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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일본 임제종 하쿠인 선사의 발원

“적멸 현전하니 예가 연화국, 이 몸이 부처라네”

불교로 고통 어루만지며 평이하고 유머러스한 언어로 교화설법 
화두선 뿌리 내리게 하고 제자와 일대일로 화두 타파 독참지도 
막강 막부권력 향해 “백성 불쌍하게 여겨 고혈 뜯지말라” 경책

일본의 스님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심으로 염송하면서 정진하고 있다. 
일본의 스님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심으로 염송하면서 정진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강한 종교체험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출가를 감행하였으며 선의 길로 들어서서 치열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열었다. 절의 큰방이며 논두렁길에 걸터앉아 농부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부처님 가르침을 나누며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사람은 평이한 언어로 가르침을 설하고 강렬한 선화나 유머러스한 문자 그림으로 불교를 널리 알리며 일본 임제종을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바로 하쿠인 에카쿠(白隠慧鶴)다. 하쿠인은 법호인데, 그가 나고 자란 후지(富士)산의 영봉, 그 희디흰 산에서 은거했다는 의미에서 백은(白隱)이라 했을 것이다. 

하쿠인(685~1768)스님은 일본 임제종의 개혁자이자 중흥조이다. 그로 인해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간화선이 일본 땅에 새롭게 뿌리를 내린다. 바로 단계적 화두 타파와 스승과 제자가 일대일로 대면하여 화두를 점검하는 독참(獨參) 지도다. 그는 또한 당시 사람들에게 맞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기도 한다. 바로 한 손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척수음성(隻手音聲)의 화두다.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야 깨달음이다. 두 손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한 손만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대신통을 얻을 수 있다.(‘야부코지(藪柑子)’”

그는 에도시대 후지산 인근 시즈오카현(静岡県)의 하라쥬쿠(현재의 누마즈 시)에서 태어났다. 길에서 인마(人馬)를 중개하는 부유한 역장(驛長)의 집안이었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이와지로(岩次郎)였다. 신체적으로 연약한 몸이었지만 영특했다. 이와지로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와 함께 절에 다녔으며, 어른들도 어려운 설법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 하인들을 모아놓고 그 이야기를 들려줄 정도였다. 11세 때 끔찍한 지옥 이야기를 듣고 개구리를 죽인 생각 때문에 공포에 떨게 된다. 그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음경’과 ‘대비주’를 외우고 출가의 마음을 일으켰다. 15세 때 마침내 반대하던 부모의 허락을 받아 고향마을 송음사(松蔭寺, 쇼인지)로 출가한다. 

구도행각 중 20세가 되던 해에 그는 재기발랄한 자만심 때문인지 서예와 시문을 익히다가 출가를 후회하며 불상과 경전 보는 것을 혐오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 괴로워하며 바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때 그에게 들어온 책이 운서주굉의 ‘선관책진(禅関策進)’이었다. 거기서 졸음을 쫓기 위해 자신의 살을 송곳으로 찌르는 치열한 수행담을 보고 재발심하고 선의 길로 들어선다.

23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서 수행할 때 후지산이 분화(噴火)하여 땅이 요동쳐 송음사 당우들이 크게 흔들리고 화산재가 비오 듯 날려 절의 모든 대중이 도피했지만 그만이 홀로 남아 좌선에 들었다. 그 지옥 같은 세상에서 하쿠인 마음은 맹렬한 구도심으로 타올랐다. 그는 정수노인(正受老人)으로 불리는 스승 도쿄에단(道鏡慧端) 밑에서 공부중 아만심을 철저히 떨쳐버리고 크게 깨닫는다. 그는 좌선의 중요성을 노래한다. ‘좌선화찬(坐禅和讃)’이다. 일종의 발원문으로 봐도 좋다.

“중생이 본래 부처니 물과 얼음 같아라. / 물 떠나 얼음 없으며 중생 밖에 부처 없네. 가까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중생, 멀리서 구하는 덧없음이여. / 물속에 있으면서 갈증을 절규하는 것 같고 / 부잣집 자식임에도 가난한 동네를 헤매는 것과 다름없네. (중략) 자신을 향해 바로 자성을 증명하면 자성 곧 무성(無性)으로 되어 희론을 벗어나리. 인과일여(因果一如)의 문 열리어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닌 길로 곧바로 드네. 모습 없음을 모습으로 삼으면 가도, 돌아가도 남의 집이 아니리라. / 생각 없음을 생각으로 삼으면, 노래도 춤도 모두 법의 소리라 / 삼매의 걸림 없는 하늘 넓고 지혜의 둥근 달빛 휘영청 밝아라. / 이 때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적멸이 현전하기에 / 이곳이 곧 연화국이요, 이 몸이 곧 부처의 몸이네.”

참선을 통해 자기 자성이 공한 무성(無性)을 깨치고, 모습 없는 무상(無相)을 모습으로 삼는다면 바로 그곳이 연화세계요 자신은 바로 부처의 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참선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42세 때 ‘법화경’ ‘비유품’을 읽다가 흐느끼듯 통곡한다. 그것은 맑은 부처님의 마음을 지니게 된 기쁨의 소리였다. 이러한 깨우침을 통해 그는 깨달음 이후의 수행으로 중생을 향한 보리심과 사홍서원을 강조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한 구절을 읽어본다.

사홍서원의 원륜(願輪)을 채찍질하여 입에는 늘 ‘십구경’을 읊고 마음 속에는 은밀하게 널리 내외전을 탐색하여 무량의 대법재(大法財)를 모아 대법시(大法施)를 행하여 일체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불조의 심은(深恩)에 보답하여 십만무량(十万無量)의 생명들과 더불어 불도를 성취하여 다 같이 무상정등정각을 노래하도록 합시다.(‘연명십구관음경영험기·延命十句観音経霊験記)’  

하쿠인은 아파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고향마을에서 일생을 보낸다. 그 결과 고향 하라노 마을에는 그를 흠모하는 수행승이나 사람들이 대거 몰려오게 된다. 그는 흐르는 물 같았다. 마을의 한 처녀가 어느 젊은 남자를 사랑하여 아기를 낳고는 그 아이가 하쿠인 선사의 아이라고 거짓으로 말해 위기를 모면한다. 선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이를 담담히 받아서 키워주고 오해가 풀리자 다시 그 아이를 그 여자의 품으로 돌려준다. 그저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의 마음과 마주한다.  

나아가 하쿠인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정책에 대해서도 쓴 말을 아끼지 않는다. 당시는 막부의 권력이 막강하던 에도시대였다. 그는 국가가 시행한 단가(檀家)제도와 백성들의 고혈을 뜯어내는 지방 제후들의 다이묘(大名) 행렬과 혹정을 비판한다. 

“원래 다이묘 행렬은 전국 시대의, 사느냐 죽느냐가 일대사였던 시대의 관례일 것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공이래 지금은 천하태평의 시대임에도 제후의 길 가는 길에 돈을 낭비하는 것이 이에야스 공의 뜻은 아닐 것입니다. 인자(仁者)는 적이 없다고 합니다. 부디 인정(仁政)을 베풀어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변비오지오·辺鄙以知吾)”

그 결과 그의 책 ‘변비이지오’는 금서 목록으로 분류되었다. 그가 비판한 단가 제도는 오늘날 일본 사찰의 안일과 포교 부재를 낳고 말았다. 임제선풍만 그로 인해 오롯했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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