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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라브랑시 참 퍼레이드 ‘희금강’

‘참’은 불법에 저항하는 세력 물리치기 위해 추는 호법무

화려한 깃발과 캉링, 둥첸 등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퍼레이드
희금강은 기마단의 등장부터 의식을 위해 자리하기까지 과정
해골탈 쓴 동자승 앙증맞은 춤은 의식의 엄숙함 속 반전 매력

동자승들의 호법무. 흰 횟가루로 표시한 동선이 보인다.

티베트어로 ‘춤추다’라는 어원을 지닌 ‘참’은 우리말 ‘춤’과 닮아 어감부터 예사롭지 않다. ‘참(Cham)’의 유래는 티베트의 최초 사원 ‘삼예’에서 파드마삼바바가 불법에 저항하는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음혈을 뿌려가며 호법무를 추었던 것이 그 기원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를 ‘참’ 혹은 ‘체츄(Tse-Chu)’라고 하는데 중국화된 요즘은 ‘파우회이(法舞會)’의 진강우(金剛舞)로 부른다. 

라브랑시의 정월 참이 행해지는 날 새벽, 촬영을 위해 일찌감치 도착해 보니 마당에 그려진 하얀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왔다. 큰 동그라미 안에 중간 동그라미, 그 안에 또 작은 동그라미는 그날 행해질 춤의 동선이었다. 둥근 동선은 동서남북과 그 사이의 간방을 더한 8방에 하늘과 땅을 합한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시방(十方)의 의미이자 원융의 우주관을 지닌 티베트 사람들의 의식구조이기도 하다. 라싸의 도시 구조를 보면 큰 원 ‘링꼬르’, 중간 원 ‘바꼬르’, 작은 원 ‘낭꼬르’로 배치되며 그 중심에 조캉사원이 있다. 그리하여 매일 아침 사방의 사람들이 조캉사원으로 모여들어 꼬라를 돌고서 하루를 시작한다. 
 

대위덕금강 탕카.
행렬을 호위하는 기마단 뒤로 해골 장식을 한 의물대와 깃발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는 정재(呈才)가 있다. 황제를 위해 8명씩 8줄 64명의 팔일무, 왕을 위해 6명씩 6줄 36명의 육일무는 정사각형으로 배치하여 춤추므로 중국과 티베트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차이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출가수행자들이 추는 티베트의 참무는 치세(治世)를 위한 악정(樂政)과 지배자를 위해 세속 예인(藝人)이 추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 정재는 사각 배치에 보는 이를 위한 퍼포먼스라는 점에서 오히려 서구 공연예술과 더 친연성이 있어 보인다. 혹자는 요즈음 행해지는 무대 배치를 두고 “공연이니까 사각 무대”라고 하겠지만 티베트의 창극 ‘아체라모’는 가운데서 공연을 하고 그 주변을 빙 둘러앉아 구경을 한다. 이는 한국의 마당놀이와도 닮았다. 

라브랑시 대경당 앞마당의 둥그런 동선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사이에 근 한 시간은 족히 흘렀는가 싶을 즈음, 저만치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와 함께 깃발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탕카 의식이라면 군중이 와르르 달려가겠지만 이 의례가 어떻게 진행될지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춤의 동선이 그려진 마당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호랑이 탈을 쓰고 발길질을 해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호위병 뒤에 탕카가 따랐던 것과 달리 참 의식에서는 붉은 술을 늘어뜨린 모자에 화려한 복식을 갖추어 입은 사람들이 열을 지어 등장하였다. 성장(盛裝)을 한 사람들은 신도회장, 고위 공산당원, 성장(省長), 경찰서장 등 지역을 대표하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이었다. 티베트 본토에서 가난과 비루함에 짓눌려 있던 사람들을 보아오다가 가죽 위 화려한 비단 장식을 한 그들의 자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그 뒤에 유유히 나타나는 승단의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의 등장은 그야말로 화려한 퍼레이드의 서막에 불과했다.
 

캉링과 둥첸을 불며 등장하는 스님들.

갖가지 상징을 담은 기수 승단에 이어 그 유명한 나팔부대가 등장하였다. 선봉은 우리네 고적대장과 같이 휘장을 늘어뜨린 봉을 들었는데, 그 규모와 장엄함이 거대한 바위가 걸어오는 듯하였다. 겔룩파를 상징하는 노란 수술이 달린 법모에 짙은 자주색 법복의 어깨는 힘이 잔뜩 들었고, 한 손에는 주황빛 보석을 박은 은장 봉에 깃발이 드리웠고, 다른 한 손으로는 캉링을 불고 있다. 또 어떤 스님은 어른 키보다 큰 장대를 들고 있어 누구라도 얼씬거리면 금새 휘두를 듯이 서슬이 퍼렜다. 그 뒤를 따르는 ‘둥첸’은 앞에서 줄을 걸어 한 사람이 들고, 취구는 뒤에 오는 스님이 부는데, 그러한 둥첸 4대가 배치되니 주변을 호위하는 승단의 움직임이 만만치 않았다. 

이어서 타주 승단이 등장하는데 녹색의 릉가 북면에는 적·청·황·녹의 태극문양이 있고, 뒷면에는 참 의식에 등장할 호법신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수십명의 스님이 두드리는 릉가 법고의 채는 둥그런 곡선으로 되어 있는데다 채 끝에 부드러운 솜이 있어 타점이 명료하면서도 주변의 소리와 잘 어우러졌다. 법고 옆에는 한국의 자바라와 비슷한 ‘롤모’를 든 스님이 있다. 우리네 자바라가 완만한 원뿔의 둥근 판인데 비해 롤모는 가운데가 불룩 나와 있어 마주 치면 그 울림이 움푹한 곡면을 울려서 나오므로 한국의 자바라보다 깊고 두터운 음색을 발산하였다. 

