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천사 신제주불교대 보리왓 원장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 보리왓 원장 성원 스님
  •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20.04.20 13:44
  • 호수 15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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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량골에 새긴 일언 “쌀 한 되만 있으면 세상과 타협 않는다”

지장보살 대원력에 감동 
직장 사직 다음 날 출가

천진불어린이합창제 가교 
어린이포교 새 지평 열어

신제주에 둥지 튼 ‘보리왓’
제주 불자 교육 핵심 부상   

포교·전법은 선택 아닌 의무
“불자라면 행복해야 한다”

​​​​​​​수행자가 지향하는 삶이란 
한 점 기름마저 태우는 촛불
성원 스님이 품고 싶은 절은 “된장에 나물만 무쳐 먹어도 행복한 절, 도서관 함께 쓰며 작은 방 하나씩 얻어 수행하는 평화로운 절”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4월13일부터 닷새째 2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시점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다. 깊게 들이 마신 숨을 이제 한 번 내쉬는 듯하다. 3월5일 예정이었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Bodhi Wat)’ 3기 입학식은 ‘사회적 거리두기’ 궤적과 맞물리며 밀리고 밀려 거의 한 달하고도 열흘이나 지났다. 생활방역으로 넘어가는 시점과 함께 입학식을 치를 것도 없이 개강할 참이다. 나름 4월23일 개강을 기대하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또 한 번 연기된다면 개강은 5월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남다른 원력이 스민 불교대학이다. 땅값, 집값 비싸기로 정평 난 이곳 제주 연동에 정착할 때 4층 건물 한 층을 전부 임대한 것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이하 보리왓) 개원법회(2017,11)에 앞서 삼존불을 봉안했다.(2017,10) 은사인 포산당 혜인 대종사가 단양 광덕사 보궁전에 봉안했던 아미타·관세음·대세지보살 삼존불이다. 포교 일선에서 평생을 헌신했던 은사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이자 “탐라의 모든 사람이 불법의 정수를 만나는 진리의 도량”으로 우뚝 서기를 발원했음이다. 

어린이들이 뛰어놀며 노래 연습하던 공간은 아직 적막하다. 초등학교 정문이 열릴 때 보리왓 소속의 보리수어린이합창단(2018, 9월 창단) 활동도 재개한다고 내심 못 박아 두었기 때문이다. 성원 스님의 어린이합창단 인연은 12년 전의 ‘제주 약천사 리틀붓다어린이합창단’ 창단(2008)에 맞닿는다. 

약천사 주지 소임을 처음 맡았을 때 어린이포교 일환으로 합창단 창단 원력을 세웠더랬다. 현실은 냉정했다. 창단 모집 소식을 전한 지 며칠이 지났건만 단 한 명의 어린이도 찾지 않았다. 전단지 직접 들고 서귀포 중문초등학교 정문 앞까지 찾아가 수업 마치고 귀가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나눠 주었다.

“스님, 이게 뭐예요?”
“집에 가서 엄마에게 꼭 보여드려라!”

열일곱 명이 문을 두드렸다. 실망스러움과 황당함이 교차했지만 찾아 준 아이들과 함께 합창연습에 매진했다. 얼마 후 단원은 25명으로 늘었다. 어린이합창단을 후원하는 자모회를 조직했다. 이야기를 동반한 공연도 기획했다. 창단 3년께 단원은 40여명으로 늘었다. 

도반들에게 어린이 포교의 중요성과 합창단의 실효성을 전했다. 함양 서암정사, 부산 대원사·관음사가 합창단을 조직했다. 약천사를 중심으로 한 4개 사찰은 천진불어린이합창단연합회(회장 성원 스님)를 구성(2016)한 후 2017년 1월 부산 을숙도문화회관에서 ‘제1회 천진불어린이합창제’를 선보였다. 가릉빈가보다 더 천진무구한 목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은 어린이들은 합창제의 주제대로 ‘새처럼 날고 별처럼 빛’났다. 합창단을 통해 어린이 포교의 새 장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쾌거였다. 이미 세 번의 무대를 선보인 천진불어린이합창제에는 보리수어린이합창단까지 포함해 8팀이 참여하고 있다. 

