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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정신과 공인의 자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끝났다.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를 정하는 법을 세우는 일이다. 

법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택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원리이다. 법치를 처음 사상적으로 체계화한 한비자는 “법이란 사(私)를 폐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근본을 사(私)로 보고 법을 정하여 사가 행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법치의 근본정신이다. 법은 공적인 질서를 세우는 것으로서 철저히 사와는 상반된 것이며, 그 출발점과 지향하는 목표 그리고 제정과 시행의 모든 과정에서 철저하게 사를 배제하고자 한다. 법에 사적인 요소가 끼어들게 되면 법의 정당성과 권위가 사라지게 되어 법의 효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국가는 패망의 길로 치닫게 된다. 따라서 공과 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질서를 세워 나라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이 원칙이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철저하게 지켜지기를 바라고, 특히 법을 정하고 법에 관한 논의를 하는 국회에서 사를 공에 앞세우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공자는 일반적인 서민(小人)은 이익을 앞세울 수 있지만 사회를 지도하는 사람(君子)은 의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유학에서 군자는 마땅히 그렇게 되라고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향원(鄕愿)은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부정적 인간상으로서 기피와 비난의 대상이다. 공자는 “내 집 앞을 지나며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유감으로 여기지 않을 자는 오직 향원뿐이다. 향원이야말로 도덕의 적이다”라고 말했고, 율곡은 “향원은 사이비한 인물로 혹세무민하여 국가와 사회에 심대한 해악을 끼치는 인물이니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원은 알 것은 다 알아서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국가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음밀하게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이익만을 챙기는 패거리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조선 오백년 동안 유학을 숭상했고 유학은 이렇듯 향원을 심하게 비난하고 경계했건만 유학을 숭상하는 조선조에서 향원의 무리들이 넘쳐났던 까닭은 무엇일까? 또한 오늘의 현실을 보더라도 세상과 주변에 향원들이 득실거리고, 특히나 정치하는 곳에서 향원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탓일까? 그럼에도 국민의 대표로 새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사적 이익을 좇지 않고 의리를 추구하며, 특정 당파에 충성하는 대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기를 바라는 희망의 끈조차 놓고 싶지는 않다.

붓다는 임종 무렵에 제자들에게 자신에 의지하고 진리에 따르라고 가르쳤다. 우리나라의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공적인 일을 개인이 사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사사로이 처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붓다의 가르침대로 오직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밝은 마음으로서의 진리와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면 공무를 잘못 처리하여 국가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스스로도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할 것이다. 또한 공인이 어느 특정 집단의 편에 서서 일하지 않기를 바란다. 진영의 편에 서면 진영의 이익과 승패만이 눈에 아른거려 객관적인 옳고 그름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이 바람직하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는 공적인 마음가짐으로 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근에 눈여겨 본 중국 관공서의 정문 표지판에 새겨진 다음의 글귀를 함께 새겨 봤으면 한다.

“네가 받는 봉록은 백성들의 피와 땀의 결과이다. 아래로 백성을 학대하기는 쉬우나, 위로 하늘을 속이기는 어렵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yunjai@seoultech.ac.kr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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