취주단의 뒤에는 참 의식에 쓰이는 의물(儀物)이 등장하는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높이 솟은 망루와 같은 삼각대 위에 장식된 해골이다. 이 해골은 굵은 막대를 엮은 가마 위에 의물을 싣고, 그 위에 우뚝 세운 깃대에 휘장을 드리우고 사방의 스님이 들고 나가는 것이 마치 한국의 재장에서 시련을 들고 오는 모양새와 같으나 그 무게와 크기가 비할 수 없이 크고 높았다. 

각각의 역할을 맡은 구성원이 차례로 등장하여 법석의 틀이 잡히고 한 동안 적막이 흐르며 태풍 전야와 같은 고요가 얼마나 흘렀을까? 2층 회랑에 법태라마가 등장하였다. 그러자 악대의 웅장한 음향이 예포처럼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환희에 찬 군중의 예가 온 마당을 가득 메웠다. 기마단의 등장부터 착좌에 이르는 이 과정을 ‘희금강(喜金刚)’이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이른 아침부터 오전 10시까지 두시간여가 넘게 소요될 정도로 의례 못지않은 환희심을 불러일으켰다.
 

캉링을 불며 무승의 등·퇴장을 지휘하는 스님들.

대경당 앞에는 야크를 그린 탕카가 드리워졌는데, 그것은 라브랑시의 호법신 ‘대위덕금강’이다. 야크는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다. 법당에 불을 밝힐 때는 야크 버터, 밥상에는 우유와 고기, 양떼를 몰 때는 야크를 타고 몰이를 한다. 티베트 최초의 궁전 융브라캉을 올라갈 때 말이나 야크를 타고 올라가는 옵션이 있었다. 그때 야크가 말보다 비쌌다. 야크의 등이 말 보다 넓고 푹신하기 때문이었다. 쏜살같이 달려서 적을 무찌르거나 먼 길을 가야하는 목적이라면 말이 적절하겠지만 양떼를 모는 데는 야크가 훨씬 유용하므로 티베트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시 야크가 있다. 생활 속 유익함이 호법신 대위덕금강으로 승화되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문화양상이기도 하다.

대위덕금강 탕카에는 그날 행해질 의례의 상징이 빼곡히 담겨있다. 야크는 구슬 장식이 있는 푸른빛의 성장(盛裝)을 하였는데, 이는 라브랑시 호법무의 차림새와 같은 복색이다. 야크의 옷자락 사이에는 또 다른 동물과 여러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데, 이들 중에는 악귀와 외도(外道)도 있다. 이들을 무찌르는 야크의 이마에는 뿔이 솟아있고, 오른팔에 해골, 왼손에는 밧줄을 들고 있는데 이 또한 당일 행해질 호법무의 의물이다. 탕카 의식에서도 보았듯이 야크 그림의 가운데는 가탁이 드리워져 있다. 이는 축복과 길상의 상징인 동시에 야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참 의식에 출임(出任)한 구성원의 배치를 보면, 대경당의 왼편에는 의례를 집전할 승단, 오른편에는 의례를 호위하는 각 분야의 사람들과 의물이 있고, 맞은편에는 캉링을 부는 4명의 나승(喇僧)이 서있다. 의례를 이끌어갈 승단을 보면, 증명법사와도 같은 스님이 왼편의 붉은 의자에 앉아있고, 오른편에 푸른색 비단을 덮은 법탁 앞에 의례를 지휘하는 집법사(執法司)가 있다. 그 뒤에는 참무를 반주할 스님들이 있는데 앞줄에는 롤모를 든 스님들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영남지역에서는 광쇠, 서울 지역에서는 징을 타주하며 의례를 이끌어가듯 롤모는 춤 동작과 법구 타주를 이끌어간다. 롤모 뒤에 있는 수십명의 법고 승단은 롤모의 타주에 맞추어 합주한다. 대경당의 정면에 서 있는 4명의 나승은 캉링을 불며 무승(舞僧)들의 등·퇴장을 지휘한다.
 

의례에 배석하는 지역 유지들.

희금강 절차가 종료되자 푸른 법탁 앞에 앉은 스님이 롤모를 치고, 법고 타주와 함께 네 사람의 나승(喇僧)이 일제히 캉링을 불었다. 그러자 정면의 대경당에서 아주 작은 인형 두 개가 나타났다. 다시 법기를 치자 그 인형이 폴짝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와 멈추면 다시 법기를 치고, 그렇게 서서히 깡충깡충 한 걸음씩 마당으로 나오며 움직이는 것을 보니 인형이 아니었다. 해골탈과 색동옷, 손톱이 삐죽한 장갑에 흰버선과 구두를 신은 해골요정이었다. 캐릭터가 너무도 귀여워 마치 현실을 벗어나 어떤 환상의 세계를 보는 듯하였다. 

지휘승의 지시를 받아 법기가 울리자 또 두 명이 등장하였다. 네 명의 동자승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춤을 추었다. 해골탈에 색동옷을 입고 추는 그 동작은 절제되고 단순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귀엽고 앙증맞아 마치 한국의 꼭두각시 춤을 보는 듯하였다. 동자승들이 추는 이 캐릭터는 티베트의 호법신 중 가장 지위가 낮은 호법신이다. 이어서 사슴과 야크 등 동물의 탈을 쓴 호법신들과 검은 모자와 흑포를 두르고 추는 샤낙이 등장하는데 이 춤은 한국의 작법무, 처용무와도 견줄 내용이 많으니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 회를 빌어야겠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37호 / 2020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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