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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크리스티앙 파쥬의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기자명 박사

지붕 없는 삶에서 본 세상사는 지혜

아내 떠난 후 끝없는 추락 끝에
노숙자의 삶을 살게 된 주인공
거리 생활서 얻은 깨달음 전해
자비 베풀 때 삶 정상작동 공감

8. 크리스티앙 파쥬의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집은 무엇일까. 집은 우리를 보호해주고, 다음날을 살아낼 수 있도록 휴식할 자리를 만들어주는 곳이다. 집의 중요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집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집값 안정이야말로 정치의 최우선 과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기돼지의 빨간 벽돌집을 읽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서민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집은 한편으로는 단절과 고립의 초소다. 나와 남 사이는 두꺼운 철문이 가로막고, 현관문에 보조 잠금장치의 숫자가 늘어가는 만큼이나 이웃과의 소통은 사라진다. ‘치솟는 집값’과 ‘집값 떨어지게’의 공포 사이, 집은 늘 말썽의 소지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집은 그 안에 자기의 ‘소유물’을 쌓게 한다. 집도 내 것, 가구도 내 것, 텔레비전과 최신식 컴퓨터와 커피머신과 철마다 입을 옷들도 내 것. 그 모든 내 것들은 집의 튼튼한 벽 안에서 확실한 보호를 받는다. 

집이 없다면 삶은 어떻게 변할까. 우리는 그에 관해 말해줄 가까운 이웃을 알고 있다. 시내중심가의 지하철역이나 벤치, 역 앞 광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10만 명, 혹은 그 이상일 것이라 추정되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들을 외면하고, 기껏해야 동전 몇 푼을 건넬 뿐이다. 

그 중의 한 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 책의 저자는 파리의 길거리에서 삼년을 살아낸 노숙자다. 전 재산을 배낭 하나에 우겨 넣고 지붕 없이 사는 그에게는 다행히도 핸드폰이 하나 있다. 덕분에 그는 트위터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릴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노숙자의 삶을 생생하게 중계할 수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의 소믈리에. 아내와 아이와 함께 지하에 와인저장고가 있는 넓고 깨끗한 아파트에 살던 그는 아내가 떠나고 난 뒤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여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집 없이 거리에서 사는 이들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폭력과 질병에 고스란히 노출되며 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살아낸다’. 그러나 그 삶이 비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 친구가 되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고통, 비참, 경멸, 환희, 우정, 기쁨, 헌신 등 삶의 다양한 감정을 날것으로 겪는다. 그곳은 고통의 바다이자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는 한겨울에 파리 시청 직원이 노숙자들을 쫓아내겠다며 물뿌리개 호스로 뿌린 물에 맞아 흠뻑 젖어버린다. 그는 “메모지가 든 병을 바다에 던지는 심정으로” 트위터에 이 이야기를 올렸고, 놀랍게도 그 글을 본 파리시장이 직접 찾아와 사과를 한다. 그 일을 겪으며 그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사람이고, ‘착한 사마리아인’도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를 구타하고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고, 어떤 사람은 추운 겨울날 노숙자에게 호텔을 잡아주거나 정기적으로 옷을 빨고 목욕할 수 있게 도우며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그는 “거리에서 가장 큰 위험은 추위도, 배고픔도, 알코올도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알아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라며 경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국 사람끼리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부처님 또한 궁을 나온 뒤에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집 없이 길 위의 삶을 영위하셨다. 탁발을 하며 다른 이들의 호의에 의지해 매일 몸을 유지할 힘을 얻으셨다. 저자 또한 길 위에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는 악행을 일삼으면 삶이 지옥이 되고,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의 깨달음은 부처님의 말씀에서 멀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는 자비를 베풀 때 삶은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 그 자명한 진리에 등 돌리고 현관문을 걸어 잠근 채 혼자만의 집에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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