약천사는 은사스님과의 인연이 맺어진 뜻깊은 도량이다.  

‘사람들은 종교를 가짐으로 해서 인생의 어려움을 해결하기도 한다.’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은 제주지역 불자 교육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윤리 시간에 마주한 이 구절에 개신교를 택했다. 공과대학을 다니던 중 입대했는데 군생활 중에도 종교 활동을 할 만큼 독실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선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가치가 희석되거나 심지어 죄가 되기도 한다. ‘보편적 선이 용납되지 않는 교리적 모순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는 군·대학·직장으로 이어지는 5년여 동안 무종교로 돌아섰다. 

어느 날, 최열 환경운동가가 서울 을지로에서 주도한 시위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지인을 만났다. 해산 후 그는 “조계사로 간다”고 했다. 난생처음 지인을 따라 조계사를 참배했다. 기초교리 한 권을 사 귀가하는 버스에서 읽어 내려갔는데 한 대목에 시선이 꽂혔다. 심장이 멎는 듯했다.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하기 전에는 성불하는 것도 미루시고 지금도 지옥의 문 앞에서 육환장을 들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지장보살님!”

3일 동안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고는 결론을 내렸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묻지 않고 잘못된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아파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적 심성이다. 종교의 존재 가치는 여기에 있다.’

조계사에서 염주를 사고는 청년회에 가입했다. 서재에는 불교 서적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불교사상에 젖어들며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왜 사람들에게 출가하라 하셨을까?’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직후 한 생각이 스쳐갔다.

‘부처님은 우리를 바르게 이끌어주실 성인이시다. 왜라고 묻지 말고 부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자. 출가하자!’

인재를 잃고 싶지 않았던 회사는 난색을 표하며 ‘한 달 동안 쉬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 권했다. 인도로 떠났다. 갠지스 강변에서 만난 요기들에게 물었다. ‘희한한 자세’로 20년, 30년 있는 이유를 말이다.

“수행할 뿐입니다!”

인생의 가치를 수행에 둘 수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출가 의지는 더욱 굳어졌다. 사표 수리 다음날 송광사 산문으로 들어섰다. 해인사에서도 행자생활을 보냈는데 어느날 한 스님으로부터 ‘혜인 스님의 덕이 크다’는 전언을 듣게 됐다. 약천사로 향했다. 창건불사가 한창이었던 터라 도량은 어수선했다. 처음 친견한 혜인 스님이었지만 끌림이 있었다. 

한 번은 약천사 소유의 초가집이 화재로 전소됐다. 혜인 스님 부재중 일어난 일인지라 절에 있던 사부대중은 꾸지람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절에 환란이 일어나는 건 주지의 덕이 부족해서다. 화재 진압하는데 고생들 많았다.”

비행기편 놓칠세라 뛰어가다가도 도량에 조성된 부처님 마주하면 합장 반배 올리는 은사스님이다. 합장하시는 그 정성 너무도 지극해 주변 사람이 얼어붙을 정도였다. 성원 스님의 원력과 신심은 은사 혜인 스님 곁에 머물 때 그 깊이를 더했을 터다.

보리왓을 준비할 때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기존의 불교대학들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데 도심 한 복판에 건물을 임대해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게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밝혔다.

“승려에게 포교·전법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1년 살림을 결산해 보면 늘 그렇듯 운영비, 강사료, 임대료를 빼면 ‘남는 게 없다.’ 이마저도 강의를 가장 많이 한 자신의 강사료를 제외했을 때 나오는 계산서다. 밀감을 팔아 보리수어린이합창단 한 달 운영비를 마련해야 할 때도 있었을 정도다. 이런 형편이면 한 번쯤 접을 생각도 할 법한데 고개를 저었다. 안동 용수사에 머문 때를 회상했다. 

