미스든, 케인즈든, 하이에크든 위대하다던 경제학자들은 이 현실을 예측하지 못했다. 거시든 미시든 경제학은 지구 전체를 논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오직 수익과 손해, 경쟁과 도태, 자율과 규제 간의 차이만을 따졌지 경제 활동 그 자체를 멈추는 요인을 자신들 경제학 원론에는 넣지 않았다. 얼마나 불완전한 학문인가.

인류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가야한다. 더구나 이 사태의 모범국으로 인정받는 한국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 운명을 짊어졌다. 지금 내딛는 발걸음은 역사가 될 것이다. 유럽의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압축성장한 한국으로서는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과연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울 수 있는가. 자신이 없다. 

21대 총선에서 거의 모든 후보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경쟁적으로 돈을 끌어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개인 생활이 파탄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주민들의 삶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살림살이는 정부를 비롯하여 지자체의 장과 지역의회가 맡고 있다. 그들이 국회에서 분배하는 돈 또한 지역민의 세금에서 걷어간 것이다. 국회의원은 지역만이 아니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당장은 무너지는 삶을 복구해야겠지만, 그들은 안전과 평화, 자유와 평등, 지역 간의 연대와 조화, 소외와 배제의 탈출의 정치를 통해 삶의 가치와 질을 어떻게 고양시킬 것인가를 내세웠어야 했다. 나아가 코로나19 이후의 국가와 사회를, 세계와 더불어 어떻게 재생시킬 것인지 로드맵과 철학을 제시했어야 했다.  

결국 선거에서는 코로나19의 교훈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큰 전쟁의 고통을 몇 번이나 겪고도 여전히 인류가 숱한 국지전을 치루고 있는 것은 눈앞의 이익에 어둡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명을 이용해 권력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희생의 대가로 떠오르는 한 가닥 희망의 서광을 어떻게 확장하고 확충할 것인가. 

그 길은 ‘금강경’에서 “무릇 형상 있는 바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라는 말씀을 지남으로 삼는 일이다. 장 보드리야르가 말하듯이 소비의 주체가 된 기호의 전도된 질서를 정견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허망한 현실에 눈떠야 한다. 무상한 삶 속에는 소유하는 자도 소유되는 것도 없다. 오직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배려와 인정의 따뜻함, 작은 것을 소중히 하는 열린 의식, 무한에 둘러싸인 감사의 기쁨, 감각 너머의 진실에 대한 통찰력 등 경제 외부로 유배당한 요소들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공생하고 상생하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가지고 있음을 불타는 설파한다.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피어나는 꽃을 즐거워하듯 왜 우리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요 열락이 되지 못하는가. 역설적으로 코로나19는 방황하는 인류 전체가 진여법성의 세계로 환지본처 하도록 어쩌면 긴급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지구에 펼치고 있는지 모른다. 새 판도의 정치는 도(道)의 정치여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교수 wonyosa@naver.com

 

[1534호 / 2020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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