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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두려움에 떠는 자를 위한 교화

“훤히 알면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바라문이 머리 조각 낸다 저주 
무슨 뜻인지 몰라 공포만 커져   
부처님 “머리가 곧 무명” 설해 
미신 타파한 뒤 바른길로 인도 

예나 지금이나 상대에게 원한을 갖게 되면 앙갚음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상대의 불행을 기원하는 저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보통 욕설을 통해 저주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의미를 모르고 하는 욕 가운데 ‘육실 할’ 혹은 ‘급살 맞을 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저주는 그 역사가 오래 되었다. 불교 경전에서도 이러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숫따니빠따’ 제5장 ‘피안도품’의 서게(序偈, Vatthugātha)가 이에 해당한다. 이 서게는 16명의 바라문이 붓다를 찾아뵙고 문답을 하게 된 인연을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붓다를 찾아 뵌 16명의 바라문에게는 스승이 있었는데 이름이 바바린(Bhāvarin)이었으며 나이는 120세였다. 바바린에게는 모두 500명의 제자가 있었고 붓다를 찾아뵌 16명이 대표적인 제자들이었다.

어느 날 한 바라문이 찾아와 500금을 구걸했는데 바바린은 그를 예로서 대접하면서 500금이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바라문은 ‘내가 청했는데 베풀지 않으니 지금부터 이레 후에 당신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터질 것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며 저주를 하고 가버렸다. 저주를 받은 바바린은 근심에 빠져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붓다의 출현을 알고 자신의 제자 16명을 모아 붓다를 찾아 뵙고 ‘머리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에 대해 여쭙고 오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알지 못하는 어떤 이가 불쑥 찾아와 가당치 않은 부탁을 하고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주문을 외며 저주를 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상대를 잘 안다면 허풍으로 치부하고 말면 되지만 알지 못하는 자가 저주를 하면 그 사람의 능력이 어떤지 알지 못해 더욱 당황스럽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스승이었고 지혜로운 사람인 바바린 조차도 알지 못하는 이의 저주로 괴로움을 받은 것이다. 머리를 일곱 조각으로 쪼개어 떨어뜨리겠다는 저주는 당시 인도에서 행해지는 전형적인 저주였던 것 같다. 16명의 바라문은 스승의 부탁을 받고 붓다를 찾아뵙게 된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인 아지따가 붓다께 질문을 올린다.

“[아지따] 바바린은 머리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선인시이여! 저희들의 의혹을 풀어 주십시오.
[붓다] 무명이 머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과 사띠와 삼매와 더불어, 의욕과 정진을 갖춘 지혜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무명(無明, avijjā)이란 말 그대로 밝지 못한 것을 말한다. 지혜가 없음이며 알지 못함이다. 우리는 알지 못할 때 두려움을 경험한다. 훤히 안다면 두려움에 떨 이유도 없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과 무명을 밝히는 일은 다른 이야기이다. 바바린은 많은 이들을 지도하는 선생이자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으나 무명을 밝힌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이 필요했던 것이다.
붓다는 바바린의 제자 아지따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서 무명이 머리이며 믿음, 사띠, 삼매, 의욕, 정진을 갖춘 지혜가 머리, 즉 무명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붓다의 이 가르침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법인 오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오근은 신(信, 믿음), 근(勤, 정진), 염(念, 사띠), 정(定, 삼매), 혜(慧, 지혜)이다. 위에서 의욕을 사신족 가운데 욕신족(欲神足, 선정에 들고자 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면 오근의 정(定)에 포함시킬 수 있다. 

붓다는 당시 횡행했던 온갖 사설(邪說)과 미신, 거짓을 타파하여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안심(安心)을 얻게 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을 받은 바바린과 그의 제자들은 안심을 얻게 된다.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도 거짓과 잘못된 믿음으로 방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붓다의 가르침은 분명 그들에게 진정한 평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36호 / 2020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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