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지 말라는 불투도계는 재가수행자에게도 익숙한 계목이다. 율장에서 정의하는 ‘훔친다’는 개념은 허락없이 타인의 물건을 사용하거나 본래 있던 자리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훔치는 조건 하나가 충족된다. 만약 두 사람 사이가 매우 친해서 허락 받지 않고 물건을 썼다면 훔치는 조건은 성립하지 않는다. 친구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친구 것이어서 피차의 분별이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상대방과의 인연이 이처럼 돈독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아니면서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도둑질하려는 마음은 없었으므로 근본죄를 범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이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방식이 아니다.
‘사분율’의 ‘의건도’에는 ‘친후의(親厚意)’ 즉 친하다는 생각으로 옷이나 물건을 상대방의 허락 없이 사용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친한 벗의 조건’을 알려주시는 대목이다.
사리불과 부처님이 함께 구사라국을 유행하다가 잠시 앉아서 쉴 때 아난이 승가리를 땅에 두고 잊어버린 채 길을 떠났다. 한참 후에 이 일을 떠올린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옷을 가지되, 친한 벗이라는 생각을 하고 가져라.”
“어떻게 하는 것이 친한 벗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취하는 것입니까?”
“물건을 취함으로써 상대방이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7가지 법을 갖추어야 친우가 되고 이익이 되며 자비로 애민히 여기는 것이다.
첫째는 주기 어려운 것을 줄 수 있고, 둘째는 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고, 셋째는 참기 어려운 일을 참을 수 있고, 넷째는 비밀을 서로 나눌 수 있고, 다섯째는 서로의 잘못을 이해하고 덮어주며, 여섯째는 고난을 당해도 버리지 않고, 일곱째는 가난해도 경시하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일곱 가지 법을 행할 수 있는 자를 친한 벗이라고 부르니 그런 이를 가까이 해야 한다. 친하지 않은데 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지 않은 물건을 가지면 안 된다. 일곱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갖추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방의 물건을 마음대로 취해서는 안 된다.”
위 대목을 다시 풀어보자.
첫째, 하기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이란 친구를 대신해서 어떤 힘든 일을 해도 싫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관계다. 둘째, 주기 어려운 것을 기꺼이 줄 수 있는 사이란 자기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내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관계이다. 셋째, 참기 힘든 것을 기꺼이 참을 수 있는 사이란 일을 도모할 때는 서로 간에 뜻이 아주 달라 번뇌롭더라도 끝나고 나서는 원한이 없는 관계를 말한다. 넷째, 남들에게 알리기 어려운 비밀을 서로 공유하는 사이란, 속마음을 털어놓고 감추는 것이 없는 관계이다. 다섯째, 잘못을 이해하고 서로 덮어주는 사이란 단점은 자비의 마음으로 덮어주고 장점은 밖으로 드러내서 그가 가진 명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관계다. 여섯째, 고난을 당했을 때 저버리지 않는 사이란 설사 감옥에 갇혀도 절대 외면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는 관계다. 일곱째, 가난하고 지위가 낮아도 경시하지 않는 사이란 친구의 빈부귀천에도 언제나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은 관계맺음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인간의 일평생 동안 유효한 명언이다. 특히 수행자에게 진정한 벗은 수행의 전부라고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벗의 고귀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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