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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8칙 흡진서강(吸盡西江)

답변은 굳이 남에게 듣는 것 아냐

강물 마시는 마음 터득 됐을 때
훗날 기다릴 것 없이 답변 터득
마셨네 못마셨네는 분별에 불과

방거사가 마조대사에게 물었다. “만법을 초월해 있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가 서강의 물을 다 들이키면 그때 답해주겠다.”

방거사는 방온(龐蘊, ?~808)으로 마조의 재가인 제자이다. 넉넉한 재산을 강물에 버리고 속세를 떠나 청빈한 생활을 하며,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1), 마조도일(709-788), 단하천연(丹霞天然, 738~824),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 등을 참문하여 동토의 유마거사로 불렸다.

석두를 참하고 ‘만법을 초월해 있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석두가 손으로 방거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에 활연히 깨쳤다. 훗날 석두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바쳤다.

일용사라 한들 특별한 것 없네. 오직 나 스스로 벗할 뿐이라네. 일체행위에 취사분별이 없으니, 매사에 나쁜 일도 생기지 않네. 벼슬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인가. 깊은 산골 번뇌조차 묻지 않네. 신통은 뭐고 또 묘용은 뭣인가. 물 긷고 땔감을 거둘 뿐이라네.

이에 석두가 흔쾌하게 여기고 물었다. ‘그대는 세상사를 초월한 선기(禪機)를 지니고 있는데, 출가를 하겠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그대로 살겠는가.’ 그런데 방거사는 머리도 깍지 않고 승복도 걸치지 않으면서 출가자처럼 산에서 살았다. 후에 마조를 참문하여 물었다. ‘만법을 초월해 있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가 서강의 물을 다 들이키면 그때 답해주겠다.’ 이에 거사는 언하에 깨쳤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바쳤다.

아들은 장가들지 않았고, 딸은 시집가지 않았건만, 집안은 화목하게 살면서, 더불어 무생법을 논하네.

이로써 거사의 명성이 제방에 널리 알려졌다. 이를테면 거사의 질문방식은 무(無)를 가지고 유(有)로 간주하여 어떻게 형용하려고 찾는 모습이고, 마대사의 답변방식은 질문의 근원을 막아버리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생각이 통할 길을 터놓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불협화음이 이는 것 같건만 은근히 궁합이 잘 들어맞는다. 게송의 내용은 아들과 딸일랑은 그만두고라도 부모가 어디 효도 한번 받은 적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 훌륭하게 세속사를 출세간의 평상심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석두와 마조를 참했을 때 주고받은 문답은 상식을 벗어나 있다. 그러나 정작 상식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상식은 세상살이에 참으로 편리한 무기이다. 그러나 상식에 갇혀서 사는 것은 보통의 중생들이다. 보통의 상식으로 서강의 물을 모두 들이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상식을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선가에서 항상 강조하는 가장 일상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일상사를 깨침의 삶으로 승화시켜 살아가고 있는 납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서강의 물을 모두 들이키는 것과 그때 답변해주겠다는 것은 피장파장이다. 답변은 굳이 남으로부터 듣는 것이 아니다. 강물을 모두 마시는 마음이 터득되었을 때 답변은 저절로 터득된다. 먼 훗날까지 그것을 기다릴 것이 없다. 두 손으로 물 한 모금을 움켜 마시고는 스스로 다 마셨노라고 할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강물을 다 마셨네 못마셨네 하는 것은 분별에 불과하다. 만법을 초월해 있는 사람이란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평소에 살아가는 방식이란 분별조작이 없고 시비선악(是非善惡)이 없고, 취사계교(取捨計較)가 없으며, 단상생멸(斷常生滅)이 없고, 범성대소(凡聖大小)가 없이 청정한 본래심을 가리킨다. 때문에 일상을 일상 그대로 수용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유마경'에서는 범부의 행위도 아니고 성현의 행위도 아닌 그것을 곧 보살행이라 말한다. 지금 행주좌와(行住坐臥)하고 응기접물(應機接物)하는 그것이 모두 깨침이다. 그래서 깨침은 곧 법계로서 항사묘용(恒沙妙用)이 모두 법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방거사가 마셔본 강물은 어떤 맛이었을까.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7호 / 2020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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