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A가 아니기에 A라고 한다’라는 ‘금강경’의 특이한 논조는 중국의 선불교에서 혜능의 대법론과 백장의 삼구론 등을 통해 실수행에 적용되었다. 현대 일본의 선학자인 스즈끼는 불립문자를 기치로 내세우는 선(禪)을 설명하며 이 논증방식을 활용하고 그것을 ‘즉비논리’라 일컬었다. 그는 마음을 절대심(絶對心)과 상대심(相對心) 두 가지로 해석하되 결국 그 둘이 다르지 않음[不二]을 논증하고, 절대적 측면에선 ‘마음이 곧 부처지만[卽心卽佛] 상대적 측면에선 마음이랄 것도 부처랄 것도 없다[非心非佛]’하여 이 둘 또한 다르지 않다[不二]한 것이 바로 즉비논리이다. 이는 ‘금강경’의 논증방식을 대법론과 삼구론에 이어 선학(禪學)의 시각에서 다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육조단경’의 후반부에서 혜능은 10대 제자들에게 자신의 멸도 후 어떻게 설법해야 종지를 잃지 않을 것인가를 일러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방법론이 바로 대법론이다. 대법론이란, 전체를 외경(外境)과 법상(法相) 및 자성(自性)의 세 범주로 나눈 뒤 세부적으로 천・지, 유・무, 장・단 등 총 36쌍에 달하는 대법(對法, 상대적 법칙)을 설정하고 모든 물음이나 의문에 이를 활용하여 대답하게 한 것이다.
예를 들면 누가 “무엇을 일컬어 어둠이라 합니까?”라고 물으면 명・암(明・暗)이란 대법을 적용하여 “밝음은 인(因)이고 어둠은 연(緣)이니, 밝음이 사라진 것이 곧 어둠이다. 밝음으로 어둠을 드러내고 어둠으로 밝음을 드러내니, 오고 감이 서로 인(因)이 되어 중도(中道)의 뜻을 이룬다”고 답하는 방식이다. 이는 곧 말을 할 때 상대적인 것을 찾아서 대법(對法)을 취하여 오고 감이 서로 인(因)이 되게 하다가, 마지막엔 두 법을 모두 없앰으로써 달리 갈 곳이 없게 한다는 것이니, 즉비논리와 유사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백장록’에서 백장은 불조(佛祖)의 가르침인 교설(敎說)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설할 때 어떻게 해야 정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그 방법론이 바로 삼구론이다. 삼구론이란, 초선(初善)에서 긍정이나 부정의 한 가지 입장을 지키고, 중선(中善)에서 초선의 입장을 버리며, 후선(後善)에선 초선의 입장을 버렸다는 생각마저도 버리는 방식이다. 이는 ‘보살은 곧 보살이 아니니 이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는 ‘금강경’의 논조와 동일하다.
백장은 교설을 그 의미와 역할 및 표현법에 따라 요의교어(了義敎語)・불요의교어(不了義敎語)와 차어(遮語)・표어(表語) 등 몇 가지로 나누고, 부정을 내세운 ‘차어' 계열은 눈 밝은 수행자들에게 가르치고 긍정을 내세운 ‘표어' 계열은 눈 먼 범부들에게 가르쳤다. 이는 긍정적인 말은 그 말이 나타내는 의미를 세우는 것이요, 부정적인 말은 그 말이 나타내는 의미를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교설의 본질이 언어만으로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침에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다는 딜레마에서 선택한, 말을 하되 그 말을 부정하는 법이 삼구론이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언어에 의존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가르침의 본질이 언어만으로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브라만교의 브라흐만을 설명하는 표현에는 ‘아니다(neti)! 아니다(neti)!’를 위시한 부정만 존재할 뿐 긍정의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불교, 특히 선불교에서 단지 부정만하는 것에서 한층 더 발전된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금강경’의 ‘즉비논리'가 그 흐름에서 중요한 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금강경’의 즉비논리에서 ‘A는 곧 A가 아니므로…'라는 부분은 진제(眞諦)를 밝힌 것으로, 그리고 ‘그래서 A라고 한다' 부분은 다시 속제(俗諦)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등 여러 해석이 있으나, 그 또한 ‘금강경’이 즉비논리를 통해 찾고자 하는 무주상(無住相)의 가르침에 어긋날 뿐이다. ‘금강경’의 즉비논리가 결국엔 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실수(實修)가 아닌 언어(言語)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헛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37호 / 2020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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