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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침묵’ 속 성스런 부처님오신날 기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0.04.28 10:17
  • 수정 2020.04.28 10:18
  • 호수 1535
  • 댓글 0

찬탄송가 가득 울려퍼질 날이기에
한 생명 더 살리는 기도 입재  절실
코로나19 사태 속 나눔·배려 우선
바리밀 실천할 때 부처님 우리곁에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다!

혜안을 가졌던 선지식이 일갈했듯이 부처님은 오늘 오신 것이 아니다. 생멸의 삶을 사셨던 부처님이지만 생사해탈을 통해 법신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법신은 ‘오고 감’ 없이 우주법계에 충만하니 늘 우리 곁에 계셨음이다. 미완의 존재인 중생도 여래로 통찰하여 붓다가 될 수 있음을 천명하신 부처님. 바라밀을 설천하려는 불자들이 이 땅에 넘쳐날 때 예토가 정토로 바뀐다는 가르침을 전하신 부처님. 우리는 오늘도 연등을 밝히며 부처님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새긴다.

찬탄의 노래 소리 온 누리에 가득하고도 넘쳐야 할 오늘이지만, 우리는 코로나19 희생자 애도와 국난극복의 원력을 담은 ‘거룩한 침묵’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하여, 4월30(음력 4월8일)일은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를 입재하는 날이고, 이 법회는 5월30일(음력 윤4월8일)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통해 회항된다. 지난 2개월여 동안 그러했듯 4월30일 초파일 법회에도 사람 사이에 ‘벽 아닌 벽’이 세워지고 우리 입에 마스크가 쓰여 있겠지만, 한 생명이라고 더 살리려는 사부대중의 원력만큼은 오롯이 빛날 것이다. 그 원력 좀 더 탄탄히 다져보고자 부처님오신날 한 달 정진 기간 중의 ‘보시 바라밀’ 실천을 제안한다.

보시의 유형으로는 눈, 신장. 골수, 의복, 음식, 보석, 집 등과 같이 자신의 신체나 물질을 내어주는 재보시와 경전, 불서 등을 통해 무명 속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법음을 전하는 법보시, 고난을 당한 사람의 정신적인 불안과 공포를 위로·소멸시켜주는 무외시가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초점을 맞추면 지금 우리가 펼쳐야 할 건 재보시와 무외시이다. 보시를 행할 때는 덕이 있는 자와 덕이 없는 사람을 가리지 말라 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도 가리지 말라 했다. 차별 없이,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을 건네고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이 길을 걸었다. 감염·생명과 직결되는 마스크 나눔이 방증한다. 일례로 중앙신도회는 이주민 법당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라오스 국립아동병원에 마스크를 지원했다. 중국의 동화선사는 조계종의 중국 긴급지원의 보답으로 마스크 10만장을 갖고 왔다. 이 마스크는 서울시와 의료시설,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배포됐다. 미국과 유럽이 ‘마스크 전쟁’을 불사할 때 불교계는 생명의 고귀함을 또 한 번 깨달으며 재보시와 무외보시를 동시에 실천한 것이다. 백신은 ‘신약’ 이전에 한 개의 마스크라도 서로 나누려는 마음에 있음을 아시아 불교계는 통찰하고 있음이다. 

누군가에게 건네줄 만한 물질을 소유해야만 보시행에 동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가 있음을 ‘잡보장경’은 전하고 있다. 밝은 미소로 상대방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부드러운 말 한마디를 전하는 언시(言施), 정답고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대해주는 심시(心施), 호의를 담은 눈빛으로 대하는 안시(眼施), 할머니가 끌고 가는 리어카를 밀어 주는 등의 남의 일을 돕는 신시(身施),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내어주는 좌시(座施), 상대의 심중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찰시(察施)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며 작은 보살핌이라도 베푸는 게 보시다. 성 안내는 얼굴,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보시다. 보시를 실천함에 있어 상하귀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장경’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설파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국왕, 재상, 대신 등이 가난한 자, 농아인 등의 장애인들을 만나 보시하고자 할 때, 대자비심을 갖추어 겸손한 마음으로 웃음을 지으며 손수 보시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보시하되 부드러운 말로 위로할 수 있다면, 이들 국왕 등이 얻게 되는 복과 이익은 일백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부처님께 보시한 공덕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높고 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빈천한 이들과 장애인들에게 큰 자비심을 낸 까닭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나눔과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살겠다’고 서원한 불자라면 기존의 나눔과 배려에 좀 더 따듯한 자비의 마음을 더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상에서 바라밀을 실천하려는 우리의 원력이 면면히 이어지는 동안 부처님 법신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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