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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간화선’의 10가지 병과 ‘조사관’

기자명 선응 스님

화두는 ‘문제 나타내는 어구’ 참구

화두에는 의식으로 추측하거나
말에서 살길 만드는 열 가지 병
대혜 8종, 보조가 10종으로 전해

16장은 “‘화두(話頭)’는 드는 곳에서 알 수 없으며, 생각으로 알아낼 수 없고 미혹한데서 깨달을 수 없으니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생각하여 마음이 갈 곳이 없는데 나아가면, 마치 ‘늙은 쥐가 쇠뿔에 들어가서 문득 단절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계략으로 근원을 마련하는 것이 ‘식정(識情)’이고, 생사의 윤회의 밑에 떨어지는 것이 ‘식정’이며, 두렵고 두려운 것의 끝이 ‘식정’이다. 요즘 사람은 이 병을 알지 못하고, 오직 그 속에 있으면서 머리를 내밀었다 빠졌다(頭出頭沒)한다.” 

‘화두’는 ‘참선자’가 ‘문제를 나타내는 어구’를 참구하는 것이다. ‘원은경(猿听經)’에서 “경문을 읽고, ‘화두’를 참구하고, 속세의 인연을 버리기만 하면 예스러운 선사는 영원히 근심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이 수행자의 일이다. 이 본문은 대혜(1089~ 1163) ‘서장’의 내용이다. 중국에서 소뿔은 쥐를 잡는 도구인데 쥐가 소뿔에 들면 나올 수 없듯이 ‘참선자’가 ‘화두’를 깊이 참구해서 ‘망념’이 완전히 끊어진 경지를 말한다. ‘식정(識情)’이란 ‘6근으로 인식하는 의식’과 ‘분별식의 감정(7식)’이다. 

3조 승찬(僧璨, 510~606)의 ‘신심명’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의식과 망정으로 헤아리기 어렵다”하고, ‘수능엄경연의’에서는 “깨달음과 열반은 원래 청정체이다. ‘의식과 망정’은 근원이 분명하니 모든 연은 연이 있으면 생 할 수 있다. 근본성품에서 종자식이 망식으로 변해서 의식을 생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두출두몰(頭出頭沒)’은 “청정법신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호주사명(濠州思明, 10세기)선사가 “구더기가 똥 속에 있으면서 머리가 나왔다 빠졌다 한다”고 하며, 원굉도(袁宏道, 1568~1610)는 “천하의 사람들은 머리를 내밀거나 물러서거나 하고, 시비하면서 마른데 의지하고 썩은 것에 붙어있다”고 하니 ‘본성’을 모르고 ‘오욕’의 부침에 빠져 사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평하기를 “‘화두’에 ‘10종병’이 있다. 의식으로 추측하거나 헤아리는 것과,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 깜빡거리는 것으로 근거를 헤아리며, 말에서 살 길을 만들며, 문자를 인용해서 증명하며, 들어 일으키는 것을 알아 마치며, 일 없는 속에 틀어박히고, 있는 것이라거나 없는 것으로 아는 것, 진실로 없다고 알거나 이치가 그렇다고 아는 것, 미혹해서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열 가지 병’을 떠나서 다만 화두를 들 때 정신을 차리고 오직 ‘이 무엇인가’만을 의심하라”라고 했다. 

이 ‘10종병’은 ‘서장’에서 대혜종고가 8종으로 설한 것을 ‘간화결의론’에서 보조국사가 10종으로 전했다. 생각으로 분별하거나 문자와 말로 알거나 지레짐작하는 등의 변론을 멈추고 단지 ‘화두’를 의심해야 한다. 

이어지는 17장은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 소위에 있는 것’과 같이 문득 어떻게, 왜냐고 묻지 않고 곧 ‘새 부리’를 내려놓고 납득이 안가는 곳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번 꿰뚫으면 몸과 함께 투과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원오어록’에서 약산유엄(藥山惟儼, 745∼828)이 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에게 절을 올리고 “제가 석두(石頭希遷, 700~790)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은 마치 ‘모기가 무쇠 소에 올라탄 것’과 같았다”고 한 일화다. ‘위산영우전’에서 백장선사를 평해서 “‘모기가 무쇠 소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대의 입을 댈 곳이 없다”고 한 것은 ‘참선자’는 자신과 타인의 ‘견지’를 묻지 말고 오직 ‘화두일념’으로 ‘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하시길 “거듭 위의 뜻을 결론하면 ‘활구’ 참구하는 이가 퇴전하지 않게 한다. 고인이, ‘조사관’을 투과해야한다. ‘묘오(妙悟)’는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고 하신다”고 했다. 위진시대(220~589)부터 ‘묘오’를 썼다.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의 ‘무문관’에서, “‘묘오’는 궁극에 ‘조사관’을 투과하는 것이다. ‘조사’의 관문(공안)’을 투과하지 않고, ‘심로(잠재업식, 분별식, 감각식)’가 끊어지지 않으면 풀을 의지하고 나무의 정령이 붙은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34호 / 2020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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