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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가들의 봄노래 비교해 듣기

기자명 김준희

아기부처님 태어난 봄…생명·탄생으로 묘사

독일 작곡가 막스 레거 ‘봄 노래’ 온화한 마야부인 닮아
차이콥스키 ‘사계’ 중 ‘4월’은 룸비니동산의 봄 떠오르고 
섬세함·당당함 어울린 바버의 곡은 탄생의 순간 연상돼

탄생불.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막스 레거의 ‘12개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집’ 중 세 번째 곡인 ‘봄노래(Frühlingslied)’는 봄날의 산들바람과 같은 분위기의 곡이다. 이 작품집의 다른 이름인 ‘꽃과 잎(Blätter und Blüten)’과 가장 어울리는 이 곡은,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서사시인 ‘불소행찬(佛所行讚)’의 앞부분이 연상된다. 단정한 모습의 수련과도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는 이 곡을 온화한 마야부인의 모습에 견주어 본다.

‘왕은 천제석(天帝釋)같고 / 부인은 제석의 부인 사지(舍脂) 같았네. / 뜻을 잡아 지님은 땅처럼 안온하고 / 마음 깨끗함 연꽃 같았네 / 임시로 이름하여 마야(摩耶)라 했나니 / 그는 실로 세상에 견줄 이 없네. / 저 코끼리[象]에게 / 신(神)으로 하강하여 태(胎) 속에 들자 / 어머니는 온갖 걱정 시름 모두 여의고 / 허깨비 같은 거짓 마음 내지 않았네.’ - 담무찬(曇無讖) 한역본

막스 레거의 후기 작품들은 복잡하지 않은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곡은 특히 감상적이며 섬세하다. 마치 브람스의 간주곡(Intermezzo, Op.118-2)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 곡은 처음 등장한 주선율이 네 번 반복 되며 큰 클라이맥스 없이 잔잔하게 끝맺는다. 마치 봄밤의 기대와 설렘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아이를 기다리는 마야부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가벼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같은 고요한 설렘이 46마디 안에 녹아 있는 것만 같다. 

러시아 특유의 격정적인 대작들을 많이 남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독주곡은 상대적으로 간결한 면모를 보인다. 그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집인 ‘사계(Временагода) Op.37a’는 모두 12곡으로 구성되어있다. 차이콥스키는 187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월간 음악잡지 ‘누벨리스트’의 발행인으로부터 한 해 동안 매월 한 곡씩 잡지에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편의 시(詩)와 함께 그 달에 어울리는 피아노곡을 발표하려는 계획이었다. 1875년 12월부터 매달 작곡한 곡들의 모음집은 사실은 ‘The Months’로 부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열두 곡을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로 구분 하는 것보다는 각각의 달에 맞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서정 시인인 아폴론 마이코프의 시와 함께 소개된 ‘4월’은 봄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곡이다. ‘스노드롭’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곡은 이른 봄 가장 먼저 피기 시작하는 하얀 꽃의 순결하고 깨끗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앞 곡인 ‘3월’에서 나타난 이른 봄의 ‘종달새의 노래’ 보다 상당히 밝은 봄을 그리고 있으며, 평화로움과 따뜻함도 동시에 느껴진다. 특히 중간 부분의 오른손 16분음표 선율은 수선화의 일종인 ‘스노드롭’의 청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차이콥스키가 '사계'를 작곡할 무렵(1876)쓴 자필 편지.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가장 평온하고 안정된 분위기의 곡인 ‘4월’을 들으며, 봄기운 완연한 룸비니동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이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강물이 흐르는 온갖 풀과 나무들이 향기로운 곳.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상쾌한 이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한 부처님의 모습을 ‘불소행찬’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안팎의 권속들에 분부하시어 / 동산 숲으로 함께 나가게 하니 / 그때 왕후이신 마야(摩耶) 부인은 / 아기 낳을 시기가 되었음을 스스로 아셨네. / 편안하고 좋은 침상에 눕자 /백천 채녀들이 왕후를 모셨다. / 마침 때는 4월 8일이라서 / 맑고 온화한 기운 고르고 알맞았네. / 재계(齋戒)하고 깨끗한 덕 닦았기에 / 보살은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네. / 큰 자비로 온 세상 건지시려고 / 어머니를 고생스럽게 하지 않으셨네.’

미국의 현대 작곡가 새뮤얼 바버는 20세기의 대부분 작곡가들이 무조음악이나 음렬 중심주의 음악의 작품들로 실험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곡들을 만들어낼 때, 대중에게 친숙한 서정성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특히 ‘녹턴 Op.33'은 중심음(Tonal Center)을 두고 조성(tonality)과 음렬(serialism)을 조합시키는 방법을 취해 현대음악 특유의 음향을 지니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은 신낭만주의(Neo-Romanticisim)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b음을 기본으로 한 아르페지오 위에 ‘12음 기법’을 바탕으로 한 선율을 얹어 조성과 무조성(atonality)을 결합시켰다. 다소 자유로운 12음 기법으로 펼쳐진 이 선율은 서정적이면서도 긴장감이 넘친다. “Homage to John Field”라는 부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곡은 녹턴의 선구자격인 존 필드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장식적 선율과 반주음형을 모두 찾을 수 있다. 또한 쇼팽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반음계적 선율과 폭넓은 음역의 펼친 화음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피아노 앞의 막스 레거 (1910년).

바버는 이 곡에서 전통적인 형식 위에 현대적 음향을 낭만주의적 서정성을 얹어 표현했다. 특히 대조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짧은 중간 부분에서는 옥타브를 사용하여 과감한 다이나믹으로 긴장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섬세한 아름다움과 당당함을 동시에 지닌 이 작품에서 기원전 624년 사월 초파일,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당당히 외치는 아기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한량없는 겁(劫) 동안 덕을 닦으시어 / 나면서부터 죽지 않는 법 저절로 아셨네. / 조용하고 편안하여 허둥거리지 않고 / 밝게 드러난 모습 미묘하고 단정했네. / 환하게 태(胎)에서 나타나는 모습 / 마치 처음 떠오르는 태양 같아서 / 살펴보면 지극히 밝고 빛나지만 / 바라보는 눈동자에 해롭지 않고 / 아무리 보아도 눈부시지 않아 / 마치 공중의 달을 보는 것 같았네. / 자기 몸의 광명 밝게 비춤이 / 햇빛이 등불 빛을 무색케 하듯 / 보살의 황금빛 몸의 광명이 / 두루 비춤도 그러하였네. / 바르고 참된 마음 흐트러지지 않고 / 편안하고 조용히 일곱 걸음 걸을 때 / 발바닥이 편편한 발꿈치는 / 영롱하게 빛남이 칠성(七星) 같았네.’

유난히 꽃샘추위가 늦은 4월이다.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며 경전에 묘사된 부처님 탄생의 장면과 함께 레거, 차이콥스키, 바버의 작품들을 감상해 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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