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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6칙 영운도화(靈雲桃花)

진시방세계가 곧 자신 전체

미혹과 깨침이 따로 없는 것은
바다서 물방울 분리 못하는 것
수행과 깨침의 일상화도 동일

영운은 복사꽃을 보고 깨침을 터득하였다.(靈雲見桃花悟道)
영운지근(靈雲志勤)은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를 참문하였는데 복사꽃을 보고 홀연히 깨침을 터득하고 오도송을 바쳤다.
한평생 자신의 마음을 찾고 찾는 동안 (三十年來尋劍客)
몇 차례나 잎이 지고 가지를 헤쳤던가 (幾回葉落又抽枝)
한차례 복사꽃 핀 모습을 경험한 뒤에 (自從一見桃花後)
오늘에 이르러 더 이상 의심이 없다네. (直至如今更不疑)

깨침의 기연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올 수가 있어서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쉽다면 맨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고 어렵다면 세상이 다할지라도 불가능하다. 이에 선지식의 설법뿐만 아니라 자연물의 인연법을 통해서 깨침을 터득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깨침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며 직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없어서는 결코 불가능하다. 그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에만 선지식은 제자를 극한의 경지까지 몰아세운다. 궁즉통(窮卽通)이라고 하듯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경지에서 비로소 기연은 타파된다.

영운지근은 30년 곧 한평생 수행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절인연처럼 분명한 도리도 달리 없다. 영운이 검을 찾는 행위는 본래의 마음을 참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복사꽃을 보고서야 생사일대사를 해결한 것이다. 영운은 평생 동안 복사꽃이 수십 번 피고 지는 모습을 보아왔다. 재작년에도 그리고 작년에도 꽃은 피고 또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피는 모습과 지는 모습은 그저 피고 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준비가 갖추어진 이후에는 더 이상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이 피고 세상이 지는 것이었다. 이제야 자신에게 추호의 의심도 없는 경지를 터득하였다. 의심이 없는 경지란 복사꽃과 자신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곧 진시방세계가 곧 자신의 전체이고 자신의 전체가 진시방세계 그대로이다.

영운지근의 깨침에 대하여 임천종륜(林泉從倫)은 말한다. ‘여우의 수염이 붉은 줄 알았는데 붉은 수염의 여우가 있었구나. 자, 말해 보라. 영운이 복사꽃을 보고서 단적으로 깨친 것이 무엇이었던가.’ 여우의 수염이 붉은 것은 여우와 수염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는 안목이다. 여우는 어디까지나 여우이고 수염은 여우의 턱에 붙어있는 수염일 뿐이다. 그러나 붉은 수염의 여우는 수염과 여우를 하나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여우를 여우라는 이미지의 통째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복사꽃과 복사꽃이 피는 것과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선적인 안목이다. 때문에 내가 꽃을 바라보고 저 꽃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동시에 그 꽃도 또한 나를 보고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는 줄을 안다. 마찬가지로 꽃이 피었구나, 꽃이 시들었구나 하는 것이 별개의 대상과 주관으로 구별되어 있지 않다.

그와 같은 경우에 대하여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를 보고서 옛날 동산의 봄을 그리워하는구나.’ 하는 심정을 가능하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로다. 삼천 리 밖에 벗어나 있는 듯 아무런 상관이 없구나.’라고 말했다. 꽃을 바라보는 나와 내 눈에 들어온 꽃을 색과 공으로 표현한 것이다. 곧 각자 다르기로 말하면 삼천리 밖에 벗어나 있는 듯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같기로 말하면 색과 공처럼 나눌 수 없는 즉(卽)의 관계에 있다. 이를 두고 설두는 본래 미혹과 깨침이 따로 없는 것은 마치 바다에서 물방울을 분리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수행과 깨침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수행과 깨침의 일상화가 그것이다. 이런 점을 터득한 영운지근에게는 바로 매년 피고 또 지는 복사꽃이었지만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매년 새로운 복사꽃이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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