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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행자를 위한 종합선물세트

기자명 정원 스님

한국불교에서 율장의 현실적용은 부적절한 것일까

율장은 정견 가려낼 안목과
여법한 승단 운영방법 제시
율장 교육도 의미는 크지만
현실 적용이 훨씬 더 중요

부처님께서 팔만사천의 법문을 말씀하셨지만 출가자라면 누구나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제하신 것은 없다. 그런데 유독 율장만은 모든 비구들에게 반드시 익히고 실행하라고 하셨다. 법랍 5년이 지나도 계율에 대해 소홀하거나 갈마법을 모르는 이에게는 승단의 중요한 일은 물론 사소한 직무도 맡기지 말고 평생 동안 스승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정하셨다.

사분율장은 바라제목차 해설, 건도, 집법(集法), 조부(調部), 비니증일(毘尼增一)로 구성되어 있다. 바라제목차 해설에는 비구계와 비구니계가 만들어지게 된 사건과 배경, 죄가 되는 범계조건, 동일한 행위가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예외조건, 각 용어의 설명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를 통해 부처님께서 수행자가 지녀야 할 위의와 마음자세를 아주 상세히 가르치셨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건도부에 들어 있는 갈마법이다. 승가공동체적 관점에서 주로 접근하는 것으로써, 승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 법이 연결·유지되는 방식, 스승과 제자의 역할과 의무, 잘못을 저지른 구성원들에게 어떤 절차를 통해 청정성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지 등에 대한 광범위한 담론과 갈마의 방법 등이 제시된다.

율장을 5년 공부한 후 얻게 되는 결과물은 정견과 사견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과 여법여율한 승단의 운영방법 및 화합과 청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인식이 없으면 실천이 따를 수 없으므로 초학자는 일단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승단 구성원의 행위가 내외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나 범계 여부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참회법 등을 적용할 때 특정인의 성품이나 기호에 좌우되지 않고 법과 율에서 정한 기본대로 판단하고, 정리하고, 조정하려는 노력이 가능해진다. 물론 개인은 계목을 활용하여 신구의 삼업을 잘 조절함으로써 수행의 기본과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출가자에게 남겨주신 종합선물세트의 뚜껑조차 열어보지 않고 현실에 적용하기 부적절하다는 명제를 당연시 하면서 율장연구와 실행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부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북방불교권 국가들 중 유독 우리나라만 율장이 적용될 수 없는 시대적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한 범부가 삭발염의를 통해 출가의 형식을 갖추고, 수계를 통해 계체를 받은 후 지속적인 계행을 통한 내적변이를 거쳐야 비로소 기본적인 승격(僧格)이 갖춰진다. 출가자의 ‘자질과 인품’을 세속의 법률형식을 빌린 불완전한 법규로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을까? 제도는 완벽할 수도 없지만 설령 완벽해도 사용하는 이의 자질에 따라 문제가 되기도, 안 되기도 한다. 출가자의 내적변이를 이끌어내고 승격을 깊이 체화할 수 있는 가장 법답고 보편적인 재료는 율장의 풍부한 사례들이다.

부처님께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꾸짖을 자를 법답게 꾸짖고, 참회를 통해 청정을 회복시켜 함께 살아가게 만들고, 지켜가야 할 것과 버려야할 것들을 구분해 내는 모든 과정과 서사를 율장 속에 남겨 두셨다. 부처님의 모든 법은 각자의 삶에서 실천되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지만 특히 실행을 생명으로 하는 율장은 강당에서 가르치기만 하고 현실에서 쓰이지 않을 경우 불법의 수명을 좌우하는 가치를 느낄 수 없다. 최근 각 총림에 율원이 늘어나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이러한 변화가 자신의 생활에서 실천으로 연결되고, 여법한 갈마방식이 승단운영에 쓰일 수 있게 현실화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면 희망적인 미래를 꿈꿔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36호 / 2020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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