처음 절에 들어서서 법당에서 예를 올리려 초를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도반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들은 도반이 되물었다.

“초가 없으면 쌀도 없을 터인데?”

공양주에게 물어보니 정말 쌀도 없었다.

떠나야 하는가, 머물러야 하는가! 그날, 사유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되뇐 한 마디를 척량골에 새겼다.

‘쌀 한 되, 된장 한 그릇, 간장 한 종지만 있으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손익에 관심 두지 않고 출가수행자의 삶을 올곧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세운 것이리라. 사찰 특강·법문 후 ‘거마비’라도 생기면 3분의 1은 자신을 위해 쓰고, 3분의 1은 불교를 위해, 그리고 3분의 1은 어린이 포교를 위해 쓰고 있는 성원 스님이다. 

약천사에 이어 보리왓 소속의 보리수어린이합창단도 창단했다.

토요일이면 보리왓 법당은 성원 스님 보고 싶어 찾은 어린이들 차지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면 됩니다. 자기를 좋아하는지, 관심이 있는지 아이들은 금방 알아챕니다. 마음을 다해 다가가면 아이들도 마음을 다해 다가옵니다. ‘합창은 독창과 달리 몇 개의 다른 특징을 갖는 소리가 모여 통일되고 질서에 따라 생겨나는 소리의 앙상블’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은연중 습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전하신 중도·상생으로 안내하는 최적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를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성원 스님이다. 불교교리의 핵심을 유튜브를 통해 전하는가 하면 우리 사회의 공통적 인식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며 담론을 나누고 있다. 또한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보리왓과 자신의 일상을 전하며 대중들과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올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인류·사회·정치·의학계의 진단은 한 지점으로 집중된다. ‘우리는 결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다.’ ‘우리가 알던 세상은 끝났다.’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사태는 시기만 확정할 수 없을 뿐 또다시 발생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정말 어렵다고 봅니다. 비대면 거래, 비대면 서비스, 비대면 교육, 재택근무 등을 통해 직감할 수 있듯이 삶의 방식은 급격하고도 거대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사회의 문화와 제도,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방식과 가치관이 코로나19 이전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종교의 패러다임도 변화할 것이라 전망했다.

“성지순례, 사찰 참배, 수행이라는 기존 틀이 당장 무너지거나 희석되지는 않겠지만 사찰을 찾는 빈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각 종단·사찰에서는 인터넷 법문을 비롯한 비대면 교육·수행·기도 방안을 다양하게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보리왓의 강의 체계도 바꿔갈 계획입니다. 기존의 교리교육은 인터넷 강의를 통해 전하고, 이곳 도량에서는 질의와 토론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생에서 꼭 하고 싶은 불사를 여쭈어 보았다. “제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는 다른 것”이라며 “평화로운 절 하나 조성하고 싶다”고 했다.

“수입만큼만 쓰는 절. 된장에 나물만 무쳐 먹어도 행복한 절. 도서관 함께 쓰며 작은 방 하나씩 얻어 수행하는 절. 제가 꿈꾸는 절입니다.”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청하니 “행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 법문 하셨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 살아가는 불자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신행생활에 결함이 있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고민하고, 부족하면 채우려 노력해야 합니다. 불자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 언젠가 법보신문 칼럼을 통해 전한 일언이 생생히 들려온다.

‘수행자의 삶이란 마지막 한 점 기름마저 태우고 꺼지는 촛불과 같아야 한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성원 스님은
포산당 혜인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승가대학·송광사 율원 졸업. 단양 광덕사, 제주 약천사 6·8대 주지 역임. 제주 자광원 초대원장. 현재 한국소아암백혈병협회 제주도지회 이사, 천진불어린이합창단연합회장,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원장. 조계종 총무원장 특별공로상(템플스테이·2010), 조계종 포교대상(원력상·2017) 수상.

 

[1534호 / 2020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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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2020-04-21 10:22:39
스님 은혜가 참 큽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