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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봉준호의 기생충’(2019)

신분위조로 계급 상승 꿈꾸던 ‘일장춘몽’ 다뤄

집단 취업, 반지하 살던 가족이 지상으로 이동하는 상승 곡선
민혁에게 선물받은 ‘산수경석’이 영화를 이끄는 매개체 역할
사회학적 시각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계급 문제 잘 드러낸 영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기우 가족이 신분 위조 계획으로 계급 상승의 꿈을 이뤘지만 해고된 집사 문광의 출현으로 반지하로 되돌아가는 일장춘몽 계열의 영화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 스틸컷.

시인 황지우는 ‘세상에 대한 한줌의 가망을 벗어버리니 이렇게 홀가분하다’(겨울 숲)고 했다. 기택(송강호)은 ‘계획이 없으니 잘못될 일도 없으며 계획이 없으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무계획 예찬론을 갈파한다. ‘기생충’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계급 문제보다 어쩌면 계획이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의 자유를 더 강조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사회학적 시각에서 계급의 문제가 두드러지며 장르의 눈에서는 코미디가 잘 읽힌다. 불교영화의 입장에서 ‘기생충’은 배창호의 ‘꿈’과 이명세의 ‘개그맨’을 잇는 일장춘몽 계열의 영화이다. 주인공 기택은 편지에서 한 편의 꿈과 같다고 한다. 일장춘몽은 한국불교영화의 특별한 주제다. 

꿈의 대척점에 계획이 자리한다. 기우는 취업을 위한 신분 위조라는 계획으로 계급 상승의 꿈을 꾼다. 기택은 기우에게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지지를 표명한다. 기택은 수재민의 집단 합숙소에서 계획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절대 실패하지 않은 계획은 무계획”이다. 기우는 부친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다. 체육관에 모인 수재민들은 체육관에서 집단합숙하려는 계획이 없었다. 그러므로 세상일은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한다. 기택의 무계획론에 대해 이동진은 “목표가 없으니 실패하지 않고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으니 현재가 조급하게 여겨질 이유가 없는 경험칙”으로 정의한다. 기우는 아버지 기택의 무계획 무걱정론을 듣고 자신의 계획 실패에 대해 사과한다. 

파국은 기우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 기우는 친구 민혁의 소개로 박동익(이선균) 집의 과외 선생이 된다. 이어서 그의 동생 기정은 다송의 미술과외를 맡고, 부친 기택은 운전기사로 핸들을 잡으며, 모친 충숙은 집사가 되어 온 가족이 같은 집에 모두 취업한다. 취업과정은 신분 위장으로 연교를 속이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다.   
그들의 집단 취업은 반지하 가족이 지상으로 이동하는 상승의 곡선을 그린다. 상승은 거짓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기에 하강의 가능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 기택의 가족은 해고된 집사 문광의 출현으로 반전을 맞이하여 결국 기택은 지하로 기우와 충숙은 반지하로 되돌아가는 하강의 미끄럼을 타게 된다. 계급의 상승 사다리와 하강의 미끄럼틀은 ‘기생충’ 영화의 서사적 방향이다.  

상하 운동은 기우의 계획에서 출발한다. 출발점은 민혁의 선물 산수경석이다. 민혁은 기우에게 육군사관학교 출신 할아버지의 유물인 산수경석을 선물한다. 기우는 산수경석을 통해 민혁을 흉내 내어 과외 면접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다. 기우는 폭우로 잠긴 반지하 집에서 산수경석을 들고 나온다. 기택은 아내의 메달을 선택하고 기정은 천장의 담배를 피우지만 기우는 무거운 산수경석을 택한다. 산수경석은 영화를 이끄는 열차다. 기우는 산수경석을 통해 민혁의 당당한 기세를 모방하고 계급상승의 욕망을 꿈꾼다. 산수경석은 기우에게 민혁의 상징이면서 계급상승의 욕망이다. 또한 기우는 지하에서 산수경석을 떨어뜨림으로써 처벌을 받게 된다. 산수경석은 기우의 마음이며 결국 기택의 편지를 수신하고 산수경석을 계곡에 돌려보낸다. 기택은 편지에서 그날 벌어진 사건들이 모두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토로한다. 기택은 인생의 일장춘몽에서 깨어나고 있다. 계곡에 빠뜨린 산수경석은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며 기우도 기우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을 암시한다. 기우는 편지에서 계획을 말한다. 그는 여전히 현재에 살지 않고 미래에 살아간다. 기우는 첫 시퀀스에서도 연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할 때도 ‘내년이면 입학할 학교의 재학 증명서를 미리 발급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미래의 기대로 현재의 불법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한다. 기우는 현재보다 불확실한 미래의 기대 지평에 기대어 현재의 터널을 건너는 태도를 반복한다. 기우는 ‘먼저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사고 그때 기택은 그냥 계단으로 올라오면 된다’는 계획을 말한다. 돈을 번다는 구체적인 방법은 부재하지만 기택을 구한다는 계획은 세운다. 봉준호 감독은 기우의 평균 급여를 저축해도 저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려면 대략 547년 정도 걸릴 것으로 답한 바 있다. 기우의 계획은 그의 희망사항으로 현재의 조건을 도외시한 꿈과 같다. 기택은 편지에서 한편의 꿈을 꾸었던 것과 같다고 토로하고 기우는 꿈을 통해 아버지 구출 계획을 세운다. 

기택의 가족이 동익의 집에 집단 취업을 하는 상승도 산수경석의 욕망이 꾸는 꿈에 가깝다. 기택의 우발적인 동익의 살해도 슬로모션으로 처리된 꿈과 같으며 기우가 산수경석을 계곡에 방생하고 돌아왔을 때 산수경석의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기택의 구출에 대한 기우의 노력은 다시 꿈으로 돌아가게 한다. 기우는 기택을 지하에서 구출할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은 꿈에 가깝다. 기우의 계획은 산수경석의 욕망이 이끄는 것이 아닌 기우의 자리에서 세우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의 구출 작전은 그가 꾸는 또 다른 꿈에서 가능하다. 그의 편지는 실현불가능하지만 꿈에서 성취하고 싶은 계획이다. 기우가 집을 구입하여 부친을 구출한다는 방법은 돈을 통한 계층 상승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태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기우는 민혁이 심은 신분상승의 욕망을 산수경석의 방생으로 꿈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비몽사몽이다. 기택은 꿈에서 깨어나서 아들과 가족을 걱정하면서 무계획인 본래의 마음을 회복한다. 기택의 무계획은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이며 기택의 평정심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기택은 동익의 하층계급의 모욕으로 살인을 저질렀지만 다시 무계획으로 마음을 되찾았다. 그는 지하에 거주하지만 이미 지상과 지하의 경계를 지웠기에 마음은 고요하다. 기우는 산수경석의 꿈을 버렸지만 다시 기택의 구출이라는 책무로 인해 마음이 출렁인다. 기우의 행보는 저축보다는 더 큰 사기 행각을 통한 기택의 구출일 수도 있다. ‘기생충’은 에필로그를 통해 꿈에서 깨어난 마음의 평정과 계획을 다시 세운 출렁거림이 팽팽하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34호 / 2020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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